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윤조병의 작품세계
극작가 (故)윤조병(1939~2017)은 1963년에 영화전문지 월간 〈국제영화사〉 시나리오 공모전에 〈휴전일기〉로 입선한 후, 1967년 국립극장 장막희곡 공모에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되면서 극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로 국내·외의 권위 있는 연극·예술 분야 시상식에서 그가 수상한 이력들만 40여 건에 달하는데, 대한민국연극제 대상·희곡상 등 단체상과 개인상 여러 차례, 전국연극제 대상, 서울어린이연극제 최우수상, 밀양전국연극제 대상, 대통령 표창 등이다. 이는 극작가로서 활동 당시의 위상을 대변해준다. 뿐만 아니라 윤조병은 예술행정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립극단인 인천시립극단을 창단했고 인천종합예술문화회관, 인천 수봉문화예술회관, 인천 서구문화회관 등 크고 작은 극장들을 만드는 데에도 힘쓰며 지역 연극 발전의 밑거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교육자로서 한양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윤조병 희곡의 특징으로는 이분법적 세계관, 고향에 대한 애정, 개작·번안·각색과 같은 재창작 경향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2007년 이후 발표된 후기 작품들은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면서 작품의 내·외적으로 괄목할 만한 변화가 보였다. 초기작부터 작가의 관심사였던 전쟁과 분단문제, 진실과 허구, 물질문명과 자연세계 등의 문제들을 2인극, 아동·청소년극, 번안·번역극 등 다양한 작품들에 적용하여 구사함으로써 연극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윤조병 특유의 양식을 구현해냈다. 이 점은 한국희곡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극작가 윤조병은 단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멈추어 있고 가려져 있던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진심을 다해서 행동했으며 그것은 곧 변화의 시작이 되었다. 작가의 작품이 그러했고, 작가가 머물다 간 자리들마다 그러했다. 작가의 유고집은 2017년 9월에 발간된 희곡집 ≪황진이, 가능의 캐릭터≫, ≪윤조병 아동가족극집:개구리 이야기≫, 시집 ≪커피 두고 갈게≫이다. 작가가 같은 해 10월 11일에 타계한 것으로 보아,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창작했다. 이것은 연극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 작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작가가 일생을 바친 작업들을 하나하나 모은 전집이 출간되었다. 윤조병은 50여 년 동안 약 160여 편의 희곡·시나리오·아동청소년극·음악극·뮤지컬·무용극 등의 극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시, 소설, 에세이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남긴 방대한 작업들이 있었다. 『윤조병 전집』은 작가가 생전에 창작했던 모든 장르의 작업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던 미발표 작품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작가/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작품을 통해 영원을 추구한다. 작품은 삶이 유한한 작가/예술가에 의해 탄생된 창조물이지만, 동시에 시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영원성을 지닌다. 생명력 있는 작품은 작가/예술가가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과 세상을 향해 던지는 내밀한 고백이고 의미 있는 질문이자 성찰이다. 그것은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의미와 공감을 넘어 보편 세계로 나아간다. 작품들을 모은 전집은 보편 세계와 만나는 소중한 매개체다. 이 전집이 많은 독자들과 만나기를 소망한다. 연극인과 공연관계자들에겐 공연 텍스트로, 연구자들에겐 가치 있는 학술 자료로 널리 읽혀서 한국 희곡과 연극이 풍요로워지는 데 조그만 보탬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