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하지 못한 문명의 횡포로 ‘모자 왕국’ 조선의 모자문화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조선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딴 세상이었다. 신분 차별이 극심하였다. 신분 차별은 옷차림과 쓰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조선의 관모(冠帽)는 신분 사회의 가치관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기에 조선 사회와 그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늠자가 되었다. 조선 사회에서의 관모는 주로 반상의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상용화되면서 착용자와 용도에 따라 그 종류와 형태가 수백 종으로 불어나 분화해 나갔다. 조선의 선비들은 의관정제(衣冠整齊)를 선비가 지켜야 할 금도로 여겼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관모를 갖춰 썼다. 반상을 가리지 않고 맨머리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상민들도 양반의 삶을 선망하여 모자를 쓰면서도 자신의 신분과 상황에 어울리는 독특한 모자를 만들어 썼다. 조선에서의 모자는 의복의 장식품 또는 장신구의 역할을 넘어 신분과 계급, 직업, 나이, 성별을 상징하고 분별하는 일종의 사회적 코드 역할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교에서 비롯된 상하 간의 예의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젠더)까지 포함하고 있었기에 모자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독자들은 ‘모자의 나라 조선’의 후미에 수록한 방대한 참고문헌과 논문을 볼 때 저자의 열정과 고초를 충분히 짐작하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조선의 모자를 통해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더구나 왜 조선이 모자 왕국이 되었는가? 에 관한 이렇다 할 연구 논문은 물론 대중 서적도 찾지 못했다. 단지 이 땅을 찾았던 서양인들이 조선을 그렇게 불렀다는 단편적인 기록만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거나, 우리가 잊고 있던 수많은 조선의 모자를 깊이 있는 해석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선 여성들이 사랑했던 겨울철 필수품인 난모(방한모)를 세밀하게 추적한 것은, 몇몇 복식 연구자들의 논문을 제외한다면 이 책이 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조선의 모자를 단지 조선 문화사의 일부로만 간주하지 않고 조선의 모자가 조선 사회와 조선의 역사에 미친 영향뿐만 아니라 상호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냉정하게 파헤치고 있다.
조선 여성의 난모와 더불어 조선 선비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갓을 ‘모자의 나라 조선’에 초청하여, 갓과 조선 선비와의 관계, 갓과 성리학의 관계, 갓의 제작 과정, 갓이 이 땅을 떠나는 과정을 거침없는 문장으로 밀도 있게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