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이야기꾼이자 학자가 들려주는 살아 숨쉬는 그리스 신화
“신화는 이야기꾼이 서술을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는, 세월의 깊이를 지닌 이야기다.”
장 피에르 베르낭은 이 책을 쓸 때 오래전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으로 썼다고 밝혔다. 신화의 이야기는 전달과 기억의 영역에 가깝고, 따라서 이야기꾼의 선택에 따라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을 흥미로우면서도 긴장감 있게 재구성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신화를 이야기로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 덕에 이 책은 기존의 그리스 신화 책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간의 순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지루하게 따라가지 않고, 자신이 특히 애착을 갖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되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운명에 대한 비유를 끌어들인다. 우주의 탄생부터 제우스를 둘러싼 올림포스 신족과 티탄족의 싸움에서는 인간의 유한함과 관련된 시간성의 문제를 보여주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와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창조되어 인간 세계에 보내진 판도라의 이야기에서는 인간 삶의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즉 탄생과 죽음, 행복과 불행, 고된 노동과 풍요라는 인간 삶의 두 가지 측면을 그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후반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한 오디세우스의 방랑 이야기에서는, 칼립소가 제안한 불멸을 거부하고 끝내 필멸의 운명을 지닌 인간이기를 택한 오디세우스의 선택을 통해 인간답게 살고 인간답게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지금-여기, 다시 그리스 신화에 주목해야 할 이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당연히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다. 또 마치 인간에게 직업이 있듯이 신들마다 특유의 직능과 지혜, 능력이 있다. 바다의 신, 숲의 신, 바람의 신, 하늘의 신 등 자신만의 영역을 가진 신들도 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을 살고 시공을 초월하며 자연과 우주를 마음대로 부린다. 그럼에도 그 많은 신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자식을 두려워하는 아비, 서로의 능력을 질투하는 형제, 의심하고 반목하는 부부, 겉으로는 잘 어울리나 속으로는 뼛속까지 시기하는 친구 등 신들의 면면과 행동은 인간사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문신원은 그리스 신화에는 “자연스럽게 세상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어서 시간과 존재의 유한함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즉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조건과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사상을 담은 이야기임에도 그리스 신화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신화 안에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