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병의 생리적인 증상 이면에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 살아가는 삶의 터전, 인간관계, 생각, 사회와의 연결, 생활 습관 등 삶의 서사가 있음에 주목했다. 병이 하나의 이야기라는 발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질환은 아픈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 자체다. 각자의 삶이라는 텍스트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질병 서사를 담고 있기에 그것이 이야기로 회자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치유와 회복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이 책에 실린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생생한 아픔 외에 그들이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어떻게 발견해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울증이나 조현병 등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인간 개인의 약한 모습, 개인과 사회를 잇는 느슨하고 약한 연결고리들, 나아가 인간 누구나 경계에 선 외로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공감한다. 그들은 비정상의 범주에 있는 타자들이 아니다. 단지 정상의 범주에 속한 이들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인터뷰라는 형식은 객관성과 전문가주의를 벗고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 책의 인터뷰 내용이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이유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오해를 한다. 그게 한 개인이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오해이든, 오해를 통해 타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다는 건 인간 존재의 한 형식일 것이다. 따라서 그 세계에 대한 왜곡된 사유를 바로 잡기 위해서 인간은 ‘대화’의 형식으로 타자에 접근한다. 대화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며 인간만이 취할 수 있는 존재의 방식이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우리는 타자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되고 오해했던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 대화하고 싶었다. 대화는 계급적, 사회적 처지가 다른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상호인정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해 편견과 오해의 부분을 줄여가는 가치를 담고 있다. 나의 위치에서 당신의 위치를 바라보는 것. 그의 위치로 옮겨가 보고 그가 나의 위치로 와 보는 것.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존재론적 미덕이다.” - ‘본문’에서
책의 저자이자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인 박종언 기자는 2019년 정신질환자의 사회참여와 통합에 헌신하고 정신건강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시로 우수상을, 이듬해 2015년에는 소설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 2022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이 주최하는 제7회 학봉상 언론보도 부문에서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 철학 분석”으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