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언 해킹(Ian Hacking)의 An Introduction to Probability and Inductive Logic을 완역한 것으로 확률, 합리적 결정, 베이즈주의, 가설 검정법 등을 다루는 본격적인 귀납논리학 교재이다. 전문적인 통계학이나 사회과학 방법론을 다루는 교재를 제외한다면,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귀납논리학 교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연역논리학과 비판적 사고를 다루는 교재의 수와 다양성과 비교해볼 때, 귀납논리학 교재의 빈약함은 의아할 정도이다. 브라이언 스킴스(Brian Skyrms)의 Choice and Chance가 『귀납논리학: 선택과 승률』이라는 제목으로, 로날드 기어리(Ronald Giere) 등이 쓴 Understanding Scientific Reasoning가 『과학적 추론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눈에 띌 뿐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귀납논리학 교재의 출판은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내 귀납논리학 교재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 책을 번역 출판해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과학적 맥락에서, 혹은 일상적 맥락에서 우리는 꽤 많은 귀납 추론을 하며 살아간다. 수많은 여론조사와 통계적 추론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며, 머신 러닝이나 빅 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들은 귀납 추론의 기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기존 귀납논리학 교재들이 이런 상황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경제학 등에서 응용되는 ‘결정 이론’, 사회과학과 전염병학에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통계적 추론’, 데이터 과학의 개념적 토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베이즈주의’ 등을 다룬다는 점은 이 책이 다른 귀납논리학 교재들과 비교되는 놀라운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철학책이다. 이것은 해킹이 철학의 한 분야인 논리학을 다루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해킹은 도박사의 오류, 알레의 역설, 파스칼의 내기, 종말 논증과 같은 유명한 사고실험을 이용하여 귀납 논증의 주요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제기한다. 그리고 과학이나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확률’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더불어, 해킹은 베이즈주의와 통계적 추론의 주요 개념들을 이용해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흄의 문제’에 대한 가능한 답변을 모색한다.
정통 철학책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책이 철학책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은 아마도 이 책에 등장하는 꽤 많은 수학적 내용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확률, 기댓값, 베이즈 정리, 이항분포, 신뢰구간 등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개념들과 그것들을 이용한 여러 계산이 등장한다. 그러나 해킹이 강조하듯이, 그런 수학적 내용은 이 책이 전해주는 철학적, 논리학적 통찰을 방해하지 않는다. 수학적 개념에 대한 설명은 명료하며, 그 계산은 단순하다.
가끔 논리학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학생들이 책에 수록된 연습문제에 대한 답이 있는지 문의를 한다. 이 책은 각 장마다 연습문제가 있고 뒤에 친절한 해답이 있어 혼자서 공부하려는 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