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는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는 지역으로 꼽힐 만큼 강대국의 이해가 중첩되는 민감한 지역이다. 유목민과 실크로드 상인들이 주도했던 과거 중앙아 초원문명은 인류문명발전의 선도자 역할을 하였다. 현재도 중앙아시아는 일대일로를 비롯한 유라시아 대륙의 육로인프라 건설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는 문명적으로 한민족과 오랜 소통을 해온 이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사회는 중앙아시아에 대해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중앙아시아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서적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중앙아 초원문명의 역할과 의미, 현대 중앙아 5개국의 정치, 사회, 종교의 특징은 물론, 지정학적 민감 지역인 중앙아시아 국제 질서와 미래전망, 한국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발간된 관련 서적들이 주로 역사, 고고학, 논문모음집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독자들이 중앙아시아와 주변 국제관계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들이 중앙아시아와 관련된 큰 흐름과 핵심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독성이 좋으며 내용도 알차다. 이 책의 저자인 박상남 교수는 유라시아 관련 국내의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동안 한국정부의 대 유라시아 정책에도 자문활동을 지속해 왔다.
중앙아시아와 이를 둘러싼 국제관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필히 일독을 권할 만큼 독보적인 내용과 통찰력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과거 중앙아 초원문명이 인류문명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만나 공존, 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던 초원문명의 개방성과 유연성이 차별과 혐오가 양산되는 현대사회에 주는 교훈이 크다고 평가한다. 또한 저자는 유목민과 한 민족이 오랜 기간 문명교류를 통해 가까운 생활문화공동체를 형성해 왔음을 소환해 내고 있다.
이야기는 현대로 이어져 초원문명의 전통이 근대적 요소와 결합되면서 중앙아 5개국의 국내정치, 사회, 종교,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중앙아에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명들의 융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1991년 독립 이후 중앙아 국가들에서 권위주의와 부패라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변화의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현재 젊은 중앙아 주민들을 중심으로 변화를 요구 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이에 호응하여 민주주의와 반부패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 대목에서 자국의 정치체제만이 유일한 선이라고 주장하는 주변 강대국에 비해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중앙아 국가들이 훨씬 유연하고 개방적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인상적이다.
저자는 현대 국제관계의 모든 이슈가 중앙아를 둘러싼 국제질서에 응축되어 있다고 소개한다. 미·중 경쟁, 미국·서방 VS 중국·러시아의 세력대결, 밀월관계인 중·러의 미묘한 물밑경쟁, 세계화시대의 종말과 신냉전, 선택적 협력시대의 도래, 우크라이나 전쟁과 지정학적 위기, 에너지, 일대일로 등 유라시아 대륙 물류망 건설 등 거의 모든 국제문제가 중앙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이러한 불확실성의 국제관계 속에서 중앙아 국가들이 독립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발전할 수 있느냐가 21세기 국제사회의 주요 화두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계속해서 저자는 중앙아 국제관계를 좌우할 주요 변수들을 소개하고 향후 다가올 시대를 전망함으로써 독자들이 시야를 미래로 확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이 책은 독자들이 중앙아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 전반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과 중앙아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고대에서부터 이어져온 양 지역의 문명교류, 한인(고려인)의 험난했던 이주역사, 1991년 수교 이후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통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초원문명과 언제나 연계되어 있던 한국과 중앙아시아, 몽골 등이 주축이 되어 21세기 유라시아 협력벨트를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중견국 연대가 자기중심적 패권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강대국들을 대신하여 수평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제안을 통해 한국이 이제까지의 수동적 눈치외교에서 벗어나 자존감 있게 독자적인 미래 비전을 선도해 나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은 물론 국제질서의 변화를 파악하고 미래비전을 함께 생각해 보는 안목을 갖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