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소홀해도 뒤죽박죽되는 살림살이처럼,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여기저기 마실을 다니는 ‘마음’. 저자 한정선에게 그 마음의 자리를 찾아주고 쓸고 닦아 주는 청소도구란 바로 ‘그림 그리기’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고 싶은, 두고 오기에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풍경을 만날 때 할 수 있는 것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 나그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묘약은, 일단 그리는 것이다. 욕망한다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소유 그 자체보다 소유에 따를 부담감이 더 힘겹게 느껴질 때, 그 물건들 또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다 보면 이미 내 것이 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구매욕이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떠나보낼 때 그림은 애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내 곁에 머물러줘서 고마웠어~’ 영정그림으로 영정사진을 대신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마음을 담고 내게 온 물건들을 그리는 것도 고마움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그림은 저자가 사랑했고 사랑하는 대상들을 향한 ‘구애’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고 이야기한다.
“언제인지 모르게 들어와 차곡차곡 쌓인 마음의 서랍 속 기억들이 참견을 한다,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새 나는 그림과 대화를 하며 뚜벅뚜벅 그림 속으로 들어가 나도 그림이 된다. 강 밑바닥에 쌓여있는 퇴적물을 헤집듯, 그림은 기억과 생각을 뒤섞어 나를 행복하게도, 심란하게도 한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있는 느낌.”
저자의 글쓰기는 전적으로 그림에 빚지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림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