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으면 내게 보여 달라.” _ 세네카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는 “노예가 아닌 사람이 있으면 내게 보여 달라. 정욕의 노예인 사람도 있고 탐욕의 노예인 사람도 있고 사회적 특권의 노예인 사람도 있으며, 모든 사람은 두려움의 노예다”라고 고발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이나 재물, 두려움이나 사랑 같은 무언가의 노예로 얽매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누구의 노예이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1세기 그리스-로마 제국의 법적·사회적 정황에서 이해하는 신약성경의 ‘노예’ 은유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당연했으니, 신약의 영적 노예 모티프가 육체 노예에 대한 당대의 관습과 표현에도 한 가닥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세기 노예제가 특이할 정도로 복잡하고 각양각색이었음을 감안하여 노예 은유의 의미가 다양할 수 있다고 추정하고, 신약 본문에서 언급하는 노예와 노예제를 지금과는 판이한 그 당시의 법적·사회적 정황에서 엄밀하게 규정한다. 또한 1세기 교회가 당시 노예제에서 어떤 면은 배척하고 어떤 노예 이미지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인 삶의 한 측면을 묘사했는지를 연구한다.
‘노예’(slave)라는 뜻인 그리스어 둘로스(doulos)를 왜 현대 성경은 주로 ‘종/하인’(servant)으로 번역하는가?
신약 그리스어에는 영어 단어 ‘하인’(servant)으로 번역하거나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최소 여섯 개 있다. 그러나 신약의 단어 하나, 즉 둘로스(doulos)는 ‘노예’라는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단어는 신약에 124회 나오고 복합어인 쉰둘로스(syndoulos, ‘동료 노예’)는 10회 나온다. 그러나 영어 성경의 역사에 이상하면서도 획일적인 전통이 있는데, 곧 ‘노예-자유인’ 대조, 죄나 부패의 노예 됨에 대한 언급처럼 문자적인 노예제나 무생물인 어떤 것의 노예 됨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둘로스를 ‘노예’로 번역하는 일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어떠한 형태의 노예제이든 보편적으로 혐오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일까? ‘노예’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어감에 대한 우려 때문일까?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 ‘노예 됨의 고귀함’이라는 절묘한 역설
기독교의 사유에서는 노예이건 자유인이건 그리스도인은 너나없이 영적으로 자유롭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의 노예 즉 ‘자유롭지만, 노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즉 완전히 자유로운 노예가 되기 위해서 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신자로서 새로운 주인이신 분의 노예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노예 됨이다. 1세기에 노예로서 속박받는 삶을 잘 알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노예’로 불리는 데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 칭호가 왜 불쾌하지 않고 듣기 좋았으며, 모욕하는 말이 아니라 고귀한 말로 들렸을까?
이 책은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과 도르가를 비롯한 여러 사역자들의 삶에서 ‘노예 됨 안에 있는 참된 자유와 사랑’이라는 역설을 찾아낸다. 기독교의 자유 안에는 노예 됨이 있고, 기독교의 노예 됨 안에는 사랑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걷잡을 수 없는 방종이 되지 않고, 노예 됨이 비굴한 예속이 되지 않는다. 초기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많은 사람이 복음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하고자 했다.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독자들은 ‘노예’라는 단어에서 떠올렸던 부정적 이미지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별칭이 특권으로 여겨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이 책의 특징
- ‘노예’라는 뜻인 그리스어 ‘둘로스’를 현대 성경 역본들은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조사한다.
- 다양한 고대 문헌을 조사해서 1세기 그리스-로마 제국의 노예제 특징을 연구하고,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노예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 1세기 교회가 당시 노예제에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파악한다.
- ‘노예와 자유’, ‘노예 됨과 소유권’, ‘노예 됨의 특권’ 등 신약에서 ‘노예’ 은유가 갖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살핀다.
- ‘그리스도의 노예 됨’에 관한 신약성경 본문을 주해하고, ‘그리스도의 노예 됨 안에 있는 자유와 사랑’이라는 역설을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