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와 활판인쇄술은 우리의 문자 ‘한글’과 더불어 고려와 조선의 자랑이었고, 오늘날도 우리 9000만 민족의 자랑이다. 우리 학계, 특히 역사학계와 서지학계는 광복 이후 이 금속활자의 기원, 제작기술과 공정工程, 금속활자의 종류, 활인본活印本과 번각본飜刻本 책종, 활판인쇄술과 그 발달사 등 거의 모든 측면을 탐구하여 혁혁한 연구성과를 쌓아올렸다. 그리하여 한국 금속활자의 기원에 대한 인식도 아주 심화되고 정확해졌다. 가령 「남명화상송증도가南明和尙訟證道歌」의 발행연도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출판보다 234년 앞선 1211년(고려 희종7년)경이라는 것까지도 밝혀냈다. 주자鑄字(금속활자)인쇄 원본을 그대로 본떠 중조重雕한 이 책의 번각본 4종이 현존함으로써 원본이 고려 최초의 주자인쇄본으로 밝혀졌고, 2004년에는 이 책의 인쇄에 사용된 수십 개의 동銅활자(동 74-80%, 주석 8-9%, 납 10-17% 합금활자)도 찾아냈다.
또 수많은 주자의 종류, 주자로 활인活印한 서책들, 그리고 무수한 각종 목활자·도陶활자·포匏활자의 종류 및 그 활인본活印本 서책들, 나아가 책방冊坊(출판사 겸 서점)에서 영리목적으로 발행한 수많은 상업적 방인본坊印本 서책들을 추적해 찾아냈다.
동서 정치철학과 정치사상,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를 50여 년 동안 연구해온 필자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이것은 실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놀라운 성과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혁혁한 성과를 쌓은 한국 금속활자 관련 역사학과 서지학은 두 가지 중요한 분야의 연구를 손도 대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그중 하나는 한국 금속활자의 세계적 영향(서천西遷)을 연구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조선 700여 년간 금속활자로 찍은 서적들을 서지학적書誌學的 정보와 함께 정리한 총목록을 생산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금속활자의 세계적 영향에 대한 연구란 바로 한국 금속활자의 서천西遷에 대한 연구다. 이 방향의 연구는 지금까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이 서천문제에 대해서는 모某방송국에서 송출한 비학술적 방영물과 영화, 소설 등이 있고, 연구논문으로는 이 방송국 추적물을 모방한 실망스런 수준의 논문이 하나 나와 있을 뿐이다. 한국 금속활자 관련 사가들과 서지학자들은 고려·조선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몇 십 년, 또는 몇 백 년 앞섰다는 주장만을 반복해왔을 뿐이고, 한국 금속활자 인쇄술의 세계적 파급과 확산에 대한 연구는 거의 완전히 도외시해온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1854년 로버트 커즌이 극동 인쇄술의 서천을 주장한 이래 2019년까지 165년 동안 한국 금속활자 인쇄술 또는 극동 인쇄술의 서천을 논한 논문·저서들은 도합 14건이나 쏟아져 나왔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었는데, 1924년 더글러스 맥머트리가 금속활자 인쇄술의 서천西遷을 부정하고 구텐베르크의 독창적 발명을 다시 주장한 이래 2015년까지 90여 년 동안 구텐베르크의 독창설을 피력한 본격적 반反서천 이론은 5건이 나와 있다. 외국의 많은 양심적 학자들이 게으른 한국 학자들을 대신해 구텐베르크독창설과 싸워온 것이다. -(중략)-
‘구텐베르크 혁명’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는 작업은 마지막 장에 배치했다. 필자는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술의 기술적 고립이라는 근본적 결함과 활판술에 대한 알파벳의 문자체계적 부적합성과 장애물 성격을 입증하고 이것을 유럽 책값의 400년 장기 고공행진의 원인으로 밝혀낼 것이다. 또한 태종 6년 이후 60년간 발행된 조선 금속활자 인쇄의 책종이 구텐베르크 이후 60년간 출판된 유럽 각국 평균 활인본 책종보다 6배 많다는 사실史實을 이 책 ‘부록’의 조선의 활인본 리스트 「1406년부터 1466년까지 60년간 조선의 활인본 서책목록」(60년간 2117종 발행)으로 제시함으로써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지각효과로 입증한다. 또한 우리는 유럽 전역에서 서점의 수적 부족과 부실한 구비 상태, 대중적 독서수요의 항구적 미충족 상태에 기인한 책쾌冊儈(책 행상인)와 세책점貰冊店의 ‘지나치게’ 오랜, 그리고 ‘지나치게’ 광범한 확산이라는 유럽제국의 ‘궁상맞은’ 독서 문화 등을 구텐베르크 활판술의 기술적 낙후성을 나타내는 궁극적 표징 또는 증좌로 입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구텐베르크 혁명이란 것은 일어나지 않았고 출판혁명은 오히려 조선에서(만) 일어났다”는 필자의 핵심테제 중 하나에 심혈을 쏟아 이 테제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명제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