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1번지, 제주는 유배지였다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한양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과거의 제주는 권력에서 패한 정치인이나 학자를 격리시키는 원악의 유배지였다. 그야말로 유형의 섬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사화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으로 패배한 관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절해고도의 섬, 제주에 유배되었다. 제주에서는 게으름뱅이를 제주어로 간세다리라 불렀던 것처럼 유배인을 가리켜 ‘귀양다리’라 하였다. ‘귀양다리’는 조선시대, 귀양살이하는 사람을 업신여겨 이르는 말이었다.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제주를 이제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날카로운 기자정신으로 제주도 곳곳을 누비다
저자인 장공남은 제주도 토박이 출신으로 제민일보에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를 연재하였다. 그는 2대째 유배를 연구하고 있는 제주대학교 양진건 교수와의 사제지간 인연으로 기자 시절, 양진건 교수팀의 ‘제주 유배문화의 녹색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과 보조를 맞춰 〈제민일보〉 2010년 6월 2일자부터 그해 12월 29일자까지 16차례에 걸쳐 ‘제주의 또 다른 기억 유배문화, 그것의 산업적 가치’를 연재하였다. 그는 문헌자료에 대한 일독과 함께 역사 유적이 남아 있는 제주도의 현장을 동시에 누비며 흩어져 있는 사료와 지방 자료들을 하나로 모았다. 이 연재기사는 한국기자협회로 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완성도를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제주도 귀양다리 이야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조정의 미움을 받고 유배를 당한 정치인과 학자들의 흔적을 길을 걷듯 짚어내고 있다. 테마별로 인물들을 묶어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 유적지와 관련된 사진들도 보기 좋게 실었다. 저자의 철저한 역사 고증과 현장 사진은 독자들로 하여금 제주도 그 땅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배지에서 가슴아픈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광해군, 송시열, 김정희의 공통점은?
과거의 아픈 기억은 세계 곳곳에서 관광 자원으로 값지게 활용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에 가면 유배인 다산 정약용이 저술활동을 했던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을 중심으로 문화와 생태관광이 결합된 남도유배길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중국 하이난섬은 당?송나라 때 유배지였다. 하이난섬에는 유배생활을 했던 이덕유, 이강, 이광, 조정, 호전을 기리는 사당, 오공사가 있다. 호주의 섬 테즈매니아는 유배의 섬이었다. 1840년대 죄수 1,100여 명이 머물렀던 마을 포트 아서는 유적지로 남아 있다. 에게 해의 작은 섬 밧모 섬은 로마제국시대 유배지다. 예수의 제자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 섬에서 18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요한계시록을 집필하였다.
유배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같이하며 제주에 자생하던 문화적 토양과 결합해 독특한 제주문화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 제주에도 이제 스토리가 필요하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관광이 아닌 의미와 역사의 향수를 부여해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