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이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
남자들은 여자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을까?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 일이고, 그 이전에는 시민 취급도 받지 못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이후로도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식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 100여 년 전의 세상, 그리고 훨씬 더 오래전의 세상에서 여자들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상 남자는 늘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로 군림했기에,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를 지배하거나 아껴주거나 이용만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갑골문이다.
한국어에는 한자어의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 그만큼 우리가 쓰는 언어에 한자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많은 한자어들 속에서 ‘여(女)’ 자에 주목한다. 십 년 전 ‘독 독(毒)’ 자를 보다가 이 글자에 ‘어미 모(母)’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고, 그 이후 ‘여(女)’ 자가 들어간 한자에 좋은 의미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는 수많은 자료와 책들과 인터넷을 뒤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언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리고 지구상 거의 대부분의 언어처럼 한자를 만든 사람들도 남자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그림문자였던 갑골문이 그 글자를 만든 남자들의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妥)’라는 한자의 뜻은 ‘온당하다’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글자를 만든 연유를 알면 ‘온당하다’는 의미에 담긴 남자의 시각을 꿰뚫어볼 수 있다. ‘妥’의 갑골문과 금문, 초계간백에는 여자[女] 위의 ‘손톱 조(爫)’가 여자의 머리채를 끌고 가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여자, 노예 삼을 여자를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온당하다고 말하는 글자인 것이다.
저자가 밝힌 것처럼 갑골문에서 사용된 여(女)라는 글자들은 여자의 존재 자체를 낙인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 시절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인식은 그렇게 머물러 있었고, 언어는 면면히 이어지며 갑골문 이후 5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의 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쌓여 있는지도 모른다.
남녀 갈등, 언어의 시간을 넘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는 남녀 갈등이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혐오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남자들은 자신을 역차별의 희생양이라 하고, 여자들은 여성 차별이 여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보편적인 명제와 함께 전통적인 성 역할이 사라지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해야 할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 역사는 갈등과 투쟁, 양보와 포용을 통해 발전해나간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이는 것도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흔들리고 변해가는 이 과도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하기만 한다면 남녀 모두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갑골문에 낙인으로 박제되어 오랜 시간을 견뎌왔던 여자들. 이제 낙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야 할 때이다. 그러고 난 후에야 우리 모두 자유로워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