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갖기 쉬운 착각 중의 하나는 현상과 현상을 인과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정작 공부를 하면 할수록 원인과 결과 사이에 또다른 매개항이 무수히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품고 있고, 그것을 찾아낼 수 있는 시력을 갖추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현상과 현상 사이를 연결시켜 필연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다른 매개항이 발견된다면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설명해야 하니까요.
구체성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현실 세계가 무한한 것처럼 텍스트의 세계 또한 무한한 듯합니다. 그러니 문학사를 일관된 관점에 따라 하나의 선으로 설명하는 것은 복잡성의 세계를 미분하여 가시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텍스트와 텍스트를 연결시킨 ‘하나의 선’은 실제로 수많은 점들의 집합입니다. 좀더 명민해서 몇 개의 선을 더 그린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일원론을 비판하면서 ‘제삼의 길’ 따위를 내세워 다원론을 주장한 이들에 매혹된 적도 있었지만, 끝내 그들에게 동의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역사를 ‘하나’의 선으로 만드는 일을 비판했을 뿐, 여러 개의 ‘선’으로 만드는 자신들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든지 혹은 그렇지 못했든지 상관없이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사회적 평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모든 텍스트도 예술적 성취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의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텍스트란 언제나 사람과 동격입니다. 더구나 한 사람이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유일한 흔적이니, 소중하고 섬세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텍스트가 생성되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텍스트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그 자체로 개별성과 자립성과 완전성을 지니고 있는 텍스트는 비유컨대, 하나의 별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별을 선으로 이어 ‘성좌’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 연구였다면, 그것은 입체적인 공간을 평면적인 공간으로 환원하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별을 제 모습대로 보기 위해서는 별자리 만들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내가 보는 대로 ‘성좌’를 그리거나 ‘성군’을 만들 것이 아니라, 별들이 만들어내는 ‘성단’을 상상해야 합니다. 바깥으로는 다른 성단과의 입체적 관계를 살펴야 하고, 안으로는 그 성단의 가장 반짝이는 별빛을 돋보이게 만드는 어둠까지 함께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문학사를 염두에 두면서도 하나의 방법론을 구상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너무 길었습니다. 하지만 임화의 신문학사를 비판하면서도 사람들이 방법론이라는 이름의 잣대를 먼저 제시하는 임화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을 여전히 수긍하지 못합니다. 대신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은 ‘점으로서의 문학사’였습니다. 각각의 점들을 동일한 좌표 위에 놓고 하나의 점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다른 점과는 얼마만큼의 거리를 지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에서 특별히 염두에 두었던 좌표는 시간과 공간과 이념이었습니다.
타자에 대한 의존성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근대라고 할 때, 먼저 염두에 두었던 것은 ‘신민’과 ‘국민’, 그리고 ‘세계시민’ 사이의 길항이었습니다. 지금에야 누구도 ‘신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겠지만, 대한제국기는 말할 것도 없고 일제강점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민’이 되고자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해방 이후 ‘국민’이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국가에 개인의 삶을 의탁하거나 혹은 국가를 위해 동원되는 한, ‘신민’과 ‘국민’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풍문이나 가상 속에서 가까스로 존재하는 ‘자기통치’와 ‘세계시민’의 형상을 붙잡으려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건설된 국민국가에서 네이션/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스테이트/스테이티즘에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 소설의 근대적 이행과정을 살피면서 눈여겨 보았던 것이 더 있다면, 그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로 확장되는 동심원적 공간이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국 근대문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일본에 대한 종속성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대륙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의 작가들이 실존적 모험을 감행하던 일상적 생활세계였으며, 한국의 전통이 서구적 근대와 만나던 언어적 접경지대였고, 한국의 사상이 국민주권이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얻게 된 역사적 원천이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그러니 한국 근대문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한걸음 더 나아가 동아시아를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해방 이후 삼팔선과 휴전으로 가로막혀 갈라파고스화 된 지리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요즘 들어 문학을,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되묻게 됩니다. 말을 공부하는 것이 문학 공부라면, 말 너머에 존재하는 삶을 배우는 것이 인문학일 것입니다. 말을 모른 채 삶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삶이 말 너머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야 그 간극이 그리 멀지 않다고 믿었는데,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해 왔듯이 별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다 보면 언젠가 별무리를 그려 보고, 아름다운 미리내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고이 간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