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외계의 검은 구체에 의해 ‘격리(쿼런틴) 상태’가 된다”
양자역학을 토대로 인류를 ‘우주 파멸’의 존재로 구축한 충격적 상상력
작품 제목인 ‘쿼런틴(Quarantine)’은 ‘격리’, ‘검역’, ‘차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에서도 자주 언급된 단어인데, 『쿼런틴』에선 그 단어가 조금 다르게 쓰이는 것이다. 현실에선 전염병으로부터 인간을 격리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쿼런틴』에선 ‘인간으로부터 우주를 격리한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인간이 우주 역병 병균의 숙주라도 된다는 것일까? 결말로 가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니게 되지만, 초기 설정상으로 인류가 격리된 이유는 우주를 파멸로 이끌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수 능력’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양자역학적 지식이 다소 필요하지만, 『쿼런틴』을 문학작품으로 즐기는 데엔 그런 지식은 전혀 필요 없다. 인류가 ‘우주 파멸’의 존재가 되었을 때의 외계 종족의 반응, 그 외계 종족의 강제 격리를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인류의 반응, 혼란에 빠진 지구에서의 각 개인이 겪는 변화와 갈등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사를 꾸준히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에 대해 체득하게 된다.
『쿼런틴』을 읽고 나면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선 양자역학에 대한 고차원적 이해가 필요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양자역학을 너무도 쉽고 정확하게 소설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그렉 이건은 양자역학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토대로 『쿼런틴』을 썼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김상욱은 강연장에서 “물리학자라면 (경외감 때문에) 울면서 볼 책”이라 밝힌 바 있다.
양자역학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일뿐더러 우리가 친숙하게 체감하는 고전역학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쿼런틴』을 읽을 때 양자역학에 대해 천착하지 않고 서사적 재미만 추구하더라도 전혀 문제는 없다. 하지만 『쿼런틴』에서는 양자역학을 그렇게 어렵게 다루지도 않거니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읽으면 SF 특유의 ‘경이감’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공부한다기보다 체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기를 권장한다.
『쿼런틴』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지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때다. 『쿼런틴』의 세계에서 온 우주는 ‘양자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관측’한 존재의 양자 중첩을 깨뜨려 하나의 상태로 귀결시킨다. 인간의 시선이 닿은 존재는 중첩돼 있던 무한대의 가능성을 잃고 딱 한 가지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쿼런틴』의 세계에선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이 (인류를 포함해) 난도질당한다. 이 엄청난 세계관 앞에서 양자역학적 설명은 사소하다. 그러나 이 사소한 설명을 이해하면 이 비현실적인 세계를 무척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재난ㆍ디스토피아〉,〈포스트휴먼ㆍ초인물〉,〈추리ㆍ미스터리ㆍ하드보일드〉
모든 시대와 문학 장르를 초월한, ‘작가들의 작가’의 마스터피스
2003년 『쿼런틴』이 처음 출간됐을 당시, SF 독자들이 받았던 충격이란 실로 엄청났던 것으로 보인다. 2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재출간에 대한 독자들의 요청이 이어졌으니까. 이처럼 지속적인 요청과 찬사를 받고 결국 재출간하게 된 『쿼런틴』의 힘이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무엇보다도 문학적 재미에 있다. 『쿼런틴』은 ‘양자역학과 하드 SF’라는 높은 허들을 가져온 만큼, 독자가 그 허들을 넘는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온갖 문학 장르의 서사와 분위기를 빌려와 쓴다. 『쿼런틴』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장르는 〈재난ㆍ디스토피아〉, 〈포스트휴먼ㆍ초인물〉, 〈추리ㆍ미스터리ㆍ하드보일드〉 이렇게 세 가지다. 이렇듯 최소한 세 개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니, 『쿼런틴』을 수입한 14개국의 표지는 전부 제각각이다.
『쿼런틴』의 도입부는 ‘재난 서사’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잘 담아내고 있다. 2034년 어느 날,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지름이 명왕성 궤도의 두 배나 되는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 ‘버블’이 태양계를 완전히 감싸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전 세계적 혼란을 초래했지만, 그 혼란에 대한 대항마로서 디스토피아 소설에 나올 법한 기괴하고 강압적인 정부가 등장할 뿐 의외로 큰 문제 없이 30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사람들은 별이 사라진 밤하늘을 일상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쿼런틴』의 캐릭터 및 초반 서사는 ‘추리ㆍ미스터리 서사’와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잘 조합하고 있다. ‘버블’ 출현 후 30년 후인 2066년. 전직 경찰관이자 사립 탐정인 ‘닉’은 실종된 한 여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여성은 혼자서 거동조차 힘들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생활하던 병원은 24시간 감시체제 아래에 있었단 것이다. 닉은 이 여성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버블’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주인공인 닉의 캐릭터엔 ‘포스트휴먼 특유의 고찰’과 ’초인물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쿼런틴』에서는 외계의 검은 구체 ‘버블’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SF적 요소가 있으니, 바로 최첨단 유전공학과 나노공학의 산물인 ‘모드’다. 모드라는 일종의 신경 회로를 뇌에 장착하면 나노로봇을 통한 신경계의 재배열이 가능하며, 이는 곧 인간의 몸과 의식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모드를 장착한 닉은 내가 방금까지 쫓고 있던 적에게 충성하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어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김겨울이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흥미진진한 추리극을 따라 가다보면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뇌와 정신의 관계라든지 삶의 무한한 가능성 같은 심오한 주제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쿼런틴』은 김겨울의 표현처럼 정말이지 “롤러코스터” 같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려운 과학 이론에 머리 아플 새가 없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마스터피스에 대한 감탄하기 바쁠 테니까.
※ 〈허블 워프 시리즈〉는 신작과 구작을 구분 짓지 않고 현재의 한국 독자가 좋아할 만한 외국 SF를 번역 소개하는 시리즈다.
외국문학의 SF 시공간을 뛰어넘는 추진체, 워프 시리즈
01 그렉 이건(1) 내가 행복한 이유(Reasons to be Cheerful)
02 알렉산더 케이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The Incredible Tide)
03 앤 차녹 계산된 삶(A Calculated Life)
04 그렉 이건(2) 쿼런틴(Quarantine)
05 팻 머피 무척추동물의 사랑과 섹스(Love and Sex Among the Invertebrates)
06 윌리엄 깁슨(1) 페리페럴(Peripheral)
07 그렉 이건(3) 오셔닉 (Oceanic)
08 윌리엄 깁슨(2) 에이전시(Agency)
09 그렉 이건(4) 플랑크 다이브(The Planck Dive)
10 아이라 레빈 완벽한 날(This Perfect Day)
11 그렉 베어 탄젠트(Tangents)
12 배리 B. 롱이어 적과 나(Enemy Mine)
13 옥타비아 버틀러(1) 새벽(Dawn)
14 옥타비아 버틀러(2) 성인식(Adulthood Rited)
15 옥타비아 버틀러(3) 심상(Imago)
16 그렉 이건(5) 순열 도시(Permutation City)
17 그렉 이건(6) 비탄(Dist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