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귀 평전, 『공덕귀, 생애와 사상』 발문
김학준/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초대원장
1. 해위 윤보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에 관해서는 이승만 대통령 시대에 전개한 반독재민주화운동, 4월혁명의 결과로 이 대통령이 하야한 이후 성립된 제2공화정 시대에 대통령으로서 수행한 활동, 그리고 5ㆍ16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상대로 전개한 반독재민주화운동을 목격했거나 전해 들은 사람이라면 친숙하게 알고 있다. 특히 그의 회고록 「구국의 가시밭길」(한국정경사, 1967)과 「외로운 선택의 나날: 윤보선 회고록」(해위윤보선대통령기념사업회, 2012)을 읽은 경우에는, 훨씬 소상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진실된 협력자였던 부인 공덕귀 여사에 관해서는, 공 여사의 구술을 받아 한 신문인이 쓴 「나, 그들과 함께 있었네」(여성신문사, 1994)라는 자서전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저 ‘남편의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충실히 내조한 아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생각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공 여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남편의 애국적 정치활동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통상적 인식을 크게 교정하게 만드는 책이 출판됐다. 윤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을 국문과 영문으로 출판했던 김명구 교수가 집필한 「공덕귀, 생애와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2. 이 책은 무엇보다도 공 여사가 단순한 내조자가 아니었으며, 그 스스로 남편을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민주주의 사상과 인권존중 사상을 갖고 있었으며, 이 내면화된 사상에 따라 남편의 정치노선을 지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기도 했음을 실증적으로 논증했다. 공 여사는 단순한 내조자의 수준을 넘어서서 자신이 포지한 민주주의 사상과 인권존중 사상에 따라 남편과 손발을 맞추기도 하고 남편을 이끌기도 했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윤 전 대통령의 신념과 행동에 관한 기존의 해석을 한 차원 높게 심화시켰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윤 전 대통령에 관한 기존의 저술들이 제시한 논지들을 여러 측면에서 보완하고 있다.
3. 그러면 공 여사의 그러한 사상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가? 저자 김 교수는 1911년 5월에 태어난 공 여사가 1949년 1월 38세의 나이에 해위와 결혼하기 이전의 삶을 소상하게 살폈다. 여기에 따르면, 공 여사는 항일의식이 투철한 경상남도 통영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기독교 교육을 중시한 각급 학교를 다녔고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국내에서는 전도사로 또는 교수로 사역했다. 이 과정에서, 공 여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맞게 창조한 존재”라는 신념을 가졌고, 따라서 “사람에게 가장 존귀한 것은 자유이며 이 자유는 누구라도 속박할 수 없다.”라는 믿음을 키웠다. 동시에 평등의 사상과 공의(公義)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교회는 사람들이 사는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학을 배우기도 했고, 빈민을 위해 일생을 바친 가가와 도시히코(賀川豊彦)의 신학과 실천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송창근 목사의 성빈사상(聖貧思想)에 감동했으며, 기독교복음의 국가적ㆍ사회적 사명을 강조한 김재준 목사의 신학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철저한 자료검증을 기반으로 집필한 김 교수의 논지를 읽으면, 공 여사가 단순한 신학도가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 밝은 학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신학세계가 그러했기에, 공 여사는 남편의 정치활동이 자신의 신학에 일치하도록 보살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정치에 영향력이 큰 기독교 지도자들과 남편을 연결해, 남편이 독재와 인권탄압에 저항하는 운동을 이끌도록 고무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공덕귀의 사상은 윤보선 정치사상의 신학적 이론이 되었다. 교계와 정치계를 연결시키는 사상적 연결점도 되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윤보선에게 지지를 보내고 그 활동에 적극 동참한 이유이다.”라고 썼다.
4. 김 교수의 이 책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구한말 이후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 또는 기독교 정치ㆍ사회운동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생활하고자 했던 기독교인들의 경건한 신앙과 투쟁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종교적 신념의 힘이 얼마나 크며 그것이 ‘위대함’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발문을 쓰기 위해 이 책의 원고를 읽으며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