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 일의 동기와 결과, 인종 성별 차별, 기회의 평등, 공정한 분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등.
사실 이런 논란과 갈등은 지금 새롭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미 수많은 사상가가 정의에 관한 사상과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정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정의에 관한 사상은 모두 우리에게 올바른 정의론을 정립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은 종종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하고 자기와 다른 견해를 배격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도덕규칙 역시 하나의 법칙으로서 자연법칙과 마찬가지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의 문제에서도 자신이 내세우는 하나의 원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독단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인간관계, 서로 다른 동기와 목적 및 가치관, 서로 갈등하는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현실의 정의와 얽혀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오늘날 필요한 정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불이론적 관점에서 동서양의 정의론을 통합하다
이 책은 동서양의 중요한 정의론들의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인 부분들을 찾아내어 종합하고 결합함으로써 현실의 정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동안 대립해 온 윤리도덕사상과 정의론들이 어떤 편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로부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밝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견해들을 불이不二적 관점에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서양의 정의론에 대해 말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 근대의 칸트와 공리주의 철학의 정의론, 현대의 여러 자유주의자와 공동체주의자의 정의론, 그리고 레비나스의 정의론을 다룬다. 저자는, 서양의 정의론은 대다수가 윤리도덕의 문제, 정치사회철학의 문제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으며, 정의의 문제만을 체계적으로 다룬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정의가 그 자체로 따로 논해지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 과정에 정의 개념이 녹아들어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정의 문제를 매개로 하여 여러 서양 철학자의 윤리도덕 및 정치사회철학을 개괄하고 있다.
2부에서는 동양의 정의론에 대해 말한다. 묵자의 정의론을 주로 살펴보면서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철학의 정의론과 비교한다. 저자는, 묵자의 사상은 그 어떤 동양의 고전적 사상보다도 일반 민중과 사회적인 약자들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평등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며,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정의 문제 및 윤리 정치 사회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묵자의 사상은 여러 면에서 유가철학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공맹의 핵심적인 윤리 및 정치사회철학도 함께 정리한다. 아울러 이렇듯 대조적인 두 사상이지만 공통점 또한 존재함을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