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년에 이르는 서울건축을 통사로 엮어,
도시 공간의 변천과 사회문화사를 한눈에 조망케 하는 탁월한 저작
조선의 한양, 대한제국의 한성,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경성, 대한민국의 서울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실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어떤 이에게 서울은 근사한 대도시의 모습으로, 어떤 이에게는 한국전쟁 직후 폐허의 모습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화면 너머로 고풍스러운 궁궐이 넓게 펼쳐진 모습으로 기억된다. 오늘날의 서울은 지난 시대의 면면을 모두 품고 있다. 도시를 거니는 것만으로 고즈넉한 조선시대의 한옥 처마를, 붉은 벽돌로 쌓은 개화기의 서양 고전주의 양식 출입구를, 균일하게 따라 지은 전후의 콘크리트 육면체를, 높다랗게 뻗어 올린 근대기의 고층 빌딩을, 독립 오브제로서 개성을 드러내는 현대기의 건물들을 눈 안에 담을 수 있다. 『서울건축사: 건축으로 읽는 629년의 사회문화사』는 조선의 수도 한양에서부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서울에 남아 있는 문화재와 건축물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천, 서울건축사의 흐름을 통사로 엮어 한눈에 조망케 한다.
서울의 건축 역사는 주요 변화 시점마다 각각의 전환기를 겪으며 다음 단계의 새로운 건축으로 발전했다. 저자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각 시대의 전환기적 상황과 새로운 건축 현상을 ‘전환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여 조선시대에서 개화기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공간으로, 근현대기에서 현대기로 이어지는 전환기를 중심으로 각 시대를 풀어냈다. 1부 ‘조선시대 전통건축 1394~1880’에서는 518년에 이르는 조선시대를 거대한 독립적 역사 단위로 집합화하여 역사성을 부여하였으며, 조선의 도읍지였던 점을 도시건축으로 증명하여 서울의 뿌리에 해당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 2부 ‘근대기 1880~1990’에서는 개화기로 급변하던 1차 전환기와 해방 이전까지의 근대 형성기, 혼란이 가중되던 해방공간에서의 2차 전환기와 경제개발이 두드러졌던 근대 완성기로 각 시기를 구분하여 역사, 사회, 도시건축, 공간 등의 다양한 주제어를 통해 역동적으로 진행된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소개했다. 저자는 그동안 다소 부족하게 다루어졌던 고종의 건축 활동과 일제강점기하의 민족건축에 주목하며, 우리의 역사 정체성과 건축 활동의 주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새로운 해석을 더했다. 근대기 후반에 대해서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에서 시작한 지각 근대화를 이끈 핵심 시대로 보고, 어려운 시대 상황 속에서 완성한 근대 건축이라는 긍정적 측면에 중점을 두면서 국제적 표준 양식이 완성되는 단계, 건축가 개개인의 작가주의가 꽃피는 단계로 나누어 짚어냈다. 3부 ‘현대기 1990~’에서는 근대 완성기에서 본격적인 현대기로 넘어가는 3차 전환기, 도시주의와 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산업사회의 흐름 등을 소개하며 현재 진행 중인 현대기 건축을 다원주의의 관점에서 다소 큼직큼직한 주제로 다루었다. 근대기에 이룬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사회와 건축 모두에서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시대로 넘어가는 분화과정 및 구체적인 결과를 추적하고 해석하며, 분화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시대적 의미를 정의하여 해석할 만한 주제를 추출하여 현대기의 시대성을 정의했다.
시대별 서울을 대표하는 400여 채의 건축물과 450장에 달하는 사진 자료,
20세기 서울 도시건축 기록사진과 QR코드로 읽는 답사용 온라인 지도까지
『서울건축사: 건축으로 읽는 629년의 사회문화사』는 저자가 평생을 함께해온 도시 서울의 시대별 면면을 살피고 분석하여 엮어냈다는 점에서 한 인물이 평생을 경험하여 구성해낸 ‘도시건축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약 2천 채에 달하는 건물을 답사, 취재하여 최종적으로 약 400여 채를 등장 건물로 선별했다. 사대문 내에 자리한 궁궐들과 종묘, 도심 속에서 잠시 쉬어갈 공간이 되어주는 왕릉과 사찰, 고종이 구현해낸 근대 도시공원인 탑골공원, 붉은색 벽돌로 유럽 중세 양식을 선보인 명동성당과 정동교회, 서양 고전주의를 구현해낸 각 대학교의 건물들,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이끈 박스형 육면체 건물들, 근대 기술의 승리를 드러내며 높이 뻗은 삼일빌딩, 주상복합 건물의 원조 격인 세운상가, 대형 원형 공간을 대표하는 장충체육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남산 서울타워, 군사정부의 권위를 과시하듯 큰 규모로 지어진 남산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다양한 특수 구조를 서울건축에 선보인 올림픽공원 내 체육관들, 외부 공간의 길을 내부로 들인 동숭동 문화공간, 도시재생사업으로 재탄생한 선유도공원, 식민 역사를 문화시설로 극복한 서울시립미술관, 구조미학을 드러내는 각종 체육시설과 공공교통시설, 화려한 표피주의를 입은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 곡면 자유 형태가 인상적인 새문안교회, 입체 쌓기가 구현된 공그로트와 테티스, 움직이는 듯한 유동주의 외관의 코오롱 원앤온리타워, 도시의 경관을 공간으로 품은 숭실대학교 조만식기념관과 웨스트민스터홀, 외국 건축가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공공 영역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드러내는 금천구청과 마포구민 체육센터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소개된 건축물들은 629년간 서울의 도시건축을 이끌어왔고 현재 서울이 있게 한 주역들이며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건물, 작품성과 대표성을 띠는 건물이라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450장에 달하는 사진 자료를 수록해 실제 답사하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더했다.
이 외에도 20세기 서울건축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서울 도시건축 기록사진’을 부록으로 구성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높였다. 1900년대 광화문 앞 풍경부터 일제강점기의 경성 시가지, 한국전쟁 직전의 서울 전경,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각종 토목공사 현장, 여의도와 잠실 일대에 개발되었던 아파트 단지까지 서울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냈다. 또한 책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물들의 주소 목록을 함께 수록하였으며, 답사용 온라인 지도를 구성하여 QR코드로 언제든 ‘서울 도시건축 여행’에 나서도록 제안했다. 이 책은 629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서울건축을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천을, 더하여 대한민국의 변천을 하나의 실로 엮어냈다는 점에 특히 의의가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 공간인 서울에서 펼쳐진 건축 풍경이 독자들을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건축과 서울의 역사가 전개되어온 과정, 나아가 한국건축과 한국의 근현대사가 이어져온 과정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의 독자
서울과 서울건축의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관련 분야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