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중국의 시각자료 집대성!
이순신 신화의 거대한 뿌리를 찾다!
《이순신, 옛 그림으로 읽다》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에 대한 벽을 깨기 위한 기획물이다. 판에 박힌 또 하나의 위인전을 내놓으려는 게 아니다. 생각밖으로 우리는 이순신을 잘 모른다. 근세 들어 화폐며 우표 등에까지 이순신의 얼굴이 등장하고 표준 영정이 제정되었지만 실제의 모습과 동떨어진 모습이라는 비판이 거세 재제작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 모든 사단은 당대의 초상화 한 점 남아 있는 게 없어서다. 그만큼 이순신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순신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몸이 좋지 않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사천해전 때 입은 총상으로 어깨뼈에서 진물이 흘렀으며, 고문 후유증에도 시달렸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노력이 폄훼되는 일이었다. 이순신은 자신을 ‘고신’孤臣이라고 자처했다. 버림 받았다는 자조감에 그는 늘 외로웠다. 이순신의 시에 유독 비장감이 넘치는 것은 그의 외로움과 무관하지 않다. 이순신을 제대로 알아준 사람은 어쩌면 살아서는 유성룡, 죽어서는 정조뿐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순신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가 다시 부활하는 것은 한말이 되어서였다. 일본에 국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서야 이순신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08년에 신채호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전》을 썼다. 이순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정작 이순신 전기를 먼저 쓴 건 세키코세이라는 일본인이었다. 그가 1892년에 쓴 《조선 이순신전》은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이순신 신화가 만들어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이순신이 알려진 것은 사실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의 일이다. 에도 시대에 임진전쟁을 다룬 군기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순신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꿈’을 좌절시킨 ‘적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략과 무용을 겸비한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비록 흥미 위주의 책들이기는 하나 일본 군기물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많은 삽화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임진전쟁 관련해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삽화가 많이 들어 있는 책은 《회본태합기》(1797~1802), 《회본조선군기》(1800), 《회본조선정벌기》(1854)이다.
《이순신, 옛 그림으로 읽다》는 이들 시각자료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임진전쟁 당사자인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시각자료를 집대성함으로써 좀 더 확장되고 객관적인 이순신상을 만들어보기로 하였다. 일본에서 간행된 위의 3권 속에 수록된 자료를 줄기로 삼되 한, 중, 일 삼국의 이순신 관련 시각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였다. 이순신의 발자취를 총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필요에서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임진전쟁 그림도 추가하였다. 우리나라 자료 가운데 이순신에 관해 가장 오래된 시각자료는 1617년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속의 이순신 전사 장면이다. 다음으로 오래된 《북관유적도첩》 속의 〈수책거적도守柵拒敵圖〉에서부터 미군정청 발행 우표 등에 이르기까지 자료를 모았다. 수록한 중국 자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 최후의 전투인 순천 왜교성전투와 노량해전을 그린 〈정왜기공도병〉과 〈정왜기공도권〉이다.
《이순신, 옛 그림으로 읽다》는 주관성이 큰 글보다는 그림에 비중을 두고 이순신의 모습을 복원하려 하였다. 더불어 각 장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당대의 기록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하였다.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컬럼비아대학교 한국학 석좌교수를 지낸 김자현은 임진전쟁을 통해 조선에서 ‘민족의 출현’이라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음을 짚어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듯 조용하던 조선에서 사실은 ‘민족의 출현’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민족정체성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이순신과 민초들의 역동적 교감을 짚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