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는 우리들에게 있어 남부끄러운 역사로 인식된다. 외세를 맞이해 치른 두 차례의 양요는 분명 승리이기는 하나 전투에서는 지고 전쟁을 이긴 절반의 승리에 불과했고, 여러 열강들에게 시달리다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조선의 근대, 개화기는 수많은 판단 착오와 실패로 점철되었기에 낭만의 배경으로는 소비되지만, 대체적으로는 이 시기에 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 역시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당대의 위정자들 중에는 서구의 접근에 위협을 느낀 위정척사파도 있었고, 외세의 힘을 빌어서라도 조선을 개화시키고자 한 급진 개화파, 동도서기의 기치 아래 조선의 역량을 길러 대처하려던 온건 개화파도 있었다. 이들의 방향은 제각각이었고, 항상 좋은 결과를 도출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다. 현대의 대다수가 좋게 보아 ‘의미 없는 황제놀음’부터 강경하게는 ‘고종의 반동 쿠데타’ 정도로만 인식하는 대한제국 선포에도 자주성 강화와 국제적 입지 확보, 근대화 추구라는 나름의 의의가 있었다. 조선 수호의 최일선에 섰던 군인들 역시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에 대향하며 때로는 목숨을 바쳐 가면서도 최선을 다했고, 화승총과 구군복에서부터 세계의 추세를 따라잡은 신식 소총과 대포, 서양식 군복 차림, 새로운 편제로 점차 변화해 갔다. 이들, 즉 조선의 위정자들과 군인들은 근세의 돌풍에 뒤이은 국권 침탈, 가혹한 식민지 시절을 거쳐 맞이한 독립과 분단, 한국전쟁, 베트남 참전을 거쳐 지금까지 다다르는 동안 개혁과 좌절, 영광과 치욕을 넘나들며 한국과 한국군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나라와 강군으로 만들었다.
블루픽(도서출판 길찾기)이 기획한 근현대 한국 군사사 프로젝트 ‘타임라인 M’은 바로 이 시기, 개항기 조선부터 시작하여 근대를 관통하며 현대 대한민국에 다다르는 한국의 역사, 그중에서도 군사사 및 정치사를 조망해 나간다. ‘오로라’라는 필명으로 그간 근현대시기 군제사를 다뤄 온 김기윤 작가가 글을 쓰고 우리 민족의 전통 복식 및 문화, 제도와 관련된 일러스트 작업으로 잘 알려진 우용곡, 초초혼, 금수, 판처 작가가 디테일 높고 고증에 충실한 삽화를 선보인다. 이번에 출간하는 타임라인 M프로젝트의 첫 권은 병인양요부터 제1차 동학농민전쟁까지의 기간을 다루며, 아편전쟁을 통해 서양 세력의 위협을 직접 느끼기 시작한 조선이 어떻게 양요에 대처했는지, 결국 외세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어떻게 군대를 근대적으로 재조직하려 노력하며 자강에 힘썼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품고 있던 내부적인 한계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은 한국사의 흐름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근세, 세계사의 격랑 속에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사람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독자들은 다섯 작가가 이야기와 삽화를 통해 풀어놓는 복식과 제도, 군사 장비와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뿌리를 더듬어 나가고, 이를 통해 현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