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을 넘어 통합과 소통의 길을 찾는 학문
경계는 기회와 불안의 영역, 접촉과 갈등의 구역, 협력과 경쟁의 현장, 양면적인 정체성과 차이에 대한 공격적인 주장이 발생하는 장소이면서 이러한 이분법들이 교차하고 대립하고 때로는 공존하며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경계는 단순한 장소의 구분이 아니라 부, 권리, 이동, 생활 수준에서의 현저한 공간적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세계 권력의 발현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경계 연구를 통해 누가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경계를 만들고(bordering) 유지하고 바꾸고 혹은 없애거나 넘으려 하는지 물어야 한다. 경계는 우리의 삶에서 명백한 정치적, 지리적 실체이지만, 이 책은 경계의 불투명도가 투명도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경계의 유동성, 복잡성, 다면성을 포괄적으로 파악하여 경계의 역사적 진화와 현대의 경계에 관한 연구를 개관한다. 모든 경계에는 이야기가 있다. 지도상의 모든 선과 풍경에 남겨진 모든 표식들은 권력과 문화의 복합적인 조정 속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 책은 경계 짓기에 내재한 폭력성을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타자를 만들어내고 배제하는 경계의 역할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이를 통해 소속감과 정체성을 촉진하는 경계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는 동시에 타자를 만들어내고 배제하는 경계의 배타성을 줄여나가고 통합과 소통의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 경계 연구라는 현장에 충실한 학문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모순으로 가득한 경계한국의 독자들에게
민냉전의 종식, 지구적 원격통신 기술의 출현, 다자간 제도 및 협정의 확산은 국경 없는 세상을 예고하는 듯했지만, 21세기 초의 수십 년 동안 국경의 중요성이 점차 사라지기보다는 전면에 나서게 된 사례들이 넘쳐났다.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전염병에 대응하여 다양한 유형과 규모의 국경 폐쇄 및 여행 제한에 의존했다. 대부분은 효과가 미미했다.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고 기후 변화를 완화시킨다는 요구는 국경으로 정의되는 사회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맥락과 함께 더더욱 확장된다. 우리는 국경으로 명확히 구분된 세상에 살고 있고 가까운 장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경계 연구는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적으로 무장된 비무장지대를 가지고 남북으로 대치해 있으면서도 세계화나 신자유주의가 극적으로 추구되었던 한국사회에서 시대를 진단하고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분석 틀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