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차례 노래의 무대에서 한국사를 만나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대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역사를 소재로 한 긴 노래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사실들은 언제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국사 시간이나 고전문학 시간에 배우는 내용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산물이다. 건국 시조를 알에서 태어난 신비한 인물로 묘사했던 신화들은 〈구지가龜旨歌〉 같은 노래에 담겼고, 골품제 같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 속에서 좌절했던 천재 최치원의 마음은 〈추야우중秋夜雨中〉이라는 시가에 담겨 있다. 고려 백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는 〈시리화沙里花〉에,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가 고향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던 조선인 도공들의 서러움은 〈조선가〉에 담겨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갔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의 비통함은 〈눈물 젖은 두만강〉에,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준 자전거왕 엄복동의 이야기는 노래 〈자전거〉에 담겼다. 6·25 전쟁 때 북으로 끌려간 남편을 그리워했던 부인의 심정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담겼고, 광복 이후 첫 번째 금지곡이 된 〈여수야화〉는 1948년 10월 19일에 발생한 ‘여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고대 건국설화부터 중세를 거쳐 근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다양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가 오롯이 노래에 담겨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흘러간 옛 노래’란 없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야기는 ‘오늘의 노래’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시와 노래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내용을 더 잘 이해하려면 그것들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시와 노래에는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물관이나 책에서 만나온 ‘오래된’ 시대에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일하고 미워하고 투쟁했다. 그 삶을 오롯이 담아낸 게 일국의 역사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듣는 지금의 대중가요를 잘 살펴보면 지금 사회의 분위기, 사람들의 생각, 감정 등도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돌 그룹 BTS가 10대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도 그들의 노래가 젊은 세대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고민과 혼란스러움을 노래 가사에 담아 공감을 끌어내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해준 덕분이다. 노래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느 시대든 있어온 갈등과 격차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어떠한 미래를 꿈꾸었는지 때로 비판하고 때로 격려해준다. 물론 노래 한 곡으로 갑자기 사회 분위기가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내용에 공감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노래 가사가 꼬집은 사회 문제에 공감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등장할 것이다. 이제 독자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노래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