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그림들의 특별한 여행
그 여정에서 엿보는 동아시아 종교 회화의 아름다움
크기와 무게도 중요하지만 사실 종교화가 여행을 떠날 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각적 아름다움이었다.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무게가 그림이 물리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면 아름다움은 여행의 필수 조건이자 동력이었다. 일반적으로 종교예술을 통해 구현되는 조형성은 작품을 제작한 개인이나 집단의 신앙심 및 예술적 성취의 결과로 인식된다. 이는 종교예술을 경배하고 감상하는 대다수 사람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감상자가 아닌 종교예술의 제작자, 유통자, 전달자 등의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이들에게 종교예술의 아름다움이란 각자의 목적(교리 전파부터 상업적 판매에 이르기까지)을 달성하기 위해 개개의 작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었다.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순수미술이 아니라 신앙을 바탕으로 제작한 종교미술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쉽지 않다. 즉 종교예술의 아름다움은 누군가에게는 시각물을 통해 드러나는 최종 결과물이지만, 때로는 신도, 소비자,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고, 그렇기에 관람 대상의 문화와 취향과도 분리될 수 없었다. 따라서 종교예술품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작품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영원불변의 어떤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초상화나 풍경화와는 조금 다른 아름다움이다. 종교화의 미학이란 숭고함은 물론, 세속적 화려함, 압도적 규모,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작품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는 현실성에 이르기까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이는 다양한 매력을 포괄한다. 그리고 그 매력은 개별 작품이 위치한 맥락과 목적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 불교 회화의 여행과 의미
이 책은 지리적, 시대적 범위를 한정하여 근대 이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종교화, 즉 불교 회화가 어떤 이유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이 여행을 가능케 한 이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이 여행에서 불교 회화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조망한다. 처음부터 타지로 옮겨질 것을 전제로 제작된 작품도 있고, 특정 장소에 봉안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돌아다닌 작품도 있었다. 때로는 더 많은 관람객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상업적,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인 동시에 신의 대체물, 혹은 신의 이야기를 담은 성물(聖物)이기도 했던 종교화는 서예 작품이나 산수화 같은 비종교화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이동했다. 성스러운 이미지가 성의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혹은 영원히, 속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일이었기에 의례가 동반되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했다.
한편, 이 책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현재 대부분 박물관에 머물러 있다. 사찰이 소장한 작품도 불당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에서 운영하는 성보박물관에 있거나, 근처 박물관에 기탁 보관되고 있다. 오랜 여행을 거친 낡은 그림들인 만큼 보존과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이 작품들이 떠난 여행의 종착지일까? 지금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덧붙여놓은 감상과 해석이 이 그림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한다. 미래에는 다른 환경과 문화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 또 다른 유무형의 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