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실제 임상에서 환자를 대할 때 치료의 증거를 제시하고, 더 나은 한의학임상을 만들어 보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매일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4권이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한의원에 내원하는 증례들을 기록했지만, 동일한 질환이더라도 치료법이 달라져야만 하는 상황이 항상 기다리고 있어 환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또한 한국의 의료상황에서, 한의원에 내원하게 되는 환자들은 이미 서양의학적인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각별히 주의해야 했으며, 치료의 경과 또한 영상검사, 혈액학적 검사 등으로 확인되어야 하기 때문에 서양의학도 꾸준히 탐독해야 했다. 이렇게 20년을 보냈으나 부족함을 채울 수가 없어서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2019년 늦은 봄, 일상적인 진료와 생활, 모든 것이 평온하다고 느껴지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모든 일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뒤통수를 가격했다. 비록 이러저러한 질환을 접하고 있었지만, 무언가가 생략된 채로, 아주 하찮은 기술에 의존하면서 간신히 연명해가는 느낌이었다. 멍하게 며칠을 보낸 후에야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있었던 SARS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필자는 누군가의 초대로 어떤 학회에 참석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학회의 이름이 제4회 溫病國際學術硏討會였다. 송구스럽게도 한국에서 참석한 한의계 인사는 필자가 유일했으며, 학회에서는 각종 감염병에 대한 문장을 준비하도록 권고했는데, 임상이 일천했기에 유치한 짧은 문장을 준비해서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학회장은 매우 엄숙했고, 학회의 내용 또한 홍콩, 상해, 대만, 마카오 등지에서 온 연자(演者)들이 SARS의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들을 취합해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부분이 명확해졌다. 감염병이었다.
비록 傷寒金櫃, 溫病調辨 등을 통해 얕게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으며,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 바이러스감염 후유증의 길랑바레증후군, 알레르기성자반증 및 여러 外感 후의 질환 등을 접하면서 나름대로 잘 운용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급성 전격성 감염질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中景先生이 傷寒論을 집필한 때도 대규모 감염병과 관련이 있었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래서 우선 필자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血熱, 癮疹內陷, 肺陰虛의 부분은 아니었지만, 經方實驗錄을 포함한 傷寒發微, 金櫃發微를 모두 읽었다. 그 후 지인의 소개로 余師愚의 疫疹一得을 본 후, 극도로 예리하게 날이 선 그의 처방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스치면서 봤었던 그의 처방을 다시 보니 余師愚선생의 고뇌가 진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임상 고수였다. 처방의 구성, 용량, 응용 등 모든 내용이 실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일단 노선을 잡았으니 거침없이 추적하여 章次公, 趙沼琴, 黃仕㳍, 鄧鐵涛, 歐陽恒, 王孟英, 朱良春, 張志遠 등 중국에 있는 또는 있었던 명의들의 책을 잡히는 대로 주문해서 진료의자 뒤에 쌓아놓고 빠른 속도로 탐독했다. 처음에는 血證과 관련된 부분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결국에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많은 질환과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실제 임상과의 연결은 아직 요원했으며, 감염의 급성기, 안정기, 후유증에 대한 개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이듬해인 2020년 초, COVID-19이 발생했다.
실제 임상에서 접하는 후유증은 다양하다. 감염 후에 잔존하는 인후증상, 전신통, 盜汗, 乾咳 외에도, 극심한 피로, 위장관계이상, 공황장애, 불안, 신경계증상, 조혈계이상, 혈관신경이상, 피부증상 등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필자는 葛根湯을 기본처방으로 하고, 발열이 심하면 三黃을 加重하고, 해수가 심하면 麻黃을 加重하고, 인후통에는 桔梗, 柯子, 山豆根을 加하고, 膚熱이 심하면 石膏, 盜汗에는 靑蒿, 知母, 地骨皮, 膚衄에는 丹皮, 赤芍, 紫草, 惡心嘔吐에는 半夏, 茯苓, 腹瀉에는 蒼朮, 茯苓, 澤瀉, 恐驚에는 龍骨, 牡蠣, 癮疹에는 越婢湯, 척수신경에는 加味二妙散, 熱症期의 용혈에는 地骨皮飮加味, 熱症期가 지난 조혈억제에는 聖愈湯, 右歸飮, 香砂六君子湯加味, 감염 후 극심한 피로에는 溫膽湯加人參 또는 半夏白朮天麻湯 등에 加減한다. 감염 후유증에 대한 대응법을 간단하게 열거했지만 余師愚의 淸瘟敗毒飮에 비하면 초라하다.
미흡한 내용의 책이지만, 이 책을 접하게 되는 선후배동료 및 한의학관계자들의 많은 지도와 鞭撻을 부탁드린다.
2022년 12월
저자 양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