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빈을 비롯해 시에나, 카이펑, 피렌체, 베네치아 등 동서양 열다섯 도시의 도시그림을 들여다본다. 언제 누가 왜 그렸는지, 어떤 공력이 들어갔는지, 특징은 무엇인지, 역사적 중요성은 어떤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장소, 길, 건축물, 주택 등과 함께 그림을 그린 시점을 중심으로 도시의 기원과 성장 및 변화를 이야기한다. 저자 손세관 교수는 “이렇게 열다섯 도시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면서 이 책은 인류가 이룬 “도시문명의 만화경”이라고 한다.
동서양의 도시와 주거문화에 관심 두고 오랫동안 공부한 저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도시그림에 관심 있었다고 한다. 세밀하게 그려진 한 장의 도시그림 속에는 수백 페이지 글보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도시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이야기해주려면 도시, 건축, 미술, 역사를 두루 꿰뚫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많은 이가 가고 싶어 하는 도시들로서, 제각각 장소의 혼이 돌올하다. 그러니 화가들이 앞다투어 이들 도시를 그렸다. 나는 도시마다 그 전체를 그린 그림 한 장을 주인공으로 내걸고 그 밖의 다양한 그림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장소의 혼을 불러들였다. 사진은 되도록 피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그것도 동원했다.
_009쪽에서
도시그림(都市圖), 도시 전체를 그린 그림
그림이 지도로 인정받으려면 정확한 지리정보를 담아야 한다. 첨단기술이 있는 요즘, 그런 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옛 화가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지도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했는데, 당시에 그려진 그림지도는 지도와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지도라고 하기에는 좀 부정확하고,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지리정보가 비교적 충실하고 그랬다.
_006쪽에서
서양에서는 도시를 주로 지도와 그림을 결합한 형식으로 그렸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도시의 물리적 요소를 제 위치에다 그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게. 이런 그림을 ‘카르토그라프’라고 불렀다. 그림지도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했는데 주로 도시를 홍보하려는 목적에서 그렸다. 이런 그림에는 지리정보와 함께 당시 사람들의 ‘꿈과 동경’이라는 귀중한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여행이 활발해지고 산업이 발전하는 18세기에 접어들면 관광을 위한 지도가 성행하고, 18세기 중반부터는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러 예술품의 반열까지 오르고 제작 수단도 목판화에서 동판화로 바뀌었다. 발전을 거듭해온 그림지도 기술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인기가 시들해진다. 이 책에서는 15세기에서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그림지도와 함께 ‘관광의 시대’ 그러니까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지도를 “기술과 예술이 결합해서 만들어낸 인류의 빛나는 성취”라고 말한다.
〈튀르고 지도〉. 1739년 세상에 나온 이 지도는 ‘예술품’이라 해도 좋다. 그만큼 아름답다. 게다가 정교하기가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하다. 18세기 파리의 모습을 창문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전달한다. 이 지도를 ‘튀르고 지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댄 사람이 당시 파리 시장 미셸 에티엔 튀르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1734년 당시 왕립 미술아카데미에서 투시도를 가르치던 루이 브레테즈 교수에게 최신의 파리 지도 제작을 의뢰했다. 파리가 ‘잘 다스려지는 도시’이자 무엇보다 ‘근대도시’임을 만방에 과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_279쪽에서
책에서는 서양의 도시뿐 아니라 한중일 세 나라의 도시 네 곳(중국의 카이펑, 쑤저우, 베이징, 일본의 교토, 우리나라의 한양)을 그린 그림지도도 이야기한다. 동양에서는 평면지도, 그림지도, 도시풍속화가 성행했다고 한다. 한중일 세 나라는 평면지도에 그림을 섞어 그렸는데, 도로나 하천 등은 도면처럼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산세는 동양화로 그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부터 진경산수화 기법으로 그렸는데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서양의 기법을 적용한 그림지도도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기감영도⟩와 ⟨동궐도⟩가 그렇다.
중국 북송시대의 화가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나 교토를 그린 ⟨낙중낙외도⟩, ⟨경기감영도⟩는 시가지 모습과 시민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도시 풍속도이기도 하다. 도시 풍속도는 주로 병풍이나 두루마리로 만들어 보관했다고 한다. 중국, 일본과 같은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런 그림을 ‘도시도(都市圖)’라고 부르는데 도시 전체를 그린 그림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런데 장택단은 정반대로 갔다. 대상을 극도로 구상화하고 그것을 촘촘리 버무려내는 특별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대상도 특이했다. 도시. 선례가 없는 화풍에 선례가 없는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청명상하도⟩를 일러 풍경화 또는 풍속화라고 하지만 둘 다 정확한 규정은 아니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도시도 즉 ‘도시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사실적으로.
_079쪽에서
지도 한 장을 불러온다. ⟨도성도⟩. 같은 이름의 한양 지도가 여럿 있으니,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도성도’라고 지칭해야 틀림이 없다. 18세기 후반 정조 치세에 그린 것이다. 우리는 이런 그림을 ‘회화식 지도’라고 부른다. 동양화처럼 그린 지도, 뭐 그런 뜻이다. 서양식으로 그린 그림지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이런 지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겸재 정선 덕분이다.
_517쪽에서
깨달음의 즐거움과 함께 눈의 호사까지
흰색과 검은색의 구분. 그 기준이 뭘까? 안인가 밖인가? 그건 아니다. 대중이 드나들 수 있는가 없는가? 바로 그거다. 검게 표현한 건물도 내부에는 방이 있고 복도가 있지만 그런 건 무시했다.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흰색, 아닌 것은 검은색. 그렇게 나누었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려면 많은 건물의 평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왜 그런 수고를 했을까?
_321쪽에서
도시를 그린 한 장의 도시그림을 펼쳐놓고 저자는 그림에 묘사된 도시와 건축은 물론 미술사, 지리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쉽게 풀어쓰고 간결하게 만진 글과 엄선한 450여 장의 그림 덕분에 우리는 깨달음의 즐거움과 눈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바로 이 책의 백미이다. 그림지도를 소개한 책은 간혹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문, 사회, 역사 등 지도가 그려질 당시의 도시를 이렇게 입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은 지금껏 없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날 때 이 책을 가방에 넣고 가라고 권한다. 책을 펼쳐놓고 도시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좋은 도시가 어떤 도시인가’를 물어보고 해답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도시의 역사성과 고유함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서울, 베이징, 쑤저우, 이스파한은 우리의 탐욕과 무지 때문에 조화롭고 고요하던 풍경이 어디서왔는지도 모르는 이물질들로 덧칠되고 뒤범벅되어 망가지고 추악해졌다고 한탄한다. 책에 소개된 도시그림을 보면서 그 도시가 가진 정체성을 다시 찾아보자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는 ‘아름다운 도시’ 대신 ‘멋진 도시’라는 말을 즐겨 쓴다. ‘멋진 신사’란 그만의 매력을 풍기는 멋쟁이 신사 아닌가.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는,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 그러니 ‘멋진 도시’도 그 도시만의 ‘풍성과 삶의 질감’이 뚜렷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유한 유전자, DNA. 그게 작용해야 그런 도시가 된다.
_590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