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독자와 《구운몽》의 첫 만남은 보통 성진이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구운몽》이 허무하고 따분한 교훈을 주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마는 까닭이다. ‘모든 것이 하룻밤 꿈이었다’는 성진,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으니…’ 하며 알쏭달쏭한 말을 하는 육관대사. 성진이 꾸었다는 꿈은 ‘외모와 능력을 다 가진 남자가 여덟 아내를 얻는 것’이니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완벽한 남자가 아내들에게 늘 한 방 먹고 당하는 역할이라면 어떨까?
선남선녀들이 만들어 가는 즐거운 사랑과 기쁨
여덟 소녀의 다채로운 매력과 진한 우정
현실과 꿈의 경계를 지우는 정교한 구성까지
인생무상과 이처 육첩을 넘어 읽는
아홉 빛깔 구름 이야기
《구운몽》에는 선남선녀들이 밀고 당기며 만들어 가는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다. 고상한 말투와 예법 속에 재치 있는 장난을 담고, 정원에 모여 재주를 겨루며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유유자적 좋은 경치를 구경하는 나날을 보낸다. 같이 어울려 놀며 다정한 평화를 만끽하는 세계인 것이다.
제각기 색깔이 선명하고 성격이 뚜렷한 여덟 소녀는 《구운몽》이 주는 오락적 재미의 핵심이다. 양소유가 여장을 하고 자신을 속이자 그를 놀리는 데 앞장서는 정경패, 경패와 끝까지 함께하기 위해 소유를 떠나는 가춘운, 영리한 계섬월의 말솜씨에 늘 지는 적경홍, 기구한 운명에도 꿋꿋함을 잃지 않는 진채봉, 소유를 도와주며 자신의 인연을 스스로 찾아가는 심요연과 백능파, 뛰어난 여성들과 교류하기를 꿈꾸는 이소화까지. 이들은 양소유의 아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직접 구축한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친구를 영원히 곁에 두기 위해 양소유와 혼인하는 길을 택한다. 나아가 황족과 시녀, 처와 첩으로 구분되어 있던 자신들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든다.
아홉 구름의 일생은 꿈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인간의 삶 자체는 덧없지 않다. 양소유가 느낀 허무는 오히려 과정이 생략된 승승장구, 사회 질서에 고민 없이 순응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힘쓰며 주어진 길을 걷는 안전한 선택에서 온다. 무엇이 인간을 허무하게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이 경험은, 성진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성진의 사고를 구성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육관대사는 양소유로서의 삶을 ‘꿈’이라고 폄하하는 성진을 향해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꿈이 아니겠느냐?”라고 하는 것이다.
《구운몽》은 꿈과 현실의 위치를 살짝 바꾼다. 성진은 작품의 앞뒤에 잠시 등장하지만 현실로 그려지며, 양소유의 일생은 꿈이지만 이 작품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길고 세세하게 그려진다. 꿈을 현실처럼, 현실을 꿈처럼 만드는 정교한 구성은 삶에 대한 깨달음과 이야기가 주는 쾌락 중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