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화를 글쓰기처럼 사유하고 창작하는 일
우리는 대화를 하는 와중에 이 대화가 실패했음을, 또는 실패하고 있는 과정에 들어갔음을 느낄 때가 있다. 혼자 창작하는 글쓰기는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 창작되는 대화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화의 실패를 경험하고 그에 좌절하고, 동시에 성장을 도모한다. 대화는 삶에서 가장 보편적인 소통의 수단이지만 이를 잘 해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매일의 반복이 매일의 실패가 되는 슬픔을 우리는 자주 겪었다.
‘글쓰기’란 더 좋은 생각문장을 찾는 것이다. 언제나 지금 사용하는 생각문장보다 더 좋은 생각문장이 존재한다. ‘작가’는 한 문장 한 문장 이어 쓰고 고치고 다시 쓰면서 더 나은 생각문장을 찾는다.
반면에 ‘대화’란 둘이 쓰는 글쓰기다. ‘나’가 한 문장을 말하면, ‘너’가 한 문장을 이어 가는 공동창작이다. (17p)
작가는 더 나은 대화의 방향성으로 ‘글쓰기 대화법’을 추천한다. 대화를 둘이 쓰는 글쓰기로 보는 것이다. ‘나’가 창작한 생각문장과 ‘너’가 창작한 생각문장으로 우리의 대화를 창작한다. 여기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까지 발견하고, 또 너의 진면모를 깨닫는다. 이 모든 건 나와 대화한 사람이 너여서 가능했고 너와 대화한 사람이 나여서 가능했으리라. 혼자서는 만들지 못했을 더 좋은 생각문장이 창작된다. 우리는 우리로서의 대화로 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 소크라테스처럼 질문하여 무에서 유를 창출한다
창작이란 창작자가 아는 한에서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창작자가 모르는 영역까지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미지의 순간을 탐험하는 일, 또 이탈하면서 더 나은 창작물을 창조하는 일은 대화와 유사하다. 상대방과의 대화로 내가 미처 몰랐던 진실까지 도달할 수 있다. 만일 상대방이 나보다 더 훌륭한 창작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나는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너는 아직 몰라도 이미 알고 있다”라는, 더없이 겸손한 역설적 자세로 대화한 사람이다.
이러한 산파술의 태도는 타인과 대화 나눌 때 가장 바람직한 대화 자세다.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놓고, 상대를 가장 높은 자리에 놓는다. 그럼으로써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게 아니라, 사고하는 과정을 스스로 열어가도록 돕는다. (181p)
소크라테스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 모름으로 자신의 내면에 타인의 자리를 비워둔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내 공간을 비워두고 그 자리에 타인을 채우는 일이다. 이 모름으로 타인 스스로 사고하도록 돕는다. 결국 대화는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도록 돕는 일이다. 작가는 이러한 대화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헬프대화’라 명명한다. ‘셀프대화’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은 ‘헬프대화’로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한다.
▶ 사랑의 사건, 대화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 당신의 언어에 내 귀가 쫑긋하고 있다. 귀만이 아니다. 눈도, 입도, 그리고 온몸의 기관도 당신의 행동, 언어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다하고 있다. 당신을 기억하는 과정이고 당신을 감각하는 과정이다. 당신의 지금을 나의 지금으로, 또 나의 지금을 당신의 지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너의 상태와 기분과 감정에 알맞게 말해야 한다. 너의 상태와 기분과 감정이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 할 때 말해야 한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때가 아닌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은, 결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186p)
작가는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에게 ‘지금 여기’란, 지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생각문장을 가리킨다”라고 한다. 당신과 함께 나누고 있는 ‘지금 여기’의 생각문장은 우리 대화의 주 구성요소다. 사랑의 대화는 하나의 사건이다. 사건은 삶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끌고 간다. 당신으로 인해 삶은 지금 이전과 지금 이후로 나뉜다. 당신으로 인해 사랑이라는 가치관은 새롭게 창작된다. 글쓰기처럼 더 나은 생각문장을 고민하고 더 나은 대화를 창작할 것이다. 우리의 대화는 이 책으로 인해 ‘지금 여기’를 새롭게 설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