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인 일러스트와 간결한 설명으로
한눈에 읽는 마술 공연의 핵심 포인트
이 책은 101가지의 그림과 글로 이루어져 있다. 책장마다 그림과 글이 짝을 이루는 101가지 에피소드가 배치된 독특한 구성방식은 각 에피소드의 핵심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하고, 한눈에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마술 연기 방법과 마술 현상의 종류, 프로마술사에게 필요한 액트 레퍼토리, TV와 유튜브 등을 활용하는 법 등 여러 정보를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메커니즘을 상세히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진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마술 매뉴얼북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개별 마술에 대한 지식보다는 그러한 마술 현상과 기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그것들을 관통하는 본질에 대해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마술 공연이라고 하면 흔히 ‘트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어떤 트릭이 관객에게 신기하게 느껴진다면, 그 신기함은 어떤 논리와 감정에서 비롯되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강조한다. 그래야 트릭을 선보이기 위한 장르와 연기 방식, 동선, 어울리는 조명과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술 공연의 핵심이 트릭 자체에만 있다거나 ‘비둘기’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또한 이 책에는 어떤 메시지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각 에피소드를 비트는 또 다른 에피소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독자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도록 이끈다.
관객은 무대 뒤도 알아챈다!
매혹적인 공연 기획의 비밀
이 책의 주제는 마술 공연이지만, 대부분은 다른 공연 기획에도 적용될 만한 조언들이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원칙은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마술은 그 오랜 전통만큼이나 배우고 익혀야 할 기존 지식들이 쌓여 있긴 하지만, 동시에 철저히 사람들의 관심으로 움직이는 대중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시대의 변화에 겸허히 적응하도록 당부한다. 그렇다면 영상 플랫폼이 비디오에서 유튜브로, 그리고 다시 틱톡과 같은 숏폼으로 계속 이동해왔고, 앞으로도 어떤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디지털 시대에 무대 공연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시대가 원하는 것’을 고민했던 저자가 로또 마술을 선보여 화제를 일으켰던 경험은 이 대목에서 소개되어 있다.
관객의 입장을 잊지 않는 것은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관객 참여’라는 명분으로 관객 중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이나 “예쁜 관객을 뽑는다”는 등의 멘트가 왜 문제될 수 있는지, 유행하는 것을 곧바로 무대 위에 적용시키는 일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곧바로 납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연기와 화술, 발성뿐 아니라 오프닝 화술의 요령과 기립박수를 받는 방법 등의 깨알 같은 노하우, 심지어 연습의 방식까지도 일관성 있게 관객의 시선으로 짚어준다. 나아가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어 스태프들과의 관계나 관객의 예매 경험 등도 공연의 일부이자 매혹적인 무대를 완성하는 중요한 조각임을 강조한다.
모든 순간을 철저히 계획하라!
시선을 사로잡고 놀라움을 창조하는 법
신기함과 놀라움을 창조하는 일이 마술사만의 일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단지 새로운 것을 끌어와 사람들을 무작정 놀라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훌륭한 공연에서는 관객이 ‘신기함’을 느끼는 모든 과정이 공연자의 치밀한 계획 아래 기승전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 이상으로 빼거나 정리하는 일이 관객의 긍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많은 공연 기획자들이 관객은 ‘현상’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공연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한 나머지, 비전문가 관객이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다른 부분들을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관객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더 크게 감응될 때가 많다. 따라서 놀라움을 창조하고 싶은 공연자라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 못지않게 그러한 새로움이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 잘 짜인 대본 또한 반드시 필요하지만 관객에게는 대본 없이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 1만 시간의 착각!
26년 차 기획자의 성실한 일상
이 책을 쓴 최현우 마술사는 다양한 매체와 무대에서 마술 공연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베테랑 마술사다. 그러나 저자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한 편의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기까지 그가 하는 일은 무척 다양하고 끝이 없다. 마술은 여러 영역이 결합된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그는 심리학부터 물리학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부하며, 이렇듯 축적된 지식들을 자양분 삼아 아이디어를 낸다. 본격적으로 공연을 기획하면서부터는 장르 설정과 대본 쓰기, 연기 방식 등을 고심하며, 이를 수많은 스태프들과도 조화롭게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에 무대 장치와 조명 등을 선택하는 일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이런 저자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에서 유를 만드는 기획자의 일상과 태도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기획자라고 하면 흔히 갑자기 영감이 갑자기 샘솟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테랑 마술 기획자인 저자에 따르면 어떤 아이디어가 공연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이론을 비롯한 수많은 지식, 평소에 축적해둔 자신만의 메모, 비판을 분별해 듣는 요령 등이 융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기획자 안에서 발효된 후에야 비로소 결과물로 나올 수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에는 1만 시간을 축적해야 전문가로서 겨우 첫발을 내딛는다는 속뜻이 담겨 있다는 저자의 해석은, 이러한 성실한 일상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