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고장, 살아서도 여주! 죽어서도 여주!
왕비와 명당의 고장 여주에는 ‘세종대왕면’이 있다
우리는 살기 좋은 지역을 말할 때 흔히 “살아서는 여주, 죽어서도 용인”이라는 말한다. 그러나 여주는 땅도 비옥하여 농사도 잘 되며 도자기를 굽는 흙이 좋아 가마터가 많이 있어서 진상 도자기를 많아 만들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능을 예종 때 여주의 현재 자리로 옮겼는데, 이 자리가 천하의 대 명당으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대단한 자리이다. 태조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과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손꼽히는 자리로, 일설에는 세종 같은 성인을 이러한 명당자리로 모셨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수명이 최소 100여 년은 연장되었다는 소위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의 고장이며 정승이나 대신들의 묘도 다수 있다. 또한 명성왕후를 비롯한 조선왕조의 8명의 왕비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김춘석은 ‘550년 여주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고장이 “여주”라는 이름을 얻은 지 553년이 지났습니다. 1469년(예종 1년) 세종의 영릉을 서울 대모산에서 북성산 자락으로 이장하기 전까지는 “여흥”이라 불리었습니다.
5년 전에 『550년 여주 이야기』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2012년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분의 요청에 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근무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여주를 소개한 책자를 군청에서 받아보기를 원하였으나 당시 적당한 책자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2005년 발간한 『여주군사(전 7권, 4,799쪽)』 한 질(帙)을 보내드렸는데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여주를 간략히 소개하는 책이 한 권은 있어야겠다는 생각과 이 책이 여주 시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길 기대하며 책을 냈었습니다. 그런데 첫 출간한 책은 여흥에서 여주로 지역 명칭이 바뀐 후 550년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여주의 위상이 높았던 조선 시대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이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근현대의 주요 사항이나 인물, 특히 여주시 승격에 도와주신 분들을 추가로 알릴 필요가 있어 두 번째 550년 여주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의 대부분을 제공해 준 여주시청 시민소통담당관실 홍보팀 이영숙 주무관과 여주박물관 조원기 학예연구사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이번에 두 번째 출간한 책에 여주 관련 주요 사항이나 인물인데도 게재되지 못하였거나 수록 내용 중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독자 분들의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