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을 소설가에서 영화인으로 만들어 준 첫 번째 작품 〈안개〉
영화대본을 원작자가 직접 각색해 문학성까지 겸비한 시나리오
순천만국가정원에 가면 김승옥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을 들어가는 입구에 김승옥 사진과 함께 이렇게 쓰여 있다.
“소설가란 스스로 ‘이것이 문제다.’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권력자나 부자의 눈치를 살펴도 안 되고 동시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비위만 맞춰서도 안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다만 스스로의 가치에 비추어 문제가 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소설가 김승옥을 영화인으로 만든 〈안개〉의 대본집
〈안개〉는 영화작업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소설가로서의 첫 번째 각색 작업이었기에 감독을 비롯한 전문 영화인들이 보기에 시나리오로서는 다소 기대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을 것임에도 김수용 감독을 비롯한 제작자, 조감독 등 스탭 어느 누구도 작품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원작자에 대한 예의랄까 또는 소설로서 원작이 받았던 호평에 버금가는 ‘훌륭한 시나리오’가 나오리라는 기대감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복잡하고 지루하고 어수선한 촬영 현장에서의 고된 작업이 끝나고 1차 편집을 거쳐 성우 및 효과음 녹음이 진행될 때까지도 영화의 전체적인 윤곽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원작자나 각색자의 의도가 어떻든 어차피 영화는 필연적으로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촬영기간뿐 아니라 후속작업을 하는 중에도 감독의 의중에 따라 대본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원작자는 문학성에 비중을 두지만 감독은 흥행성에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처음 공개되는 김승옥 작가의 미발표 작품 〈도시로 간 처녀〉
작가의 필력과 감성이 돋보이는 오리지널 시나리오!
자동차노조연맹과 안내양들의 항의로 상영 중단된 영화
1981년 12월 개봉한 〈도시로 간 처녀〉는 2억원이라는 많은 제작비를 들여 약 6개월간 제작한 동시녹음 영화다. 처음에 영화진흥공사는 이 영화를 우수영화로 선정했고 대종상 작품상 후보에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상영이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한국노총에서는 이 영화가 전국자동차노조연맹과 이 연맹에 소속된 운전기사와 안내양 등 15만 명의 명예를 손상시키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문화공보부에 영화의 상영중지를 요청했고, 200여명의 안내양들이 극장 앞에 모여 공개적인 항의를 하면서 최초로 상영이 중단된 영화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발라당 까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당고 사랑까지도 시원시원한 여자 옥경, 무슨 일이든 정직하고 당당하게 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여자 문희, 아기 젖꼭지 장난감을 입에 물어야 잠이 드는 아기처럼 연약해 보이는 승희 등이 버스회사의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하는 세 명의 버스 안내양들의 근무실태와 근무환경을 고발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영화다.
그러나 딱딱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요즘 청춘영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래, 우정, 취업, 사랑, 직장 상사로부터의 시달림, 그리고 좌절 등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애환을 세 명의 안내양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내양’이나 ‘삥땅’이라는 단어 자체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시절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 문희를 통해 말하고 있는 부조리, 불합리, 인권유린, 고용착취 등 80년대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까지 없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