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어렵다고?
우리는 왜 경제학을 어렵게만 생각할까?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은 일반인들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영역 보존을 하는 데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학문”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진보와 빈곤』을 쓴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는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대규모 도서관 또는 값비싼 실험실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만 하면 교과서도 선생님도 필요 없습니다.”
경제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경제학의 중심에 건조하고 낡은 이론만 있고 생생한 현실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설명해 내지도, 현실을 바꿔 내지도 못하는 경제학에 사람들이 과연 관심을 가질까? 주류 경제학의 주
요 전제인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개념만 봐도 경제학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항상 치밀한 계산 끝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과연 우리 주위에 있을까?
그럼에도 우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경제에 대해 배워 나간다. 평범한 이들이 경제 문제에 등을 돌리고 알고 싶지 않게 만드는 그 ‘거대한 힘’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1997년 10월 29일 외환위기가 터지기 바로 직전, 당시 김영삼 정부의 경제팀은 기자회견을 통해 “환율이 고개를 숙일 것이다. 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이미 발표된 두 번의 대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식시장도 괜찮을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로부터 정확히 23일 후,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경제학자들은 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할까? 이론에 치우쳐 현실을 외면한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또 다른 이유에 대해 연세대 경제학과 홍훈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한국 경제학계는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외국 학술지 게재를 지향하는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핍돼 있고 학문 재생산 능력도 상실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경제학은 관료나 기업들과 진정으로 대화하지 못하며,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 문제에 대한 진정한 전문가로 자처하기 힘들다.”
문제는 관심과 시선의 방향이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자들 위주로 경제정책의 방향이 움직였다면 이젠 지금껏 소외돼 왔던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다른 학문과의 만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학이 법학, 철학, 정치학 등과 같은 다른 사회과학 학문들과 동떨어진 채 홀로 설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또한 인간 윤리에 대해 다룬『도덕감정론』으로부터 잉태되었다.
경제 문제에 관해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가진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치열하게 토론할 때 경제학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이 먹고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 경제학이 경제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이 모두 경제학의 중심에 숫자와 도표로 이뤄진 이론만 가득하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평가할 때 GDP수치를 자주 거론하는데, 과연 이 숫자가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로버트 F. 케네디도 GDP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수치는) 네이팜탄도 합산하고, 핵탄두와 도시 폭동을 제압하기 위한 무장 경찰 차량도 합산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기 위해 폭력을 미화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합산됩니다. 반면 우리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측정합니다. 국민총생산은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 미국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제학의 중심에는 사람이 놓여야 한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은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한 이들의 삶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센 지수를 개발하여 그들이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게 노력하였고, 일본의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 또한 ‘사회적 공통 자본’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경제학에 인간의 마음을 담고자 노력했다. 경제학이 밥과 자유를 넘어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면 경제학자들은 숫자 대신, 자본 대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숫자 대신 사람을 가슴에 품은 경제학자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현실에 발을 딛기 위해 노력한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경제가 발전하는 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토지 즉 부동산 문제에 있음을 최초로 논증한 ‘헨리 조지’, 경제학에 인문학의 품격과 함께 왼쪽의 날개를 달아준 ‘정운영’, 합리적 개인들 간에도 협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정치학자 ‘오스트롬’,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 경제는 정치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정치경제학이라는 우리가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외친 ‘김수행’, 빈곤은 물적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 주장한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 ‘아마르티아 센’, 주류 경제학이 외면한 ‘사람의 마음’을 경제학에 담고자 한 ‘우자와 히로후미’, 혁신과 일자리를 경제학의 중심에 두고자 한 ‘슘페터와 조앤 로빈슨’, 기본소득에서 인류 공생의 길을 찾고자 한 ‘필리프 판 파레이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한 ‘로버트 H. 프랭크’.
어쩌면 이들의 사상이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훗날 감금된 우리의 생각에 자유가 필요할 때, 바로 그때 인류는 이들로부터 중요한 무언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비뚤어진 경제학의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삶을 향하게 할 수 있다면, 인류는 이 책의 주인공들과 함께 경제학에 미래를 걸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