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결국 이민자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싶은 아름다운 섬’(「이미그레이션」)을 가장 먼저 찾아 나서는. 가장 처음 발견한 그곳에 꼭 맞는 새 언어로 뿌리를 내리고 수십 년 수백 년을 살 듯, 한 계절을 살고 또 다른 ‘섬’을 찾아 나서는 이민자가 아닐까. 시인이 먼저 살다 간 그곳은 비로소 ‘이제 우리가 살 땅’이 된다.
매 순간 ‘집을 잃은 바람’을 좇아야 했던 시인은, 유연하고 첨예한 언어를 가져야 했다. 바람을 낚을 만큼 촘촘하고, 바람을 ‘시’ 속에 붙잡아 놓을 만큼 유연한 언어. 그리하여 ‘어딘가에 가닿고 싶어 하는 눈빛’(「@」)이나 ‘누르면 터질 듯한 적막’(「그러니까 토마토」), ‘병실의 기분’(「병실의 기분」)도 충분히 담아내는 언어를,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가졌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통스럽다. ‘사라지는 것들이 구석구석’(「당신의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고통’들을 겸손하게 수집한다. ‘물음표’를 ‘안과 밖의 모서리’에 풍경처럼 달아놓고. ‘끝이 만져지는 길’ 위에서 세상의 모든 ‘고통’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음을, 지나쳐 달리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런 시인의 언어는 세상의 ‘바닥을 향해 올라가’려는 속성을 가졌다. 시인의 언어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다.
‘잠든 몸을 빈집처럼 뒤집는’(「검정1」) 밤, ‘누군가 툭, 떨어뜨린 울음소리가 찻잔에 붙어’있는 밤, ‘금 간 얼굴을 거미가 쓸어 모은’ 밤, 김성신을 읽기 딱 좋은 밤이다.
- 김중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