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대변하는 바그너에 대한 뛰어난 평전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토마스 만 자신에 대한 전기
이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힌다. 19세기를 대변하는 위대한 작가 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관한 책이면서 동시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토마스 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경탄과 비판이 한데 어우러진 최고급 바그너 평전이면서 토마스 만의 내면 풍경과 예술론이 솔직하고 생생하게 담긴 역사적 자료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제1급의 독일 예술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한 생생한 육성 기록이다. 바그너(1813-1883)는 어지러운 독일 통일 과정(1806-1871)을 고스란히 살아내며 19세기를 대변하는 작가 겸 음악가, 토마스 만(1875-1955)은 양차대전과 히틀러 시절을 고통으로 체험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다. 이들의 만남에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특별한 두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1860)와 니체(1844-1900)도 함께한다. 이런 지성과 예술의 만남은 다시 한 예술가, 곧 토마스 만의 내면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경탄과 충격과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_ ‘옮긴이의 말’, 316쪽
바그너는 문학과 음악, 춤과 무대장치, 연기 등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예술 작품인 ‘음악연극’을 최초로 만든 예술가다. 많은 오페라 작품을 작곡한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의 대본을 쓴 작가이기도 하고, 나아가 당대 유럽의 대표적인 지휘자였고 자기 작품을 무대에 직접 올린 연출가이기도 했다. 토마스 만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바그너의 음악연극을 “신화[문학]와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제3의 장르인 연극”으로 승화한 것이라 보았고, 그래서 바그너를 기존 오페라 관습에서 벗어난 예술의 혁명가로 평가했다. 그래서 바그너 작품의 위대함이자 그 어떤 오페라 음악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매력이 토마스 만을 통해 더욱 잘 드러난다. 특히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 전편의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고, 이를 무대에 올리고자 바이로이트 극장을 건설하여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 전편을 초연하기까지 20년 이상 씨름한 이야기가 토마스 만 특유의 만연체로 펼쳐진다.
토마스 만은 “바그너 작품을 알게 된 이후로 그 작품들을 향한 열정과 경탄이 줄곧 자신의 삶과 함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경탄과 열광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이며 “세계와 예술과 삶의 현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자 태도라고 단언한다. 바그너 또한 예술가의 능력이란 경탄 또는 공감 능력 덕분에 자라는 것이라고 여겼다. 토마스 만은 1902년 ‘쿠르트 마르텐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바그너라면 쪽을 못 쓰는 사람”이라며 “〈파르지팔〉을 보면 2주 동안 단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소설 《트리스탄》, 《벨중의 혈통》, 《부덴부로크가》, 《요셉과 그 형제들》 등을 생각해보면, 바그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더 밝고 새로운 예술 영역으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바그너 작품에 경탄하고 열광하면서 토마스 만은 자신만의 위대한 재능을 발휘하였고, 바그너의 작품은 그런 그에게 예술적 환상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옮긴이 안인희의 섬세하고 친절한 번역으로
토마스 만과 바그너의 위대한 세계 안으로
바그너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깊이 받았고, 아들뻘 니체와는 한때 절친이었을 만치 깊게 교류했다. 또한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왕과 20세기의 문제적 인물 히틀러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바그너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토마스 만이다. 토마스 만은 말년까지 바그너에게 매혹되었고, 그의 정신적 모습을 19세기 자체처럼 고통스럽고 위대해 보인다고 표현했다. 또한 바그너가 자신에게는 가장 강력한 체험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와 20세기의 음악, 철학, 문학, 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예술가 바그너를 20세기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토마스 만의 문장으로 만난다는 것은, 21세기 독자들에게는 전무후무한 경험이자 특별한 선물과도 같다.
그러나 토마스 만이나 바그너의 세계를 제대로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문학자이자 경륜 있는 번역가 안인희도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검토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문장가로 손꼽히는 토마스 만은 사유의 굴곡이 난해하고도 복잡한 지식인인데, 이 책에서는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그너 또한 삶의 굴곡과 사유의 굴절이 극심한 문제적 인물이었으니, 그의 삶의 궤적에 대해 상당히 정통하다 해도 여전히 이해하기 곤란한 부분들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고 일일이 해결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원문을 뚫어져라 바라볼 때도 많았고, 일부는 길을 걸으며 머릿속에 지닐 때도 있었다. 교정 과정에서만 전체 원고를 여러 번이나 거듭 읽고 자주 원문과 대조했다. 그 과정에서 천천히 광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번역 원고의 여기저기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일부는 찬란한 아름다움이었다. 아니, 언어가 이렇게 빛난단 말인가? _ ‘옮긴이의 말’, 321-322쪽
옮긴이 안인희는 차츰 토마스 만의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기쁨이 작업의 추진력이 되어 그 힘든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덕분에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의 대표적인 예술가, 토마스 만과 바그너의 세계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_
‘음악의 글’ 시리즈
‘음악의 글’은 음악 전문 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_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_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바그너-브루크너》, 제6권은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_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제7권은 작곡가, 지휘자, 저명한 음악 교육자였던 이모겐 홀스트가 집필한 음악 교육서의 고전 《음악의 ABC _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제8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격변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음과 말 _ 에세이와 강연록》, 제9권은 음악과 음악가의 위대성에 대해 논하는 알프레트 아인슈타인의 《음악에서의 위대 _ 위대한 음악가는 누구인가》입니다. 제10권은 시인 오든이 “역사상 최고의 음악평론가”라 칭송했던 버나드 쇼의 《쇼, 음악을 말하다 _ 거장 극작가의 음악 평론》, 제11권은 세기말과 세기 초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사색과 기억 _ 예술과 인생에 대하여》, 제12권은 새로운 지휘자상을 확립한 브루노 발터의 경험과 지성, 통찰이 깃든 《음악과 연주 _ 창조와 재창조에 대하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