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나오면 사진을 찍고 쉴 때는 ‘먹방’을 보는 우리.
우리는 여전히 음식을 보고, 기록하고, 욕망한다.
역사적인 명화들이 고스란히 목격한 ‘먹는 것’의 이야기를 만나다.
인류의 역사는 곧 ‘먹는 것’의 역사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언제나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있었다. 그러므로 음식에 관한 이야기 없이 인간사를 다루는 것은 가장 중요한 축 하나를 빼놓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문화사를 기록하는 수많은 그림에도 음식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음식을 통해 살펴보는 인류사와 그것을 증명하는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저자 이정아는 블리싱겐의 푹푹 찌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서 바다 냄새가 달려드는 염장 청어를 맛보고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음식과 사람 냄새로 가득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육즙이 흘러내리는 고깃덩어리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청어들, 왁자지껄하게 떠들썩한 시장과 풍미가 가득한 소스를 머금은 파스타, 갓 구운 고소한 빵, 달짝지근한 포도주와 깊은 커피 향기가 읽는 이의 오감을 사로잡는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인간을 장악한 맛있는 것들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음식들도 처음부터 모두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감자와 옥수수가 그랬다. 그러나 이 불온한 식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경이로운 생명력과 지옥보다 끔찍한 시대를 견뎌낸 인간의 의지를 발판 삼아 당당히 오늘날의 위치에 올랐다. 사과와 굴은 유혹과 사랑의 알레고리를 드러내며 무수한 그림의 소재가 됐다. 신화처럼 오래 이어져 온 욕망의 상징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캔버스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신하며 등장한다. 육두구에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서라면 잔인한 살육을 서슴지 않던 인간의 잔혹함이, 동물의 살에서 얻어지는 고기는 끝없는 탐식과 권력에 대한 과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은을 입은 물고기에는 바다 정복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다. 맛있는 것들은 그렇게 슬그머니, 그러나 강력하게 인간의 역사에 개입했다.
인간은 결국 포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탐식은 어느 시대에는 관용과 풍요를 상징하는 미덕으로 어느 시대에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하는 가장 큰 죄악으로 취급됐다. 그리고 탐식을 죄로부터 해방 시킨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음식에 대한 관용은 미식의 허용하는 동시에 식사 예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식사 예절은 야만과 문명 사이의 경계에서 문화화, 혹은 문명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계집애들이나 쓰는 물건으로 여겨지던 포크는 유럽 궁정으로 퍼져나갔고 야만적인 공간이던 부엌은 현대에 이르러 불을 때고 연기를 피우던 과거를 모두 잊어버린 채 일상적인 공간이 됐다. 그렇게 인간은 결국 야만의 시대를 끝내고 포크로 식사하며 주방용 레인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기할 수 없는 유혹적인 달콤함
달콤한 것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역사가 길다. 희고 부드럽고 달콤한 빵은 계급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상징하며 혁명의 씨앗이 됐다. 설탕은 한때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며 훗날 잔혹한 전쟁과 끔찍하고 악명 높은 삼각무역이 탄생에 기여했고 파스타는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럽을 넘어 미국 땅까지 점령했다. 달콤한 포도주와 치즈는 수도원에서 자랐다. 수도사와 수녀들의 정성으로 발달한 포도주와 치즈는 시간이 흐르자 쾌락과 여유, 탐식의 상징이 됐다. 커피는 그동안 술에 취해있던 유럽을 깨웠다. 커피하우스는 지식인들이 담론을 나누는 장소로 철학, 정치, 상업,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며 근대의 문을 열었다. 초록색 악마라 불린 압생트는 파리를 광기로 집어삼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에 가장 사랑받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이 시기 쏟아져나왔다.
음식에 대한 인류의 게걸스럽고 끈질긴 열정
책은 장마다 내용이 구분되어 있어 읽는 사람이 마음에 드는 장부터 먼저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다. 이 책을 통해 긴 역사 내내 게걸스럽게 먹는 것에 열정을 쏟고 때로는 그로 인해 역사를 바꿔버린 인류의 흔적들을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