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이 쓴 〈방문객〉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빛고을 광주에 사는 이주여성 34명이 들려준 살아가는 이야기와 인권 이야기를 읽으며 퍼뜩 떠오른 말이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사람씩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람이 오는 무게가 정말로 굉장하다는 신선한 충격과 놀람이 거듭되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상당수가 10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인데, 살아가는 이야기와 인권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비슷한 질문에 유사하게 답변하고 내용이 반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빛고을 광주에 사는 34명 이주여성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얻은 답변을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기에 34명 이주여성에 던진 질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부분은 ‘자기소개’로 시작해 성장 과정, 가족 이야기, 꿈과 기대, 광주로 이주하는 과정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둘째 부분은 한국, 특히 광주에서 ‘이주여성’으로서 사는 삶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셋째 부분은 이주여성이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앞으로 계획과 비전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10년 후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것, 지역사회를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 후배 이주민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 질문 외에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책을 출간할 때 사용할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답변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이주민으로서 살아온 이야기와 인권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고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살아온 일생을 심층 면접 한 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래도 이주민 목소리를 다문화 담론 전면에 가져오고 그 목소리를 이주민과 선주민 모두가 듣도록 시도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책을 출간하는 건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빛고을 광주에서 들려준 34명 이주여성 목소리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이주여성 목소리에 공명해 다문화 담론 전면에 등장하길 상상합니다. 그래서 살아온 이야기와 인권 이야기를 통해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이주민과 이주민이, 선주민과 선주민이 서로 비추어 배우는 시간과 공간이 확장하길 기대합니다. ‘100명의 이주민은 100가지 스토리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34명의 이주여성은 34가지 스토리를 가진다’라고 바꾸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34명 이주여성이 각각 다른 성장 배경과 이주 과정, 다른 처지와 환경, 다른 시각과 관점을 지녔기 때문에 34명 이주여성이 같은 질문을 듣고, 다르고 다양하게 답변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용기 있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들려줌으로써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사는 모든 이에게 사람답게 사는 지혜와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제안해 준 이주여성 34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책의 필자 중에는 이름을 밝힌 사람도 있지만, 이름을 밝히지 못한 이주여성이 우리 곁에 아직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안전한 공간이나 안전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주여성이 들려준 모든 이야기는 한국 사회가 더욱 공감하고 연민하고 연대하는 사회로 확장해야 함을 침묵 속에서 큰 목소리로 외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소개한 글을 읽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고자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독자가 늘어난다면 책을 출간한 충분한 보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