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옮긴이의 말 ◈
청소년 시절에는 음악에 별 관심 없었다. 그 후에도 아무런 상관없이 지내다가 40대 중반에 불현듯 동네에 있는 조금 큰 피아노 학원에 갔다. 집에서 가까워서 찾아간 이 학원은 서울에서 유명한 대입 전문 학원이었고 레슨을 맡아 주신 선생님은 연주학 박사 학위를 가지신 분이었다.
문제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내 음악 감성과 굳은 손가락에 있었다. 연습을 해도 별로 진전이 없었다. 다행히 계속 음악에 노출되다 보니 음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알게 된 대니얼 J. 레비틴의 『뇌의 왈츠』(마티, 2008)을 읽은 후에 음악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MIT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동녘, 2007)에서 음악은 “청각적 치즈케이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했다. 비유를 하자면 안경을 걸기 위해서 코가 진화 적응한 것이 아니라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반대하면서 레비틴은 인류 생존을 위해서 음악이 필요했다는 증거들을 뇌과학,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시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악은 진화 적응인 것 같지만 본인이 전공했던 수학은 진화의 부산물인 것 같다. 수학은 역사적으로 동양보다 서양이 더 발달했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만 관심을 갖는다. 이렇게 음악과 수학은 뚜렷한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피타고라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파인만 등과 같이 음악에도 능통한 유명한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많다. 분명히 음악과 수학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호프스태더의 『괴델, 에셔, 바흐』(까치, 2017)은 (미술까지 포함한) 이런 공통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무한을 다루는 수학, 무한히 상승할 수 있는 2차원 계단, 영원히 반복되는 캐넌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느껴진다. 특히, 바흐의 “그랩 캐넌”을 “뫼비우스 띠”를 이용해 시각화한 유명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음악과 수학의 공통점을 알 수 있다.
호프스태더가 언급한 바흐의 작품집은 “Musical offering”이다. 독일의 피아노 산업을 장려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이 바흐를 궁중으로 초청해 소장하고 있던 여러 대의 피아노를 보여주었다. 바흐는 이에 대한 답례로 각각의 피아노에서 즉흥 연주를 했고 집에 돌아간 후에 연주한 곡을 정리해서 대왕에게 헌정하는 작품집에 이 제목을 사용했다.
인터넷에서 이 책의 원서를 처음 본 순간, 『Musical offering』을 패러디한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귀의 해부학에서 시작해 음향학, 음계의 역사와 원리, 디지털 음악, 무조음악을 모두 수학적 관점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히 “Mathematical offering”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