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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에게

걸레에게

  • 청각
  • |
  • 미디어저널
  • |
  • 2022-11-01 출간
  • |
  • 128페이지
  • |
  • 130 X 210mm
  • |
  • ISBN 9791189259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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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청각과 필자는 두어 살 차이로 같은 마을에 살았어도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 청각 스님의 형 중 한 분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모양입니다. 당시의 참전 군인이 대부분 그러하듯 시골에선 좀체 구경하기 힘든 미제 전자 제품(녹음기?)을 가지고 왔었지요. 그때 그걸 구경하러 신작로 가에 있던 그의 집을 방문하여 그 신기한 문명을 접했습니다. 그건 바로 청각과 누이의 자랑거리, 아니 동네의 자랑이 되었을 겁니다. 청각의 바로 위 누님은 필자와 동창입니다.
그 뒤로 풍문으로만 소식을 들었고, 다시 또 오랜 세월이 흘러 서로가 엄청나게 변해버린 모습으로 문인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더군다나 출가한 스님이란 걸 알았을 때 의아한 기분이 들었던 건 청각의 청소년기를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청소년기는 건들건들, 건달스러웠지요. 같은 또래들이 쉬이 접근하지 못할 ‘곤조’(근성)가 있어 남에게 지기 싫어했고 따라서 해병으로의 입대는 그다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전월석이라는 속세의 이름을 홀연히 던지고 청각이라는 법명을 받은 수도승의 길을 걷게 될 줄이야!

가시를 온몸에 휘감고
등 뒤엣것들에 대한
처절한 침묵
-「출가2」 전문

그땐 그랬다
차라리 꿈이었기를
눈물로 흥건해진 마룻바닥이 번들거려
천장 대들보에 그려진 용이 꿈틀거리고
떨어지는 눈물 속에서 학이 날아다니던
한 생을 적시고도 남을 눈물
울컥울컥 토해내며
살아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
이번 생을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매달리던
그리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살아서는 풀지 못할
씨줄 날줄로 얽히고설킨
지긋지긋한 업의 굴레에서
언제쯤이나 벗어날 수 있는 건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 모른다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해서 텅 빈 주머니 속에 자존심만 욱여넣은 채 그저
가슴속에서 일렁일렁 흐르는
변명의 모서리만 조금씩 쥐어뜯으며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장삼 자락에 숨어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견디고 있을 뿐이다
-「출가1」 전문
 
필자는 처음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울컥했습니다. 하 수상한 어린 시절을 공유했기 때문일까요. 직접 듣지는 못했으니 어쩔 수 없었던 출가 당시의 상황과 변(辯)이 어슴푸레하게나마 헤아려졌기 때문일까요. 「출가2」는 그야말로 절창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그 짧은 몇 마디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가시는 비난과 원망, 절망, 무시, 망령, 실망과 같은 부정적 상황으로부터 도피이자 탈출이고 처한 처지이며, 등 뒤엣것은 양연이든 악연이든 그때까지 얽히고설킨 인연들이겠지요. 그것들로부터 돌아서서 등을 보이고는 유구무언입니다. 왜 할 말이 없었을까요. 그들이 뭐라 하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처절이라는 어휘가 대변하고 있습니다. 침묵은 때론 수만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말일 수 있고 그 힘도 엄청납니다.
「출가1」는 좀 더 구체적입니다. 한 생을 적시고도 남을 눈물을 쏟으며,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왔건만, 살아서는 풀지 못할 업(karma, 羯磨)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속세를 떠난 겁니다. 그리고는 장삼 자락에 숨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견디고 있을 뿐. 여기에서 견딤은 앞의 침묵과 닮은꼴입니다. 건들건들 건달스러웠던 청년기는 익어가기 위한 과정이었을까요. 청각의 속엣것은 이렇게 깊어졌습니다.

나를 팽팽하게 옭아매던
포승줄 같은 옷고름을 풀고
물고문하듯 물속에 처박아
질근질근 밟고 비틀어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고 있던
시리고 아린 응어리들
묵은 먼지 털어내듯 탈탈 털어 널다가
뜬금없이 솟구치는 생각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면
삶이 조금 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낡은 승복」 부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행하다 보면 문득문득 치밀어 올라오는 뒤엣것들에 대한 사념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침묵의 덮개를 여는 오래된 질문에 그것들은 소매 끝에서 잠시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그 답을 다음의 시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중생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본 적이 없는
이 범종은
법당 안의 부처님처럼
오늘도 침묵으로 생까고 있다
-「대각암의 대종」 부분
                   
새싹이 돋고 장마가 시작되고
갈바람 불어와 단풍이 들고
하얀 함박눈이 내린다고
꼬박꼬박 알려줘도
침묵하십니다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허한 가슴 때문에
옆구리가 저려 숨쉬기 어렵다
어리광부려도
그저
빙긋이 웃고만 계십니다
-「대각암 부처님」 전문

이 시를 읽고 부처님만 웃는 게 아니라 독자도 웃습니다. ‘생까다’와 ‘생깐다’는 엄연히 다릅니다. 둘 다, 기만 언어이긴 하지만 ‘생까다’가 변명을 포함하여 자기 정당화에 쓰는 반면에 ‘생깐다’는 목적을 지닌 계획된 행위입니다. 그 목적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범종은 부처님처럼 ‘생까고’ 즉 침묵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부르짖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갖은 어리광을 부려도, 그저 빙긋이 웃고만 계십니다. 부처님의 희화(戲畫)이자 물아일체(物我一體)입니다. 이 두 편의 시는 내 정신과 육체 밖에 있는 바깥 사물(事物)과 나,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또는 물질계(物質界)와 정신계(精神界)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상태지요.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고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경지입니다.
걸래,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기행과 파격으로 일관하다 한국의 피카소로까지 추앙받던 중광은 「허튼 소리ㆍ3」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스님 주소가 어디 있습니까?
저- 흘러가는 구름 보고 물어보아라.

스님 죽은 후의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지금 인생을 부지런히 살고 있다.

스님 공부 많이 하시어 중생을 제도해
주셔야지요?
나는 중생을 본 적이 없다.

스님,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국민 각자가 자기 맡은 바 의무와 최선을
다 하는 대로 된다.

불법이 무엇이뇨? 백정이 칼을 들어 소를 잡는 것이라 자문자답했던 ​중광은 이 시에서도 파격입니다. 그의 대답은 범종의 침묵이나 부처님의 미소와 닮았습니다. 청각이 지향하는 바도 이런 게 아닐까요. 중광은 중생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청각식 어법대로 ‘생까고’ 있는 겁니다. 청각도 뒤엣것들에 대해 침묵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해 하고픈 말은 많아도 침묵하고 있다가 비로소 선택한 게 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중광의 시가 노골적이고 도발적이며 파격을 직접 드러냈다면 청각의 시는 내용이 파격일지라도 상징과 은유, 순화된 언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불법이 무엇이뇨? 라고 묻는다면 청각의 대답은 자명합니다. ‘미소로 답하는 가섭(迦葉)’(「백제 목불」)이고, ‘수각에 떨어지는 물소리’(「지옥과 극락」)이며, ‘무녀(巫女)의 어깨 위에서 날아오르는 한 마리 새’(「살풀이」)가 되기도 하고, ‘한 줄기 바람’(「선암사 고매」)이라고 말입니다.

숨 한번 내쉬어도 서려 나오고 스치는 바람에도 살 떨리는 임 때문에 오늘도 내가 삽니다
마음이 흐르는 한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히 머무는 임 하늘과 땅 사이 가득 채우시고도 남을 임이시지만
어느 날은 천 길 낭떠러지 벼랑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빛나는 별이 되는
그저 하염없이 우러러보아야 하는 임 때문에 오늘도 생을 이어 갑니다
-「임」 전문
 
내가 사는 이유가 임 때문입니다. 구곡간장(九曲肝腸)을 절절하게 에이는 토로입니다. 마음이 흐르는 한가운데 고요히 머물지만,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임이며, 그 임 때문에 생을 이어간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랑을 낯간지럽게 말로 할 수 있을까요. 임은 속세의 여인일 수도 있고, 어머니나 누이일 수도 있으며, 부처를 향한 일편단심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라는 이름으로 툭 던져놓고 청각은 뒷짐 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생까고’ 있습니다.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나요? 필자도 말로는 못 합니다. 문학이라는 수단으로, 소설이라는 방법을 통해 사랑도, 낯뜨겁거나 소름 돋는 고백도, 재수 없는 인간도 죽이고 살리고, 현실의 실패도 성공으로 포장하여 실현되지 못하는 내 삶의 가능성을 타진합니다. 다음의 시는 한용운의 「선사(禪師)의 설법(說法)」 일부분입니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사는 부처의 가르침대로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초월하라 말합니다. 사람들의 괴로움은 무엇엔가 집착하기에 생겨나며, 그 집착을 끊어야 비로소 평화로울 수 있다고 설파한 것입니다. 집착 중에서도 쇠사슬만큼 질기디질긴 사랑의 줄을 끊어 버리라고. 그러나 작중 화자인 한용운은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그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합니다. 어떤 게 인간적인가요? 여기에서 사랑이란 연인 사이의 사랑일 수도 있으나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을 포함합니다. 괴로움이란 인연에서 비롯되는 게 물론이지요. 하지만 이 모두를 버릴 때 우리네 삶은 어떻게 되고 말까요? 과연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한용운은 그런 삶을 죽음의 상태라고 얘기한 겁니다. 임이 있기에 생을 이어간다는 청각입니다. 한용운=중광=청각이라는 의외의 공식이 탄생했습니다. 파격의 형태는 다르지만, 공감 가지 않나요?

- "박희주 〈청각 시인론〉 중에서"

목차

시인의 말
-1부 소승 입장에서는 거시기 합디다
대각암 성자 _10
걸레에게 _11
복 많은 보살님 _12
일방통행의 선암사 _14
바쁘신 스님 _16
상주 열방센터 관주im 선교학교 _17
이별의 정의 _18
대각암의 대종 _19
대각암 부처님 _20
전생인연 _21
출가1 _22
출가2 _24
삼보암 매화나무 _25
낡은 승복 _26
기둥 사이 _27
백제 목불 _28
지옥과 극락 _29
보내지 못한 편지 _30
선암사 고매 _32
주의 은혜 _33
살풀이 _34

-2부 황량한 존재의 허접스러움
임 _36
바람 _37
전북 임실군 운암면 쌍암리 _38
그리움1 _40
그리움2 _41
파도1 _42
파도2 _43
바보 _44
빈집 _45
미망인 _46
추억 _47
잊힌 이름 _48
진리와 자유 _50
기억 _51
가벼운 것들의 무게 _52
가을비1 _53
가을비2 _54
비겁함의 극치 _56
가을밤 _57
가을 단상 _58
눈사람 _59
첫눈을 기다리는 여자 _60

-3부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어제와 오늘 그 경계 _62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_63
어제는 _64
하루, 그리고 또 하루 _65
신용 불량자 _66
연말 _67
울릉도 저동항 _68
어느 바닷가 _69
당신의 어깨 _70
고장 난 무릎 _71
할머니의 바구니 _72
코로나19와 마스크 _74
코로나19의 일상 _76
풍경 _77
힘의 논리 _78
쓸쓸한 밥상 _79
세월이 약 _80
추억 _81
해돋이 _82
발우(鉢盂) _83
달맞이꽃 _84
제주 올레길 _85
비 내리는 저수지 _86

-4부 아직 촛불도 끄지 않았으니
서귀포 자구리 해안의 야생화 _88
진주조개 _89
수박 _90
모기 _91
허수아비 _92
별 _93
첫눈 _94
폭설 _96
잡초 _97
저수지 _98
고추 _99
매미 _100
동백 _101
홍매화 _102
코스모스 _103
단풍 _104
낙엽1 _105
낙엽2 _106

-청각 시인론/박희주
황량한 존재의 허접스러움? _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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