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외교문서의 모든 것
918년부터 1392년까지 한반도에 고려가 있었던 동안, 중국 대륙에서 황제를 칭한 왕조는 후량(後梁)부터 송(宋), 거란(契丹), 금(金), 몽골제국, 명(明)까지 10개가 넘었다. 고려는 그들 모두를 상대했고, 각각을 대우하는 방식은 다 달랐다. 외교의 제도와 관행은 언제든 바뀌었고, 그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었다.
고려와 오대, 그리고 북송 초기에 송의 책봉을 받던 시기의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조서와 표문만이 외교문서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당시 공식적인 외교의 주체는 양측의 군주뿐이었으며, 외교는 군주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와 오대ㆍ북송의 관계는 후대의 고려-거란ㆍ금 관계보다는 과거 신라-당 관계와 유사한 측면을 더 강하게 드러내었다. 양국 사이의 사신은 고려 측에서는 ‘조공(朝貢)’으로 표현된 경제적 증여, 중국 측에서는 국왕 책봉 등 가장 의례적인 사안에 국한해서만 파견되었다.
고려와 거란ㆍ금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문서 외에도 고려 군주와 거란ㆍ금 동경(東京)의 장관 사이에서 서한식 문서를, 그리고 양국 관부들 사이에서 첩식(牒式) 문서를 비교적 활발히 주고받았다.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으며 처리해야 할 현안이 자주 발생했던 양국 관계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풀어가기 위해 여러 층위에서 소통 경로를 개설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민감한 사안일수록 낮은 단계에서부터 활발하게 의사를 교환하면서 점차 상급의 소통 경로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에, 양국 군주 사이에는 매우 의례적이고 우호적인 내용의 사신과 문서만을 교환할 수 있었다. 쉽게 긴장상태에 놓일 수 있는 상황에서 여러 단계의 완충장치를 만들어두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러한 경로에서 상하관계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첩(牒)이라는 문서가 고려-거란ㆍ금 관계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서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몽골 관계에서는 군주 사이의 문서, 고려국왕과 몽골제국 관부ㆍ관인 사이의 첩식 문서 및 관문서식 문서, 그리고 양국의 다양한 주체 사이의 서한식 문서 등, 전근대 한중관계에서 사용된 대부분의 외교문서식이 두루 활용되었다. 양국 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폭이 훨씬 넓어진 것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14세기 이후로는 고려-몽골 관계를 기존과는 달리 국왕이 독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양측의 관부 및 유력자들이 직접 외교의 전면에 나서 개입하였다. 몽골제국의 정치 문화에서 이러한 개별적인 접촉을 허용하였던 것도 전면적인 접촉이 가능했던 한 요인이 된다. 양 측의 관부, 혹은 유력자들 사이에서 사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여 주고받았던 서한식 문서가 폭넓게 사용되었던 것이 이 시기의 외교관계를 묘사하는 데에 가장 좋은 소재이다.
고려-명 관계에서는 양국의 외교관계에 명이 설정한 관료제적 운영 원리가 강하게 적용되었던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군주 사이의 문서가 여전히 사용되었던 외에, 고려국왕은 명의 중서성ㆍ예부ㆍ요동도사 등과 관문서식 외교문서를 주고받았다. 반면에 상하관계 표현에 유연함을 보였던 첩식 문서는 사용이 중지되었고, 사적 관계를 전제로 한 서한식 문서는 ‘인신무외교(人臣無外交)’라는 원칙 하에 철저히 금지되었다. 단순히 서식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문체나 용어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명 국내의 양식을 따랐던 관문서식 외교문서야말로 고려-명 외교관계의 제도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서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는 고려시대의 대중국 외교문서 서식을 분석하여 간취할 수 있는 큰 흐름에서의 변화를, 한마디로 고려 전 기간을 거치며 고려와 중국의 관료제 차원의 일체화 내지는 통합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고려사」와 중국의 역대 정사(正史)는 물론,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 「송대조령집(宋大詔令集)」 등의 문서집, 이규보나 이색 같은 문인들이 남긴 문집 등등, 지금까지 전해지는 기록을 모두 뒤지면 양쪽이 주고받은 외교문서 1,000여 건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고려가 보냈거나 받았던 외교문서를 빠짐없이 분석하였다. 고려가 막강한 이웃에게 때로는 머리를 숙이고 때로는 허풍을 치는 모든 이야기, 중국 왕조가 만만치 않은 이웃에게 때로는 추파를 던지고 때로는 호통을 날리는 모든 이야기가 문서에 남아 이 책에 담겼다. 거기에 실린 내용만이 아니라 아주 사소해 보이는 글자 하나, 양식 하나하나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각국의 입장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외교문서를 남김없이 찾아 소개하고 그 의미를 밝혀내고자 했다.
고려시대 외교사 연구의 모든 것
흔히 고려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역동성’을 꼽는다. 고려의 외교만큼 역동적인 것도 찾기 힘들다. 수도 많고 변덕이 끓는 이웃들을 상대했던 고려의 외교는 재밌는 공부 거리를 많이 제공해왔고, 그만큼 훌륭한 연구도 많이 쌓여왔다. 이 책이 참고한 700여 건의 문헌은 지금까지 밝혀진 고려시대 외교사 연구의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국가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힘싸움과 협상이 일어났는지, 그 형세를 분석하는 데 주목해왔다. 그러나 형세는 형식을 통해 완성되고 고정되었다. 이 책은 각 국가들이 현실의 모습을 어떤 틀에 담아 설명하고자 했는지, 이를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어떤 줄다리기를 벌였는지 등을 외교문서에 드러나는 표현과 양식으로 추적하였다. 형세와 형식이 어떻게 연동되어 돌아갔는지, 이 책을 통해 더 풍부히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