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유머니즘』 『돈의 인문학』을 쓴, 사회학자 김찬호의 신작!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다,
외면이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곧 삶이 깃드는 장소다”
『모멸감』 『유머니즘』 『돈의 인문학』 등을 펴내며, 그동안 꾸준히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빚어내는 일상의 문법을 추적해온 사회학자 김찬호의 신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대면 비대면 외면―뉴노멀 시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그것.
2020년 초,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코로나19는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인의 삶을 일거에 뒤바꿔놓았다.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온라인 수업 및 재택근무, 일인용 서비스 상품의 등장 등 3년째 팬데믹이 이어져 오면서 ‘비상’은 ‘일상’이 되고, 이른바 ‘뉴노멀’이 정착되었다. 코로나 종식 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이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이 책 『대면 비대면 외면』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가보지 않은 세계’를 맞이해 그간의 변화상을 폭넓게 조감하면서, 그것이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어떤 경험이었고 그 여파가 무엇인지를 되짚어본다.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상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타인과의 ‘격리’가 역설적으로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연대’와 ‘공생’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웠으며, 온라인 수업 및 회의, 재택근무 등 비대면 세계의 확장은 세계의 얼개를 빠르게 바꾸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그 현실은 사회적 위치나 삶의 정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체감되었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존의 상식을 점검하면서 뉴노멀 시대를 맞아 일상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라는 ‘가보지 않은 세계’는 불안으로 체감되지만, 우리 안에 깃든 의외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길게 지나온 재난의 터널을 돌아보면서 그 여정에서 일어난 배움을 되새겨보기를 권한다.
“3년에 걸친 비상사태는 일상의 속살을 예리하게 드러냈다. 기존의 상식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거기에서 존재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삶은 거대한 그물망으로 존립한다는 것. 생명은 무한한 사슬로 얽혀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의 일부라는 것.” _「에필로그」에서
각자도생으로 치달아온 시대,
무너진 삶을 수습하고 사회를 회복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 『대면 비대면 외면』에서 저자 김찬호는 제목이 말하는바, 비대면 시대를 맞아 새삼스러워진 대면의 본질과 미덕에 주목한다. 얼굴은 사람됨의 깊은 본질을 나타내는 바탕 화면이며, 대면은 오랫동안 인간관계의 기본을 구성했다. 그렇다면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눈을 맞추면서 교감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넓어진 비대면 세계에서 연결은 어떻게 재구조화되고, 사람들 사이의 교류는 어떻게 변용되는가.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맺어져야 하는가. 장기화된 거리두기 속에서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삶이 회복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팬데믹 기간에 실시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돌아본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게 되면서 타인이나 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관심과 돌봄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일상이 음울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양극화가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생겨나는지를 살펴본다.
책의 1부에서는 대면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누군가를 대면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상호작용의 얼개를 규명해본다. 아울러 팬데믹 기간에 의무가 된 마스크 착용이 대면의 경험을 어떻게 바꾸어놓았고, 마스크에 대한 호불호가 동양과 서양에서 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팬데믹에 닥쳐 급속하게 확장되고 다채로워진 비대면 세계를 조감한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인 비대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데, 크게 원격, 무인無人, 가상의 세 측면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비대면 공간이 확장되는 일상을 돌아보면서, 디지털 미디어가 현실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변용시키고 소통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3부에서는 대면의 반대 개념이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라는 전제를 내세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오랫동안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은 ‘대면’을 바탕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급변한 오늘날의 세계에서, ‘대면’과 ‘비대면’은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되고 교차되면서 사회적 연결을 변용시켜가고 있다.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개념만으로 사회적 관계를 아우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글에서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외면’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여 짚어본다.
4부에서는 어떤 대상을 온전히 주시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살펴본다. 그리고 창의성의 핵심 요건이 되는 관찰력이 어떻게 작동하고, 교육과정에서 인지 발달을 촉진하는 고리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확인한다. 응시의 힘이 올곧게 발휘되기 위해서는 주의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에도 정보와 자극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미디어 환경은 그 힘을 분산시킨다. 자신의 관심을 제어함으로써 내면세계의 주인이 되고, 때로는 외부 상황에 끌려다니지 않는 마음의 기술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하는 지성이 요구되고, 그 점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5장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는 길을 모색한다. 우선 외로움이 심화되는 배경에 어떤 사회구조와 심리적 기제가 깔려 있는지를 분석하고, 극도의 고립감이 폭력으로 비화되는 경로를 규명한다. 그러한 상황 진단을 토대로, 마음과 마음의 접점이 어떻게 생성되고 거기에서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아울러 팬데믹을 거치면서 새삼 중요해진 면역력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증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이제 우리의 일상과 마음을 다각적으로 살피면서 관계의 기틀을 점검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위드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든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이하든, 의료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방역의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사회적 면역력을 높이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핵심은, 사람들 사이의 유대다. 마음이 담긴 눈길로 서로가 연결될 때 삶은 단단해진다. 몸으로 함께 있든 따로 있든, 서로를 온전히 맞아들이는 환대의 시공간을 빚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