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는 괴테를 ‘시성(詩聖)’이라고 부른다. 압도적인 작품 수, 문학사적 업적, 그리고 그 뛰어난 표현과 그 속에 담긴 정신, 무엇 하나 ‘시성’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대시인이기 때문이다. 전 유럽을 휩쓸었던 질풍노도기를 비롯해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문학을 선도해 나간 그의 시들은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의 문학가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가 잘 아는 <들장미>, <마왕>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리스트, 브람스 등 수 많은 거장들에 의해 음악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괴테 하면 다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희곡 ≪파우스트≫를 떠올릴 뿐, 시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기 마련이다. 이는 그의 소설이나 희곡이 워낙 유명한 탓도 있지만, 괴테의 시가 소설이나 희곡에 비해 비교적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독일어와 우리말의 언어적인 차이로 인해 원 작품의 운율과 해학을 번역 시에서는 충분히 맛보기 어렵다. 둘째,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괴테의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일기이자 자서전이다. 문학은 물론이고 자연 과학, 정치, 철학, 의학 등 다양한 방면을 깊이 모색했던 그의 삶과 사상이 담겨 있으므로 괴테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옮긴이 임우영 교수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괴테 시선≫을 기획했다. 2014년 12월 기획을 시작해 2015년 11월 1권을 출간한 후 2022년 11월 8권으로 완간하기까지 약 8년이 걸린 셈이다.
저본은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Goethe. Werke. Hamburger Ausgabe)”을 기본으로 하되, 이후에 나온 여러 전집 판본을 참고해 보완, 교감했으며, 함부르크판에 누락된 ≪크세니엔≫(≪괴테 시선 4≫), ≪서동시집≫(≪괴테 시선 6≫), ≪온순한 크세니엔≫(≪괴테 시선 8≫) 등은 “바이마르 전집(Weimarer Ausgabe)”을 참고했다. 괴테가 일곱 살 때 새해를 맞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위해 쓴 <1757년이 즐겁게 밝아 올 때…>부터 1832년 3월 죽기 얼마 전에 쓴 <시민의 의무>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시들을 시기별로 나누어 8권으로 엮었으며, 각각의 시기마다 괴테의 삶과 문학적 특징을 미리 소개했고, 필요한 경우 각 시에 간단한 주석과 해설을 달아 두었으며, 마지막에는 그 책에 수록된 시들 전체에 대한 해설도 덧붙였다. 또한 각 작품을 쓸 당시의 시대 배경은 물론, 괴테의 당시 상황과 심정 및 생각에 대한 배경을 작품 해제를 통해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테 시선≫은 ‘전집’은 아니다. 괴테가 쓴 모든 시를 시대별 또는 시의 형태별로 모은 전집을 원전으로 삼아 번역하기는 했으나, 괴테가 자신의 전집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시를 수정한 것이 많아서, 같은 시에 단어 한두 개 수정한 것을 다시 번역할 필요는 없기에 해설이나 주석에 그 사실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또한 괴테는 많은 사람에게 시를 써 주었는데, 그런 시들 가운데 그래도 의미가 있는 시만 “인물시” 편에 소개했다. 따라서 ≪괴테 시선≫은 괴테가 쓴 모든 시를 담은 ‘괴테 시 전집’은 아니지만, 괴테가 쓴 전체 시의 약 80% 정도에 해당하는 중요한 시를 모두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베네치아 에피그람≫과 에피그람 유고들 및 기타 에피그람, ≪크세니엔≫이나 ≪온순한 크세니엔≫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소개한다.
각 권에 수록된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 폭발했던 ‘질풍노도 시대’의 시들을 수록한 ≪괴테 시선 1≫, 바이마르로 가서 슈타인 부인과 교류하면서 한층 성숙해진 시인의 모습을 반영한 ≪괴테 시선 2≫,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감격과 도취를 그린 ≪로마 비가≫와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느낀 바를 고대의 에피그람 형식으로 쓴 ≪베네치아 에피그람≫을 수록한 ≪괴테 시선 3≫,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비난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러와 함께 퍼붓는 가시 돋친 2행시 모음집 ≪크세니엔≫을 수록한 ≪괴테 시선 4≫, 시인으로서 완숙기에 접어들어 독일 고전주의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시기에 쓴 시들을 모은 ≪괴테 시선 5≫, 나폴레옹 전쟁 시기라는 고난의 시대에 정신적으로 저 멀리 14세기의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가 살던 페르시아로 달아나 서방의 시인이 쓰는 동방의 시들을 모은 ≪서동시집≫과 그 해설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문들>을 수록한 ≪괴테 시선 6≫, 마지막 순간까지 후세들에게 유언처럼 남겼던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은 시들을 담은 ≪괴테 시선 7≫, 마지막으로 괴테가 죽은 후에야 정리되었던 격언 모음집인 ≪온순한 크세니엔≫을 수록한 ≪괴테 시선 8≫이다.
옮긴이 임우영 교수는 ‘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간의 인식력으로는 완전히 알 수 없지만, 오로지 선한 행동을 통해서 보다 숭고한 존재인 ‘신’을 “예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방대한 괴테 문학을 관통하는 메시지이며, 이러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괴테 시의 본질이라고 설명하면서, 한 번 읽어서는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우선 시 자체를 먼저 읽고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파악하려 시도한 뒤 해설을 읽고 다시 한번 읽어 보라고 조언한다. 읽고 또 읽으면서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기다 보면 해설과 상관없이 독자 스스로 그 시의 의미를 도출해 내게 되고, 마음에 들고 공감하는 구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애정과 정성이 담긴 ≪괴테 시선≫이 우리 독자들이 괴테와 괴테 문학을 이해하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