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정평 있는 주해서로 지난 60여 년 동안 필독서 역할
이 책은 초판이 출간된 1960년 이래 지난 60여 년 넘게 칸트 실천철학 분야의 고전적 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주해서이다. 80여 년이 지나온 지금까지도 『실천이성비판』을 단독으로 집중 조명한 단행본급 연구서가 거의 전무한 실정임을 감안하면, 이 책이 차지하는 위상은 그야말로 다대하다고 할 수 있다.
칸트의 실천철학적 주제의 각론에 해당하는 연구들은 지난 세기에 비해 훨씬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 책에서 보여준 저자의 입장과 상반되는 해석들, 이를테면 도덕적 동기부여의 문제 및 도덕성과 행복의 관계, 또는 최고선의 해석 문제와 관련해 저자와 상이한 해석을 하는 연구들도 꾸준히 제출되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이 책만큼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전체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연구한 저작은 드물다.
원제에 드러나 있듯이 이 책은 일종의 ‘코멘터리’(A Commentary), 즉 서양의 문헌 연구 전통에서의 ‘주해’(commentarius)의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실천이성비판』을 아무리 잘 번역하고 해석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칸트 텍스트가 갖는 이해의 지난함 때문에 사실상 그의 철학과 사유 세계를 온전히 흡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것은 칸트 철학의 기본 개념이 갖는 난해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성사적 배경과 맥락이 불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한 해석상의 여러 난점 탓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자가 시도하는 ‘주해적 접근’은 바로 이러한 고전 독해의 어려움을 상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칸트 철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조차 숙독을 통해 이 벽돌과 같이 단단한 책의 외피를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예비 연구자들도 문헌 연구의 기본적인 방법을 숙지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제1부는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본격적 주해 작업에 앞서는 예비적 논의에 해당한다. 제1장은 칸트의 실천철학적 문제의식의 발전사와 더불어 그가 『실천이성비판』의 저술에 이르게 된 과정과 맥락을 밝히고, 제2장은 『실천이성비판』의 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한에서 『순수이성비판』의 기초 개념과 구조를 다룬다. 제3장은 심리학의 3인칭적 관점과 달리 행위자의 1인칭적 관점에서 사고와 행위가 어떻게 매개되는지를 다루는 장으로서, 훗날 저자의 고유한 행위철학 저작인 『행위자와 관찰자』의 입론에 해당한다. 제4장은 『실천이성비판』의 서문과 서론의 주해이지만, 동시에 『도덕형이상학 정초』 및 『도덕형이상학』과의 변별점을 드러냄으로써 이 저작의 고유성을 분명히 한다.
제2부는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실천이성비판』의 분석론의 주해에 집중된다. 여기서 저자는 분석론의 주요 문제, 즉 순수 실천이성의 실재성의 입증이라는 문제를 『순수이성비판』과의 평행 관계 속에서 도덕법칙의 연역 문제로 번역하며, 이에 따라 분석론은 같은 대상, 즉 도덕법칙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연역인 형이상학적 연역, 선험론적 연역, 주관적 연역의 문제가 다루어진다고 해석된다.
형이상학적 연역은 분석론 제1장(‘원칙’ 장)의 전반부(§§1-8)에서 실천이성 일반의 분석으로부터 소거법적 방식으로, 즉 간접적으로 순수 형식적 원칙으로서 도덕법칙에 도달하는 과정으로서 제6장부터 제8장의 논의가 여기에 해당하며, 분석론의 제2장(‘대상 개념’ 장)의 주해인 제9장 역시 이에 포함된다. 다음으로 제10장은 선함론적 연역이 다루어지는 것으로서 분석론 제1장 후반부의 “이성의 사실” 학설과 ‘연역’ 부분의 주해이다. 다음으로 분석론 제3장(‘동기’ 장)을 다루는 제12장은 주관적 연역에 해당한다. 원전의 주요 구절을 따라가는 제2부의 나머지 장들과 달리, 제11장은 칸트 실천철학의 핵심 개념인 ‘자유’를 주제화한다. 이 장에서 제출되는 칸트의 자유 이론에 관한 논의는 체계적이면서도 상세한 해설을 포함한다.
제3부는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천이성비판』의 변증론을 상대적으로 간략히 다룬다. 제13장에서는 변증론 전반부의 최고선의 이율배반 문제를 중심으로 주해하고, 제14장에서는 변증론 후반부의 순수 실천이성의 요청들을 다룬다.
저자 루이스 화이트 벡, 칸트 실천철학 연구의 권위자
이 책이 『실천이성비판』의 가장 충실한 안내서로 주목받는 것은 저자의 이력에서도 확인된다. 연구 경력 대부분을 근대 독일 철학, 특히 칸트 철학 연구에 매진한 그는 “칸트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면서 철학을 할 수는 있지만 칸트 없이 철학을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에게서 칸트는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상가이자 연구의 중심이었다. 『실천이성비판』의 영어본 번역을 비롯해 다수의 칸트 철학서를 번역함은 물론, 1970년 로체스터 대학에서 6일간 개최된 ‘제3회 국제 칸트 학회’의 조직위원장으로서 칸트 연구의 국제화에도 많은 기여를 한 바 있다. 특히 그의 주저인 『행위자와 관찰자』는 단순히 철학사적 문헌 연구에 머물지 않고 저자 자신의 고유한 행위철학을 전개한 저작으로 일찍이 독일어로 번역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