고대 그리스를 향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외침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희극을 통해 비극을 말하다.
희극이라는 소재에 ‘론(論)’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많은 이에게 생소할 수 있다. 희극의 ‘가볍다’는 이미지와 이론의 ‘무겁다’는 이미지가 쉽게 어우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소위 ‘학자’들의 작업은 마치 이런 세간의 통념이 옳기라도 하다는 듯이 비극은 우월한 것, 희극은 열등한 것이라고 평가해 왔고 실제로도 희극은 그저 그런 취급을 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비극은 학문적인 분야, 희극은 문학을 다루며 비극의 반대 급부로 다루어지는 한 분야로서 다루어져 왔던 것이 현실이다.
희극은 주로 ‘웃음’이라는 자칫 가벼워 보이는 소재를 사용한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그 동일한 수단을 사용하지만 그 성격은 그와 정반대이다. 비극이 다소 문학적인 성향에 집중하여 픽션에 기반한 이상을 꿈꾸지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설명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말 그대로 ‘웃기는 상황’ 그 자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엇보다 가볍고 편한한 소재로 가장 진중하고도 무거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사회적?정치적 권력자들, 영향력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며, 고대 아테네 현실 속 많은 이들이 애써 외면하고자 한 현실을 폭로하고자 한 가장 깊이 있는 현실 문학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해 냈다.
이 책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언론의 기능에 비유한다. 민주주의의 발흥지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행해졌던 연극으로서의 현실 문학인 희극은 희극을 꿈꾸었던 비극적 현실에 대한 현실적 비판임을 분명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사고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비판적 해설서라고 할 만하다.
아테네의 이모저모를 엿보는 다양한 작품들
현존하는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11작품 모두를 한 권으로 만난다.
해당 작품은 그동안 번역서 및 아리스토파네스를 분석하는 다양한 논문들만이 존재했던 데 반해 그의 전 작품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단순히 그 작품의 해제와 같은 진부한 설명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이론, 철학적 논거, 사회문화적 이슈 등을 도입하여 현대적인 이슈로의 재생산을 끌어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하는 작품 11개를 테마별로 분석하여 작품의 의도, 당대의 분위기와 사회적 배경 등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마치 현대와 고대의 다리를 놓는 작업과도 같다. 이를 통해 현대에 사는 누구나 고대 그리스의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은 무엇이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국내 저술된 다양한 논문과 번역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돕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을 잇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한 권으로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의 도입부를 마치고 제6장을 시작하면서 “육절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비극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라고 말한다. 곧이어 비극과 서사시를 다루고는 제26장에서 책을 끝맺는다. 그러면 희극은 어디 있는가? 분명히 희극에 대한 언급을 꺼내놨으니 썼을 것이다. 그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이런 말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것들에 관해선 따로 「시학」에서 정의해 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시학」은 2권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제2권을 저술했고, 그곳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을 다루었으리라 추정한다. 서기 3세기,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으로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두 권으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두 권 가운데 비극과 서사시를 논의한 제1권만 전해질 뿐, 제2권 소실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서 이 질문에 답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시학」 제2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제2권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보다 62년 먼저 태어나서 활동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이야기와 방식을 두고 썼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로부터 2,400년이 지난 2022년, 우연하게도 연구자의 「아리스토파네스 희극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잃어버린 「시학」 제2권이 되어 버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