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녀가 어떤 지옥을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중2병보다 무섭고 더 복잡한 여학생 간 따돌림의 공학
아름답고 평화로울 줄만 알았던 새 학기의 시작, 여학생들의 세계가 열린다. 그들은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께 살갑게 인사한다. 그러나 이 묘한 분위기는 뭘까? 자욱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긴장감. 여자아이들의 사회생활은 남자아이들과 분명 다르게 느껴진다.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날리며 바닥을 뒹굴었던 남학생들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같이 밥을 먹고 농구를 한다. 여자아이들이라고 공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자아이들과 다를 뿐. 남자아이들의 공격 매커니즘과 여자아이들의 그것은 어떻게 다를까? 그들의 싸움은 꽃이 향기를 뿜어내듯 아주 교묘하게, 은근하게 발산된다. 그 긴장을 뚫고 어른들이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그때는 원래 다 그런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하며 못 본 척 넘기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직무유기는 아닐까? 혹시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게 너무 두려워서는 아니었을까? 저자는 질문한다.
“십대의 흔한 드라마쯤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가벼이 여기고 계시진 않은가요?”
“선생님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깊숙이 개입하여 아이들을 ‘휴~’ 하는 한숨 뒤로 숨어버리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학급에서 벌어지는 간접적이고도 비신체적인 괴롭힘에 대해 어른들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소녀들의 복잡관계망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면
저자는 여학생들 사이의 따돌림, 이간질, 편 만들기, 험담 같은 은밀한 폭력에서 아이들을 구출하는 방법을 오래 고민해왔다. 불러다 물어보기도 하고, 생활규칙을 새로 정해보기도 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다가가도 아이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 문제에 개입하려는 어른을 아이들이 좀처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히 선생님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원망이 돌아오기도 했다. 섣불리 건드려 벌집을 쑤셔놓고 무책임하게 물러나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신뢰받는 지지자로 함께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그 과정을 보여주려 하지만 여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은 정의하기 모호하고, 하나같이 특별해서 일반화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 모른척하기엔 그 후유증이 너무도 크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고, 시끄럽지도 않은 문제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트라우마가 된다는 것을 그 시절을 건너 온 어른 여자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교사 연수에서 여교사들은 그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음을 이야기하며 함께 마음 아파했다. 스스로 은폐해놓은 어둠에 빛을 비출 때, 오늘의 문제도 건강하게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가. 아이들이 소리 없는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그런 힘에 쉬 휘둘리지 않으며 올바른 친구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먼저 아이들 앞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소녀의 눈으로 아이들을 살피는 거라고.
먼저 우리의 과거 속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저자는 다시 교실을 둘러본다. 그리고 과거에 여학생이었던 사람들, 지금 여학생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교사들과 남학생들, 학부모들에게 묻고 또 묻고 듣고 또 듣는다. 오늘날 여학생이 겪는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여학생들이 사는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지만 돌파구 내지 희망 또한 거기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전히 교실이 아이들에게 치유와 연결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지해줄 담임교사와 친구들이 있는 안전한 공간이 교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비춘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아이들은 교사들을 지켜본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신뢰한다고 믿지만, 과연 우리는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얼마나 알고 있고, 그들의 아픔과 힘겨움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책은 그 물음을 건네며 함께 지혜를 모으자고 간절히 청하고 있다. 소녀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보이지 않고 비명도 들리지 않지만 그 아픔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 상처는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피멍을 남긴다. 구조를 청하는 비명이 들리기 전에 먼저 다가가 들어야 한다. 우리에겐 함께 몰아내야 할 어제와 오늘의 어둠이 있다. 소녀들의 은밀한 흑역사, 그 윤회의 고리를 끊어내고 모두를 챔피언으로 성장시킬 힘과 용기와 지혜를 모으는 길을 함께 찾아나서 보자.
[추천하는 글]
학교는 누구에게든 나름의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학교는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했고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지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합니다. 고민 많던 학교생활을 돌아볼 때, 그래도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이 책의 구절처럼 ‘네가 어떤 아이여도 나는 있는 그대로인 너를 좋아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던 어른, 선생님이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처럼, 고민과 갈등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이해와 존중의 가치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윤해인(강원중 졸업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