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너를 살리리니, 이제 번뇌의 ‘사주’ 커밍아웃이 시작된다!”
-사주명리와 글쓰기의 조합, 신개념 치유법의 탄생 ‘누드 글쓰기’!
“아이고, 내 팔자야!!”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되는 팔자타령. 내 인생은 도대체 왜 남들 다하는 것, 남들 다 가진 것, 남들에게 당연한 것과 별도로 굴러가는지, 이 꼬인 인생에 과연 해답은 없는 건지. 어느 어느 산에서 수련을 하고 왔다는 도사님을 찾아도, 서가에 가득한 심리학책을 열독해도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프다. 아프고 또 괴롭다. 아픔과 괴로움, 둘은 아주 종종 겹쳐진다. 암은 감기만큼 흔한 돌림병이 되었고, 자폐증과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은 숫제 스펙이 될 지경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더욱 아프다. …… 사랑이 깨지고 가족이 무너지고 친구와 이웃이 사라져도, 그래서 고독과 불안에 떨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정신분석가 혹은 심리치료사에게 맡겨 버린다. 그럴수록 삶과 존재의 간극은 커져만 간다.”(고미숙, 「글쓰기의 존재론」, 11쪽)
미신 내지는 거리에 즐비한 사주카페로 소비되는 ‘사주팔자’를 가지고 무려 ‘자기구원’을 모토로 사주 글쓰기를 시도한 『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이하 『누드 글쓰기』)가 나오게 된 이유다. 『사주명리 한자교실, 갑자서당』에 이어 두번째로 선보이는 출판사 ‘북드라망’의 신개념 사주명리 글쓰기책, 『누드 글쓰기』는 사주명리학과 인문의역학을 기반으로 자기구원으로서의 앎과 수련을 위해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 ‘감이당’에서 진행된 일종의 ‘자기이해&비전탐구 프로젝트’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필두로 한의학과 명리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인들 사이에서 ‘누드 글쓰기’라고 하는 하나의 장르가 될 정도로, 이 ‘치유로서의 글쓰기’는 자기 삶의 풀리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내는 실천적 수단이 되었다.
‘이야기’가 되는 순간, 상처는 사라진다-자기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산다는 것은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기가 살아온 날을 해석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자기가 어디에 어떻게 왜 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우스개로, 노래가사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말을 자주 흥얼거린다. 그런데 “우울증, 각종 정신질환이 숫제 스펙이 된” 그 언젠가부터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꽤 절실한 문제가 되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며 인도로 떠나 보기도 하고, 상처받은 기억을 꽁꽁 안고서 매일같이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큰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안, 빚이 턱까지 차오르는 참혹한 집안경제…… 그 모든 게 소위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의 상처를 떠올려도 그 시공간의 자장이 그대로 따라와 지금의 자신을 뒤흔든다. 누구에게 말하자니 나의 자의식이 허락하질 않고, 마음속 깊은 곳에 그대로 담아 두고만 있기에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것은 생채기 가득한 자신의 과거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앎’은 그 거리에서 발생한다. 나를 떠나 나를 보는 것-그럼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알 수 있게 되고, 배울 수 있게 된다. 상처를 품고 있지 말고 내놓으라는 것은 “그게 뭐 상처씩이나 되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라”는 말과는 다르다. 상처에서 배움이 일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 그리고 그 배움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기술로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아무려나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그리고 기왕이면 ‘잘’ 살아 있기 위해 존재하므로,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번뇌를 세상에 커밍아웃한다는 것은 곧 실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운을 열어드립니다-개운은 셀프, 사주팔자도 셀프
사주팔자를 따질 때 크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10년 주기로 변하는 대운(大運)과 세운(歲運)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지만 놀랍게도 우리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운(運)’이 있다. 관건은, 그 운을 어떻게 여느냐(開運), 그 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자신의 의지와 행위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 어떻게 삶의 방향을 가지고 갈 것이냐 하는 것!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 첫 숨을 쉬는 순간 이미 운명의 바코드는 우리의 이마에 고스란히 박혔다(사주팔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므로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는 결정하고, 살아가면 된다. 무작위 집단에게 자기가 과연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며 안달하며 자의식과 씨름하며 내내 팔자 탓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팔자를 긍정한 연후에 그 여덟 개의 카드(八字)를 가지고 어떻게 내 ‘명’을 돌릴지[運命] 탐구하고 궁리하며 살아갈 것인가.
자기 몸(과 마음)은 모름지기 셀프로 구하는 게 정답이라며 『누드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사주명리학을 권하는 이 사람들,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 당신의 삶을 바꿀 것이다. 당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의미이고 누드 글쓰기의 미션이다. 우리 자신을 보자, 그리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