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는 ‘과목’이 아니라 ‘가치’다!
한국사를 모르면 좋은 대학 가기 어렵고 공무원 되기도 어려운 시대다. 대입 시험에서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며 국가 기관의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사 공부가 필수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사에 매달려야 한다. 고등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와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업군에게 ‘필수’라는 딱지를 붙여놓은 덕에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사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일견 바람직해 보이는 이 정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한국사를 상식과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조선 때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생겨나고, 뒤를 이어 삼국이 경쟁하던 시기를 지나 남북국(발해와 통일 신라) 시대가 열리고 고려가 건국하며 조선이 들어서는 일련의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서 각 시대의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국사 연표에 수록할 만한 사건들만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커다란 종이에 적혀 있는 리스트를 달달달 외우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추출하는 학문이다. 역사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은 지난 시간과 사건에 축적된 방대한 삶의 데이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반면교사 삼아 다양한 관점에서 오늘과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참된 이유다.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는 한 가지 이슈를 선택하고 이와 관련한 사건과 현상들이 각 시대와 국가들에서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과거부터 그래왔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이르러 왜곡된 변종 역사임을 확인하게 되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알려주지 않는 한국사 상식을 접하다
역사의 한 시절을 다룬 사극 드라마를 보면,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가 후궁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왕의 승은을 입은 후궁의 끗발이 좋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품계를 따졌을 때도 후궁이 판서를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판서의 품계가 정2품인 데 비해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서열인 빈은 정1품이었고, 그다음 서열인 귀인과 소의는 각각 종1품, 정2품이었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는? 품계가 없다.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가다. 이이는 외가에서 자란 셈이다. 실제로 신사임당은 결혼한 뒤에 친정에서 20년을 살다가 뒤늦게 시댁으로 향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 이이가 태어난 때가 1537년이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도 건국 후 150여 년이 지나도록 여자가 시집을 가는 종법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 이전인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지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고, 딸도 동등한 몫의 유산을 받았으며, 당당하게 이혼할 수 있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BC 58년 생),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BC 69년 생)는 각각 성이 고씨와 박씨다. 그런데 사실 우리 민족이 성씨를 쓰기 시작한 때는 6~7세기경부터다. 주몽과 혁거세는 역사를 기록한 후대에 의해 성씨를 얻게 된 것이다. 6세기에 한자가 수입된 뒤 성씨가 생겨났고, 성씨는 왕족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왕이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귀족 사회에 성씨가 퍼지기 시작했고 평민 사회에도 서서히 성씨가 퍼졌다.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전체 인구의 40%가 성씨가 없었다. 이 말은 전체 인구의 40%가 천민이었다는 뜻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철폐되고 1909년 민적법이라는 호적 제도가 시행되면서 관료들은 성이 없는 천민들에게 아무 성이나 붙였다. 오늘날에는 굳이 부계의 성을 따라야 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옛날부터 그랬어.”
사람들은 때때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해묵은 관념의 당위성을 과거에서 찾고는 한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그게 옳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자 풍습이라고 믿는 것들 중에는 사실 ‘국산’이 아닌 것이 많다.
우리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는 짧고도 긴 이야기
이처럼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는 쉽게 접하기 힘든 우리 역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왜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들 대부분이 중국에 사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는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고조선과 탐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세워졌는지, 현모양처라는 개념이 과연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인지,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갈등은 언제 생겨났는지 등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51가지 이슈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 숨겨진 여러 가지 감동적이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이 에피소드들은 한편으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가십거리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올바른 외교 방향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고, 외래문화와 다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에 관한 가르침 등이 담겨 있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도록 만드는 오늘의 이야기임을 이 책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