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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

  • 김상훈
  • |
  • 행복한작업실
  • |
  • 2022-12-07 출간
  • |
  • 336페이지
  • |
  • 145 X 210mm
  • |
  • ISBN 9791191867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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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국사는 ‘과목’이 아니라 ‘가치’다!

한국사를 모르면 좋은 대학 가기 어렵고 공무원 되기도 어려운 시대다. 대입 시험에서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며 국가 기관의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사 공부가 필수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사에 매달려야 한다. 고등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와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업군에게 ‘필수’라는 딱지를 붙여놓은 덕에 대부분의 사람이 한국사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일견 바람직해 보이는 이 정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한국사를 상식과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조선 때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가 생겨나고, 뒤를 이어 삼국이 경쟁하던 시기를 지나 남북국(발해와 통일 신라) 시대가 열리고 고려가 건국하며 조선이 들어서는 일련의 과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서 각 시대의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국사 연표에 수록할 만한 사건들만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커다란 종이에 적혀 있는 리스트를 달달달 외우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추출하는 학문이다. 역사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은 지난 시간과 사건에 축적된 방대한 삶의 데이터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반면교사 삼아 다양한 관점에서 오늘과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참된 이유다.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는 한 가지 이슈를 선택하고 이와 관련한 사건과 현상들이 각 시대와 국가들에서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과거부터 그래왔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근대에 이르러 왜곡된 변종 역사임을 확인하게 되고,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관념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알려주지 않는 한국사 상식을 접하다

역사의 한 시절을 다룬 사극 드라마를 보면,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가 후궁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왕의 승은을 입은 후궁의 끗발이 좋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품계를 따졌을 때도 후궁이 판서를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판서의 품계가 정2품인 데 비해 후궁 가운데 가장 높은 서열인 빈은 정1품이었고, 그다음 서열인 귀인과 소의는 각각 종1품, 정2품이었기 때문이다. 왕과 왕비는? 품계가 없다.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는 강릉 오죽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친가다. 이이는 외가에서 자란 셈이다. 실제로 신사임당은 결혼한 뒤에 친정에서 20년을 살다가 뒤늦게 시댁으로 향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 이이가 태어난 때가 1537년이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도 건국 후 150여 년이 지나도록 여자가 시집을 가는 종법 제도가 정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 시대 이전인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지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남자가 ‘장가를 가는’ 경우가 많았고, 딸도 동등한 몫의 유산을 받았으며, 당당하게 이혼할 수 있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BC 58년 생),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BC 69년 생)는 각각 성이 고씨와 박씨다. 그런데 사실 우리 민족이 성씨를 쓰기 시작한 때는 6~7세기경부터다. 주몽과 혁거세는 역사를 기록한 후대에 의해 성씨를 얻게 된 것이다. 6세기에 한자가 수입된 뒤 성씨가 생겨났고, 성씨는 왕족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왕이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귀족 사회에 성씨가 퍼지기 시작했고 평민 사회에도 서서히 성씨가 퍼졌다.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 전체 인구의 40%가 성씨가 없었다. 이 말은 전체 인구의 40%가 천민이었다는 뜻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철폐되고 1909년 민적법이라는 호적 제도가 시행되면서 관료들은 성이 없는 천민들에게 아무 성이나 붙였다. 오늘날에는 굳이 부계의 성을 따라야 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옛날부터 그랬어.”
사람들은 때때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해묵은 관념의 당위성을 과거에서 찾고는 한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그게 옳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자 풍습이라고 믿는 것들 중에는 사실 ‘국산’이 아닌 것이 많다.

우리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 주는 짧고도 긴 이야기

이처럼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는 쉽게 접하기 힘든 우리 역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왜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들 대부분이 중국에 사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는 원래 어떤 모양이었는지, 고조선과 탐라 가운데 어느 나라가 먼저 세워졌는지, 현모양처라는 개념이 과연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인지,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갈등은 언제 생겨났는지 등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된 51가지 이슈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새로운 방향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 책은 이외에도 우리 역사에 숨겨진 여러 가지 감동적이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이 에피소드들은 한편으로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가십거리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올바른 외교 방향에 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고, 외래문화와 다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에 관한 가르침 등이 담겨 있다.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도록 만드는 오늘의 이야기임을 이 책은 말한다.

목차

저자 서문

제1장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풍습과 전통]

고려와 조선의 과거 제도 _ 공무원 채용 시험은 과거 시험에서 유래했다
고려의 과거 제도 | 조선의 과거 제도 | 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장 풍경

사설 입시 학원의 역사 _ 고려 시대에 입시 학원 광풍이 불다
우리 역사 최초의 입시 학원, 구재학당 | 구재학당의 스파르타 입시 교육 | 사설 학당이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

우리 민족의 결혼 풍습 변천사 _ 여인은 왜 새벽에 서낭당 주변을 서성였을까?
옥저와 고구려, 고려의 결혼 제도 | 조선의 결혼 풍습 변천 과정 | 조선 평민 사회의 혼인 풍습

혼수와 예단의 근원 _ 허례허식을 전통이라 해서야 쓰나?
고구려와 신라의 결혼 풍속 |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 질서가 허례허식을 부추기다

사진만 보고 결혼하던 때가 있었다 _ ‘사진결혼’의 아픈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들 | 하와이 이민 1세대의 험난한 여정 | 하와이 이민 총각들의 혼인난을 해결한 사진결혼

지역감정의 유래 _ 영남 ㆍ 호남 갈등의 역사가 천 년을 넘는다고?
신라와 백제,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대립 | 오늘날 전하는 훈요십조의 진위 여부 | 지역감정은 근대 정치의 산물

성씨와 족보의 역사 _ 왜 천민은 ‘백성’이 될 수 없었는가?
우리 민족이 성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 | 고려 태조의 결혼 정책과 사성 정책 | 성씨가 모든 신분으로 확대된 이유

조선 시대의 관직과 품계 _ 병조 판서보다 후궁이 상사인 까닭은?
궁중의 여성 조직인 내명부의 품계 | 대감, 영감, 나리는 무엇이 다른가? | 육조와 주요 요직의 품계

조선 시대의 음식 문화 _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귀했던 이유
밥그릇 크기로 보는 우리 민족의 식사량 | 김치의 역사 |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귀했다고? | 잡채가 뇌물로 쓰인 까닭

조선 주당들의 음주 문화 _ 오늘날의 폭탄주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조선의 폭탄주, 혼돈주 | 왜 혼돈주를 마셨을까? | 세시 풍속과 술

서울 지명의 유래 _ 마을 이름에 담긴 역사
조선 시대 관청과 관련한 동네 이름 | 이태원동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나? | 전쟁의 상흔이 맺힌 말들

현모양처는 일제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_ 순성여학교 이야기
19세기 후반의 근대 교육 기관들 | 우리 손으로 만든 첫 근대 여학교 | 현모양처는 일제가 만든 발명품이다

근친혼과 동성동본 혼인 금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_ 근친혼과 권력 쟁탈전으로 얼룩진 천추 태후의 삶
고려 시대 근친혼에 따른 혼란 | 천추 태후의 야욕이 강조의 정변을 유발하다 | 근친혼에 대한 반발이 동성동본 혼인 금지를 낳다

제2장 과거의 모든 일은 오늘을 만든 퍼즐 조각이다 [별의별 것들의 유래]

탐라국과 두막루의 역사 _ 우리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두 나라
독립적인 왕국이었던 탐라국 | 고려의 행정 구역으로 흡수된 탐라국 | 300년 동안 이어진 국가, 두막루 | 두막루는 과연 우리 민족의 국가인가?

유사 사학이 말하는 고조선 이전 우리 민족의 국가 _ 『환단고기』 등의 유사 사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환단고기』가 말하는 우리의 역사 | 환국과 배달국 그리고 고조선 | 역사는 기원이나 바람이 아니라 사실의 기록

정경유착은 근대 이전부터 있었다 _ 보부상을 향한 또 하나의 시각
보부상의 명과 암 | 독립 협회를 견제한 보부상의 황국 협회 | 사발통문의 유래

화교의 역사 _ 명성 황후가 한국에 화교를 불러들였다?
임오군란과 화교의 등장 | 화교의 롤러코스터 운명 | 이제는 우리 국민

서양인의 조선 상륙 역사 _ 한국에 가장 먼저 발을 디딘 서양인은 누구일까?
조선인 박연이 된 네덜란드인 얀 벨테브레 | 하멜과 『하멜 표류기』 | 한반도에 온 최초의 서양인은?

고려 전기에 6개월짜리 무신 정권이 있었다 _ 미니 무신 정변
김훈-최질의 난 | 무신 정변의 원인과 결과

팔만대장경의 여정 _ 수백 년을 버틴 팔만대장경의 생존기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 숭유억불과 팔만대장경의 험난한 여정

신라 골품제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이야기 _ 신라 성골은 왜 진골에게 왕위를 넘겨야 했을까?
신라의 골품제와 인도의 카스트 제도 | 법흥왕부터 진평왕까지의 계보 | 성골의 씨가 마른 이유

왜 우리는 그토록 중국을 섬겼을까? _ 조공과 책봉을 둘러싼 논란
조공과 책봉 | 조선이 중국에 파견한 사신의 종류 | 조공과 책봉은 실리 외교의 한 방편

공녀에 관한 아픈 역사 _ 인간 공물, 공녀에 관한 슬픈 기억
공녀를 보낸 까닭 | 공녀를 선발하는 과정 | 공녀에 얽힌 비극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병원에 관한 진실 _ 적통 논란과 제생의원 이야기
서울대 병원과 연세대 병원의 적통 논쟁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 기관 | 일본 의사들이 조선인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유

추존 왕이란 무엇인가? _ 죽어서 왕이 된 다섯 명의 추존 왕
스물일곱 명의 국왕과 다섯 명의 추존 왕 | 부왕이 없는 인조가 생부를 왕으로 만들다 | 왕의 생부를 왕에 추존하는 이유

독도 논쟁에서 배우는 교훈 _ 새로 얻는 것보다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고려와 조선의 쇄환 정책 | 영웅 안용복을 탄압한 조선 조정

제3장 역사를 만든 사람, 사람이 만든 역사 [기억해야 할 이름]

항왜와 순왜 _ 임진왜란 때 조선에 귀순한 일본인 장수 김충선
순왜와 항왜 | 삼난 공신 김충선 또는 사야가 | 정의를 택한 이름

천민 출신으로 형조 판서에 오른 반석평 _ 신분의 장벽을 극복한 조선 시대 오뚝이
『어우야담』에 그려진 반석평의 훈훈한 이야기 | 『실록』에 나타난 반석평의 진면목 | 신분의 격차를 이겨낸 입지전적 인물

조선의 역관 홍순언이 이룬 외교적 쾌거 _ 한 번의 선행이 두 번의 기적을 일으키다
역관 홍순언의 선행 | 기막힌 인연으로 종계변무에 공을 세우다 | 한 번의 선행이 만든 두 번의 기적 같은 보은

고구려 왕후 우씨 이야기 _ 우리 역사에 두 번 왕후를 지낸 여성이 있었다
고국천왕의 왕권 강화 |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던 연우가 산상왕에 오른 이유 | 고구려의 형사취수 풍습

계유정난과 신숙주의 선택 _ 변절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신숙주에 대한 현대 학계의 평가 | 사육신과 생육신 그리고 신숙주 | 비정한 정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녀로 갔다가 명 황제의 후궁이 된 한씨 가문의 자매 _ 여비 한씨와 공신부인 한씨 이야기
공녀로 중국에 갔다가 명 황제의 후궁이 된 여비 한씨 | 여비 한씨의 동생 공신부인 한씨 | 자매를 공녀로 보내고 세도가가 되다

조선 시대 팜므 파탈, 어우동의 비극 _ 여성과 성 이야기
조선의 막장 드라마 | 어우동과 관계를 맺은 남자들 | 『삼강행실도』 속 열녀의 진실

과거 시험 보지 않고도 정승에 오른 인물들 _ 정승이 되는 또 다른 길
음서로 관직을 얻고 정승까지 오른 황수신 | 관직을 거절하고도 정승이라 불린 윤증 | 사후 추증으로 정승에 오른 인물들

일본에서 문화의 꽃을 피운 백제 왕자 _ 아좌 태자 이야기
일본 아스카 문화에 새긴 백제의 손길 | 백제의 아좌 태자와 일본의 쇼토쿠 태자 | 아좌 태자는 왜 역사에서 사라졌는가?

흥선 대원군은 원래 쇄국주의자가 아니었다 _ 대원군 개혁의 본질
신미양요는 승리한 전투인가? | 천주교 신도를 아내로 둔 흥선 대원군의 두 얼굴 | 흥선 대원군 쇄국 정책의 실체

무녀바라기 명성 황후와 미국바라기 고종 _ 무당과 미국에 의존했던 지도자들의 후회
임오군란과 무녀 진령군의 등장 | 미국바라기 고종의 실패

독립운동가 김상옥 이야기 _ 400 대 1의 총격전은 실화였다
유능한 상인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하다 | 400 대 1의 전설적인 투쟁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 _ 한글과 우리 민족을 사랑했던 외국인 선교사
한글 사랑에 빠진 선교사 | 한국의 독립운동에 발 벗고 나서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들

정여립과 대동계의 천하공물 사상 _ 16세기 조선에 나타난 민주주의 이념의 실체
거의 모든 신분이 참여한 홍경래의 난 | 정여립과 대동계 | 정여립과 대동계가 추구한 천하공물 사상

실학, 진짜 정체를 알고 싶다 _ 실학을 둘러싼 논쟁
실학의 개념 | 실학을 향한 여러 가지 논란들 | 조선 실학자들의 한계

제4장 세상에 이런 일이? [주목해야 할 사건들]

조선 역사에 기록된 UFO 목격담 _ 미확인 비행 물체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
조선 시대의 천문학 수준 |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갖가지 기현상들 | 100년의 간격을 두고 나타난 UFO 목격담

임진왜란 때 용병 부대가 활약했다 _ 조선 시대의 흑인 용병 이야기
임진왜란에 참전한 흑인 용병들 | 〈천조장사전별도〉에 남은 용병들의 흔적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 조직 이야기 _ 한양 대화재 사건이 가르쳐주는 교훈
한양 대화재 사건의 전말 |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관이 탄생하다

조선 시대에 일어난 최악의 기근 사태 _ 우리 역사에 인육까지 먹던 참사가 있었다
대기근이 닥치다 | 경신 대기근의 피해가 컸던 이유

세종이 실시한 세계 최초의 전국 단위 여론 조사 _ 세종은 백성에게 물어 세금 제도를 결정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조세 제도, 답험 손실법 | 세계 최초의 여론 조사를 통해 확정한 공법 제도 | 전분육등법과 연분구등법

영조와 금주령 _ 술과의 전쟁에 모든 것을 건 왕
조선 왕들이 금주령을 내린 까닭은? | 영조의 강력한 금주령 | 영조와 사도 세자의 불행

단발령 때 누가 가장 먼저 머리를 깎았을까? _ 단발에 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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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친일 경찰이 갑자기 만주로 떠난 까닭은? _ 3ㆍ1 운동 비사
어느 악질 친일 경찰의 변심 | 3·3 운동이 될 뻔한 3·1운동 | 민족 대표가 아닌 민중들이 독립 선언을 하다

일제 강점기 무정부주의와 허무주의 _ 허무당 선언
일제 강점기 무정부주의의 탄생 | 무정부주의에서 허무주의로

38선 이전에 39선이 생길 뻔했다 _ 분단선에 얽힌 이야기
38선과 휴전선은 일치하지 않는다 | 맥아더 장군의 참모가 밝힌 증언 | 러시아와 일제의 밀약으로 39도선이 생길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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