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미래가 응축된 작은 ‘점’을 찾아서
봄에 메마른 가지에서 연둣빛 싹과 보드라운 꽃봉오리가 맺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앙상한 가지 끝 그 작은 ‘점’ 안에 이 모든 게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를 가진 엄마가 뱃속의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갖은 계획을 세우듯, 겨울나무의 가지도 봄에 깨어날 싹을 위해 혹독한 계절을 견디며 차근차근 나무의 미래를 준비해 나간다.
겨울은 나무가 ‘맨몸’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기세 좋게 몸을 키우던 푸른 잎도, 화려하게 피어 수분 매개자를 유혹하던 꽃도, 대를 이을 씨앗을 품은 탐스러운 열매도 사라진 나무는 본연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비우고 내년을 위한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다. 숲은 생장을 멈추고 생존을 위한 비움의 시간에 들어선다.
숨죽이고 죽은 듯 서 있는 이때의 겨울나무는 자신이 누구인지 쉽게 말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확실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겨울눈과 나무가 제 몸과 주변에 남긴 흔적들이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만 피었다 지는 꽃이나, 변이가 많은 나뭇잎, 환경에 따라 심하게 변하는 줄기나 가지 등을 보고 어떤 나무인지 구별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작디작은 겨울눈과 나무가 남긴 흔적이 나무 구별을 위한 더 확실한 단서가 된다. 겨울눈에서 싹이 트는 과정을 잘 지켜보면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야가 바뀌고, 나무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겨울나무와 겨울 숲 새롭게 바라보기
이 책은 저자가 겨울 숲에 들어 생명의 힘을 안에 모으고 있는 겨울나무를 오랜 시간 관찰한 기록이자, 겨울나무와 겨울 숲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안내서다. 나무의 생태적 특징에 관한 설명도 있지만,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겨울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겨울’이라는 계절의 의미, 숲 생명들이 겨울 숲에 남긴 흔적의 의미도 찬찬히 되짚는다. 겨울에는 많은 것을 비워 낸 나무 때문에 비로소 숲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겨울이 되면 나무의 몸도, 주변의 나무들도 더 뚜렷이 보인다. 다른 계절에 쉽게 볼 수 없었던 새나 작은 짐승 등의 흔적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이건 겨울 숲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나무와 숲을 사랑하는 이들이 겨울에 숲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겨울 숲의 아름다움과 숨은 의미에 관한 이야기를 ‘산결, 잉태, 점, 선, 비움, 틈, 온기, 플랜B, 동그라미, 동행’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2장은 추위에 대비하기 위한 나무의 여러 전략과 겨울눈과 겨울나무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흔적 등 겨울나무를 관찰하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정리해 놓았다. 3장 ‘위로의 숲’에서는 중부지방의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2종의 나무가 겨울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4장 ‘공존의 숲’에서는 수리산에서 볼 수 있는 19종의 나무, 5장 ‘동행의 숲’에서는 북한산 영봉에 오르며 만날 수 있는 18종의 나무, 6장 ‘만남의 숲’에서는 북한산 대성문에서 위문까지 주 능선을 걸으며 관찰할 수 있는 19종의 나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가 자주 오가는 등산 코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겨울나무가 무사히 쉬는 시간을 마치고 봄을 맞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보여 주며 저자가 느꼈던 그 경이로운 경험에 독자도 함께 동참하게 한다. 겨울 숲이 시련과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새봄의 희망으로 가득한, 생명의 힘이 응축되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한다. 나무와 숲을 사랑하고 겨울 산을 찾는 즐겨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고 겨울에도 이런 저런 나무들을 알아보고 눈을 맞추고 인사할 수 있어 겨울과 겨울 산의 매력에 더욱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