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청와대 개방과 함께 완전히 열리다
600여 년 전 나라의 도읍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한양도성이 청와대 개방과 더불어 국민
들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섰다.
새 나라 조선은 법궁 경복궁을 비롯해 도읍의 핵심을 지켜낼 도성을 1396년에 완공했는 데,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고스란히 지켜본 이 한양도성은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최근 까지도 사실상 지키는 역할을 감당해 왔다. 이는 한양도성의 중심 공간인 경복궁 북쪽에 근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주목 받아온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한양 도성 구간 가운데 청와대와 가까운 일부분은 일반의 접근이 막혀 있었는데, 2022년 5월 10일 청 와대가 전격적으로 개방되면서 닫혀 있던 한양도성의 일부 구간까지 일반에게 모두 열렸다. 이렇게 서울의 역사와 함께 흐르던 한양도성이 국민들에게 제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게 되면서, 이 책의 저자인 신희권 교수(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도 그동안 변화된 부분을 반영하 여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개정판으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2022년 8월에 다시 열린 광화문광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경, 원래의 모습 으로 바로잡은 현판과 함께한 혜화문 등 최근의 변화까지 사진 교체와 내용 보완을 통해 반영하 였고, 국보 보물의 표기문제 및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개관, 서울시와 경기도가 한양도성 탕춘대 성 북한산성을 세계유산에 공동 등재하려는 것까지 충실하게 담아냈다.
한양도성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과 대한제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나라의 도읍을 둘러싼 도성으로서 가장 긴 성벽을 갖춘 한양도성은 한마디로 역사와 삶 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공존해온 현장을 오롯이 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태조·세종·숙종 대 를 비롯해 조선시대 여러 시점에 수리된 성벽의 역사와, 성곽마을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 모두를 품고 있는 독특한 자연경관이 순성길에 나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이 책은 이렇게 600년 넘게 생명력을 이어온 도성이 사람·자연과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역사와 문화를 도성전문가의 시 선으로 만나는 책이다.
저자 신희권 교수는 1997년부터 10년 넘게 직접 풍납토성을 파고 공부해서 그곳이 백제의 첫 도 읍지인 위례성임을 주장해 온 ‘도성 전문가’이다. 그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발굴 조사 책임자 로 일하는 동안, 한양도성의 정문인 국보 1호 숭례문을 국내 최초로 발굴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석사를,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고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학 문의 깊이와 풍부한 현장경험을 가진 탁월한 학자이다.
덕분에 이 책을 열고 한양도성을 돌아보는 동안, 저자가 열어놓은 역사학자의 시선과 고고학자의 시선을 오가며 조선 전후부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까지 한달음에 둘러볼 수 있다.
세계유산으로 나아가는 한양도성
한양도성의 모든 것을 말하는 책답게, 저자는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백악구간부터 인왕산구간에 이르기까지 도성 곳곳에 배어 있는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순성 구간에 맞춰 이 책을 총 6부 24장으로 풀어냈는데, 각 부마다 한 꼭지씩 할애하여 한
양도성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양도성이 탄생하게 된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꼭지는 물론이고, 성벽의 글씨에서 확인하는 책임시공의 흔적, 유적의 보존과 활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저 자가 한양도성을 연구하며 정리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이 책에 꽉꽉 눌러 담았다. 여기에 한양도성 각 구간의 촬영 명소들과 반드시 만나보아야 할 요소들을 수백 장의 사진으로 함께 담아 읽는 즐 거움에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4대문과 4소문까지 모두 8개의 문을 품은 한양도성이기에, 국보 숭례문과 보물 흥인지문이 일제 강점기에 살아남은 아찔한 사연부터 성곽길 곳곳에 담겨 있는 한양도성의 숨은 가치에 이르기까 지 아낌없이 풀어냈다. 한마디로 문화유산으로서 한양도성이 지닌 가치와 더불어 도성이 낳은 사 건과 사람, 문화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게 이 책이다.
이 책의 강점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정판 1쇄 발행 시점을 기준으로 한양도성에 관한 최근까지 의 다양한 변화를 반영했다는 점이다. 초판에서 제기한 문제점이 바로잡힌 것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이어진 발굴과 정비를 거쳐 한양도성 관련 시설이 새롭게 세워진 것까지 핵심적인 내용 들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남산구간에서 숭례문구간까지 서울도심과 눈맞추며 따라가다가, 숲길로 이어진 인왕산구간과 백악구간에서 청와대와 경복궁과 어깨동무하고, 낙산구간 이화 벽화마을에서 역사와 문화의 어우러짐을 확인한 뒤 흥인지문구간에서 도성길의 야경과 마 주하게 되면 함께 동행한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의 가치를 저절로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한양도성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성벽·사람·자연이 함께 만들어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여기서 유적의 복원 및 정비 문제도 놓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원형 보존이며, 이 원칙을 지켜낼 때 문화재의 아우라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숭 례문 복구에 따른 국보 1호 교체 논란, 남산구간에서 발굴된 일제의 조선신궁 배전터 처리 문제 등 예민한 사안에 대한 저자의 합리적 해법에 감탄하게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숭례문 등 여러 발굴을 주도하고 문화재청에서 창덕궁관리소장으로 문화 재 활용의 최전선에서 일했기에, 저자는 문화재 보존과 활용 모두를 염두에 두고 한양도성을 독자 에게 소개한다. 발굴되었지만 자취를 감추어버린 청계천의 오간수문이나 동대문운동장에서 발굴 된 이간수문의 복원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우리는 불필요한 복원과 과도한 정비로 한양도 성의 진정성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서울을 품고 600여 년의 시간을 흘러온 사적 제10호 한양도성. 조선과 함께 태어나 여러 시기의 사상과 기술, 삶과 문화를 품은 이 도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18.627킬로미터의 성곽길 을 세계인들과 함께 걸으며 그 아름다움과 더욱더 행복하게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