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o.』에 수록된 좋은 글들 중에서 내 글만 떼어다가 아카이브 시킨다는 것은 어쩐지 부끄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개인 장용 책을 계획했다. 당연히, 전혀 진척이 없었다. 혼자하기에는 너무 벅찬 작업이었다. 게다가 나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얼핏 양가적 심정으로 보이이지만 훨씬 더 복잡다단하고 다면적인 이해관계와 심리 상태에 빠져 포기하려 할 때, 스스로를 볼품없다며 미워하고 빈껍데기뿐이라며 자조할 때 팟빵의 구독자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이상한 자신감, 자족감, 자존감 같은 것들, 말하자면 내가 나를 사랑스럽게 보는 세포들이 살아났다.
『지킬의 영화 비평』은 오로지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청취자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결과물이지만, 이를 통해 청취자 뿐만 아니라 영화, 영화 비평, 영화 담론을 즐기는 이들과의 교감을 기대해본다.
논쟁을 위한 논쟁, 반론을 위한 반론을 즐겨하고, 인식의 체계를 부정하고 거부하며, 시스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는 나지만 그런 삶은 참으로 고독하다. 설사 책을 내는 것이 부끄러울지라도 가끔은 세상과 이정도의 타협을 하며 온기를 느끼고 싶다.
- ‘이번 책의 카페 크리틱은 여기까지입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