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멜로드라마 2

멜로드라마 2

  • 오세준
  • |
  • 책펴냄열린시
  • |
  • 2005-10-30 출간
  • |
  • 391페이지
  • |
  • 148 X 210 mm
  • |
  • ISBN 9788987458502
판매가

16,000원

즉시할인가

14,4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4,4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이 책은 멜로드라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19세기의 유명 희곡 네 편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담아야 할 다른 자료들이 더 있었지만, 주어진 지면의 제약 때문에 이번에는 딱 네 편의 희곡만을 싣게 되었다. 원래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서양 멜로드라마의 이해를 통하여 적지 않은 경우 “신파”라는 부당한 용어로 푸대접을 받아온 경향이 있는 한국의 창작 멜로드라마들(아마도 그 대표적인 예는 1930년대 동양극장의 연극들일 것이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발판의 마련을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지면의 여건상, 이 의도의 실현은 후속의 저작을 통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희곡들을 소개하는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희곡들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이 희곡들과 관련된 사실들 몇 가지만을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책의 맨 처음에 실린 작품, 「메타모라(Metamora)」는 존 오거스터스 스톤(John Augustus Stone, 1801〜1834)의 작품으로 1829년에 초연 되었다. 1828년에 미국의 유명한 배우 에드윈 포레스트는 500달러의 상금을 걸고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이 이 나라의 원주민인, 5막으로 된, 최고의 비극”을 모집했는데, 열 네 개의 후보작 중에서 당선된 것이 바로 존 오거스터스 스톤이 쓴「메타모라」이다.
이 작품은 왐파노아그(Wampanoag) 인디언과 관련된 역사적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왐파노아그 인디언은 17세기까지 현재의 매사추세츠와 로드 아일랜드 지역에 살던 민족으로서, 그들과 백인 초기 이주자들의 교류는 추수감사절의 풍속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백인들의 세력이 증가하고 그들과 충돌을 빚게 되면서, 결국 왐파노아그 인디언은 마사소이트의 아들이며, 필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한 추장 메타코멧(Metacomet)의 지휘 하에 백인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왐파노아그 인디언은 상당한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종국에는 패배하였고, 메타코멧은 벤자민 처취가 이끄는 부대에 의해 사살당했다. 1675년부터 1676년까지 벌어진 이 “필립 왕의 전쟁 (King Philip’s War)”의 결과로 3,000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죽었고, 항복한 수백 명의 인디언은 노예로 팔렸다. 그리고 왐파노아그와 나라간세트를 비롯한 여러 개의 부족이 사라졌고, 백인들이 그 땅에서 확고한 지배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에드윈 포레스트는 이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인 “필립 왕”을 그린 메타모라의 배역을 맡았는데, “완전히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진 그의 연기는 “나이아가라 폭포” 혹은 “성난 바다” 같았다고 한다. 후에 포레스트 자신은 이 작품을 경멸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40년간 이 작품을 가지고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가 메타모라를 연기할 때마다 극장은 만원을 이루었고, 특히 필라델피아에서는 1830년부터 1855년의 25년간 연극 시즌에 메타모라가 공연되지 않은 적은 딱 두 번 밖에 없다고 한다.
작가인 존 오거스터스 스톤은 우스꽝스러운 역이나 노인의 역을 주로 맡아 하던 단역배우 출신이었다. 그는 메타모라 말고 다른 작품들도 썼으나 모두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자살로써 생을 마쳤다. 「메타모라」는 일부가 유실되었었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전체가 복원되었다.
이 책에 두 번째로 실린 희곡 「디 악터룬 (The Octoroon)」은 디온 부시콜트 (Dion Boucicault, 1820〜1890)의 작품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디온 부시콜트는 배우와 극장경영자로도 활동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19세기의 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던 극작가 중의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모두 120편이 넘는 희곡을 썼다고 한다.
부시콜트는 1853년부터 1860년까지 미국에서 살았고, 뉴 올리언즈와 워싱턴, 뉴욕에서 극장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그의 주요 작품들은 미국에서도 인기리에 공연되었으며, 외국인이면서도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미국의 사회 문제들을 다루었다. 「디 악터룬」에서 그는 자신의 혈통에 8분의 1의 흑인 피가 섞여 있어서 노예가 되어야 하는 죠이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한 언급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품은 1856년에 출판된 메인 레이드 (Mayne Reid)의 소설 『더 콰드룬 (The Quadroon)』의 줄거리를 빌어 온 것이며, 미국 남북전쟁의 발발 직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859년 12월 5일에 뉴욕의 윈터 가든 극장(the Winter Garden)에서 초연 되었다.
디온 부시콜트는 세 번 결혼했었는데, 그의 두 번째 아내는 유명한 배우이자 극장경영자인 챨스 킨의 양녀이며 여배우인 애그니스 로버트슨이었다. 「디 악터룬」의 초연 당시 부시콜트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그 작품 속에 출연하였다. 흥행주와의 갈등으로 1주일 만에 출연을 중지하게 될 때까지, 여자 주인공 죠이 역으로 그의 아내 애그니스 로버트슨이, 그리고 인디언 와노티 역으로 디온 부시콜트 자신이 출연하였다고 한다.
비록 이 작품이 인종 차별의 문제를 제기하고는 있지만, 그 결말에 가서 결국 죠이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녀가 죽음을 당하고야 말게 되는 것은, 흑인과 백인 간의 결혼까지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이 적었던 영국에서 공연될 때는, 이 작품의 끝부분에서 죠이가 죽지 않고 죠이와 조지의 결합이 시사되는 해피 엔딩으로 개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멜로드라마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결국은 체제 내에서 허용되는 범위로만 한정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스등 아래(Under the Gaslight)」는 어거스틴 데일리 (Augustin Daly, 1838〜1899)의 초기 작품으로서, 1867년 8월 12일에 뉴욕극장(The New York Theatre)에서 초연 되었다. 그 당시 13주라는 장기 흥행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이 작품은 미국 전역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1880년대까지 뉴욕에서 거의 매년 공연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 속에서, 여자 주인공 로라가 도끼로 문을 부수고 나와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열차가 무대를 통과하기 바로 직전에 철로에 묶여 있는 남자를 구해내는 장면은, 당시 미국 관객들에게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데일리는 이 철로 장면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으며, 이 장면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여 법정 소송을 벌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디온 부시콜트는 1868년에 공연된 자신의 「어두워진 후에 (After Dark)」라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런던의 지하철선로 위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게 만들었는데, 데일리는 이런 소재가 자신의 지적 소유물임을 주장하여 이후 26년의 세월에 걸쳐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을 벌였다. 사실, 클라이맥스에서의 아슬아슬한 철로 장면은 데일리 이전의 영국 멜로드라마들에서 이미 등장했던 것이었고, 따라서 철로장면이 그의 고유한 발명품이 아니라는 점을 디온 부시콜트 측은 지적 했다. 결국 데일리는 패소하였는데, 어찌 되었건 이 작품 이후 한동안 미국의 멜로드라마에서는 클라이맥스에 철도 장면이 자주 등장하였고, 그런 장면이 이후 다른 대중적 오락 형식들 속에 (보드빌이나 민스트럴 쇼로부터 심지어 만화에 이르기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재료가 되었다.
데일리는 이 작품의 공연에 공을 들여서 그 당시로서는 평상시의 두 배의 연습기간인 2주간을 연습에 할애했고, 그 결과 이 공연은 그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그에게 돈을 많이 벌어다 주었다. 「가스등 아래」의 성공으로 데일리는 1869년에 자신의 5번가 극장(The Fifth Avenue Theatre)을 지었다.
당대 최고의 흥행주요, 극작가, 연출가, 극장주였던 데일리는, 자신의 공연의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관리한 무대의 독재자였다. 스타 배우를 기용하기 보다는 전망이 밝은 젊은 신인들은 발굴하여 그들을 성장시키고 대중적인 이미지까지 만들어 갔던 그는, 공연연습 동안에도 배우들이 대사를 자신이 지시한 그대로만 읽도록 시키는 등 연출적인 면에 있어서도 철저히 독재적이었다. 그는 배우들의 농담에 웃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여러 가지 금지 조항과 원칙들을 만들어서 단원들이 그것을 어길 시에는 벌금을 물게 했다고 한다.
그는 관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고자 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적으로 각색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공연하였으며, 버나드 쇼나 입센 같은 작가들은 외면하였고, 무대 위에 장대한 볼거리들을 실현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데일리가 사회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가스등 아래」 속에서 그는 당시 뉴욕의 지리와 생활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가 도시의 빈민, 사법제도, 미국의 남북전쟁 참전자들에 대한 대우문제, 여성의 참정권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작품 「몽테 크리스토 백작(Monte Christo)」은 챨스 펙터(Charles Fechter, 1824‐1879)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4년 작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뒤마의 원작 소설에 대해서는 여러 개의 다른 각색 본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이 책에 소개된 챨스 펙터의 버전이다. 챨스 펙터의 작품은 1883년 2월 12일에 뉴욕의 부스극장(The Booth’s Theatre)에서 제임스 오닐(James O’Neill, 1847‐1920) 주연의 「몽테 크리스토(Monte Cristo)」라는 제목으로 초연 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 챨스 펙터보다는 배우인 제임스 오닐과 관련하여 더 많이 이야기되어진다. 극작가 유진 오닐의 아버지인 제임스 오닐은 챨스 펙터의 작품을 사들인 다음, 자기가 약간 고친 후에 에드몽 당테스로 출연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임스 오닐은 스물 두 살의 나이에 지나가는 역할로 처음 무대에 선 이후, 몇 년 간의 지방 극단시절을 거쳐서 시카고의 흥행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그는 여성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곱상한 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 세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극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으로 20대 중반에 이미 미국 전역에 걸쳐 가장 촉망 받는 배우로 성장하였다. 그런 그가 마침내 1883년에 몽테 크리스토라는 역할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경제적으로 그에게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오닐이 연기하는 「몽테 크리스토 백작」은 미국 전역에서 최고의 흥행성과를 거두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몽테 크리스토가 자신의 세 원수들을 차례로 죽일 때 “하나,” “둘,” “셋” 하고 세는 장면은 당시에 너무 인기를 끌어서, 그 장면마다 관객들은 “하나, 둘, 셋” 을 따라 외쳤다고 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오닐은 20년 동안 통산 6천 번이 넘게 몽테 크리스토를 연기했고, 1913년에는 에드몽 당테스로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이러한 성공이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를 꿈꾸던 예술가로서의 그에게는 결국 불운이 되었다. 관객들은 점차 오닐을 몽테 크리스토로만 보길 원했고 그가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하는 것도 용납하지도 않았다. 하나의 역할에 갇혀 버린 오닐은 끝이 없는 공연 여행 생활 속에서 점차 술에 빠지게 되었으며, 말년에는 극작가로 성공을 거듭하는 아들 유진을 보며 결코 실현하지 못한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광대한 상상력으로 쓰여진 뒤마의 위대한 낭만주의 문학작품은, 당시의 보수적인 미국 관객들을 위한 멜로드라마로 각색이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많은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생략이 된 것 이외에도, 다차원적인 등장인물들이 선한 자와 악한 자라는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단순화 되었다. 그리고 원작 속에 나타나는, 정의, 평등, 자유정신을 담은 정치적 이상의 추구와 당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는 두 남녀의 사랑과 그들의 아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무너뜨린 악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축소되고 말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멜로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 한계라고 하겠다.


목차


책머리에

메타모라, 혹은 왐파노아그 족의 최후
존 오거스터스 스톤 작 / 오세준 역

디 악터론, 혹은 루이지아나의 삶
디온 부시콜트 작 / 오세준 역

가스등 아래
어거스틴 데일리 작 / 강수진 역

몽테 크로스토 백작
챨스 펙터 작 / 강수진 역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