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서원의 사회사

서원의 사회사

  • 정순우
  • |
  • 태학사
  • |
  • 2013-06-27 출간
  • |
  • 342페이지
  • |
  • 153 X 225 X 30 mm /635g
  • |
  • ISBN 9788959665907
판매가

20,000원

즉시할인가

18,000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8,00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교육기관, 정치기구, 경제단위, 종교 기능을 아우르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화형식으로서의 서원을 고문서를 통해서 읽어내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를 관학과 사학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분류하고, 양자 사이를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또한 관학인 향교는 국가 주도의 교육기구로, 사학인 서원은 사림들의 독자적인 운영체제가 작동되는 공간으로 도식화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조선교육의 성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서원의 첫 출현은 사실상 훈구세력과 새로운 사림세력의 상호 이해가 합치한 상태에서 나타난 것으로서, 서원이 단순한 사학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공증과 감독을 받는 관학적 요소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서원은 단순히 강학기능만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림공론을 모으는 정치기구, 부세와 군역의 문제를 아우르는 경제단위, 그리고 제향기능과 각종 의례를 집행하는 일종의 종교 기능까지를 포괄하는 매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화형식이었다.

이 책에서는 서원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학교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학교와 교육을 움직이는 그 문화적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서원의 사회사』는 2013년 초에 저자가 펴낸 『서당의 사회사』와 짝을 이루어 한국교육사의 큰 두 궤적을 더듬어 보는 작업이다. 이 책의 첫 출발은 우선 한국의 서원이 어떻게 중국이나 일본의 서원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 조선조 대부분의 서원은 동일한 성리학적 세계관, 좁게는 주자학적 세계관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조선의 서원은 이렇게 주자학적 정통론에 깊이 침잠되어 있었다. 중국만 하더라도 주자를 제향하는 서원에 양명학자, 심지어는 도가적 인물이나 음양가의 인물을 함께 배향한다. 일본서원의 경우에는 그 변용이 더욱 활발하다. 불교 사원에서 주자학을 강론하기도 하고, 주자학과 신도(神道)의 결합을 적극 장려하기도 한다. 개항기에는 서양 의학과 난학(蘭學)을 받아들이는 곳도 나타난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고, 그러한 현상이 만들어 낸 문화적 문법은 어떠하였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교육사적 응답이다.
한국서원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는 제향기능이 강학기능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비대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서원 연구자들도 한국서원의 과도한 제향기능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서원의 제향기능은 서원문화 중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제향의식은 당쟁의 화근이자 유학적 차등의식의 뿌리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제향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각종 제사와 의례는 향촌 사회 내부 성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고 설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 혹은 기호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왜 한국서원은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향공간을 가장 신성시하고, 위차의 선후를 두고 그렇게 치열한 논쟁과 다툼을 전개하였을까?
이 책에서는 이러한 한국서원의 특징이 어떤 정치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시선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정교(政敎) 일치의 문치주의 사회였던 조선사회에서 서원은 그 지배 엘리트를 양성하는 텃밭이었다. 이제 서원을 통해 성리학적 세계관이 어떻게 조선사회에 뿌리내리고, 변용되고, 확산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논의의 흐름을 따라갔다.

제1부에서는 조선조 서원의 출현배경에 관해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였다. 즉, 창설 초기 서원은 사림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운영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소수서원의 경우, 단순한 사학 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공증과 감독을 받는 관학적 요소도 함께 갖추었음을 주목하였다.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울 때 그 모델은 이러한 송대 서원이었다. 이 시기 관변 측에서는 이미 서원을 새로운 통치기구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사회에서의 서원의 출현은 사실상 훈구세력과 새로운 사림세력의 상호 이해가 합치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다. 당시 향교나 성균관 같은 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학교에서 강학기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는 훈구세력이나 사림세력이나 공히 마찬가지였다. 남곤 등의 공신세력들로서는 송대의 제도를 모방하여 유현들에 대한 사묘를 건립하되, 이를 국가가 사후 통제하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남계서원과, 역시 두 번째로 사액을 받았던 임고서원을 통하여 초기 서원의 성격을 살펴보았다. 두 서원은 이미 중국 송대 서원의 특징인 관학과 사학의 절충 형태, 이른바 ‘관학서원(官學書院)’의 형식을 탈피하면서 상당 부분 조선조 서원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한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이들 두 서원의 설립과 사액은 주자에 의해 강조된 또 다른 측면, 즉 사학 고유의 도학적 이념의 전통이 사림세력들에 의해 현실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서원의 일상과 풍경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우선 각각의 서원과 서당은 통문과 회문을 통하여 어떻게 상호 긴밀한 연결망을 구성하고 있었는지를 다루었다. 사림들은 서원을 통해 그들의 존립을 위한 상호보험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하였다. 특히 서원이 불교나 무속과 같은 이른바 이단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하였는지를 논의하였다. 한 예로, 학질이 전국적으로 창궐하여 민심이 흉흉해지자 서원 측에서는 그 원인을 엉뚱하게 인접한 사찰에 돌리고 이를 불교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교묘한 형식으로 불교를 탄압하던 유자들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그들은 절은 음사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백성들의 원망을 풀어 준다는 명목으로 절을 훼철하고자 하였다. 또한 사족들은 서당과 서원이란 상대적으로 관으로부터 특별한 보호와 관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반면 서원은 백성들이 지닌 가중한 부세와 극심한 가난, 이로 인한 고통을 관에 호소하고 민회(民會)를 주도하면서 평민들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보호자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살아갈 방도가 없어 노상에 얼어 죽은 백성들의 참상을 관에 호소하고, 관의 부당한 징수와 이서배들의 농간에 대해 조직적인 민회의 운영을 통하여 저항하였다. 이렇게 서원은 이단적 사유에 대한 탄압과 배타적 특권에 대한 열망이라는 어두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백성의 고통에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선한 모습의 두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원의 영향력도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급격하게 퇴조하고 있었음을 도산서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제2부에서는 고문서를 통해 조선조의 서원교육과 사회변동이 과연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곁들여 평민층에 대한 국가의 교화권 행사와 향교교생의 신분적 특성에 관해서도 논의를 진전하여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종래 교화의 객체로 인식되던 평민층이 교육기관에 차츰 편입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각각 무반(武班)과 서족 출신으로서 서원의 주향자가 된 사례를 분석하고, 이 서원들이 촌락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는지를 장산서원(章山書院)과 용산서원(龍山書院)을 통해 검토해 보았다. 이 장에서는 또한 서원이나 향교가 자신들과 경제적, 신분적 관련이 없는 일반 평민들을 어떻게 사역하거나 차역(差役)하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서원에서의 역역(力役) 동원방식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충렬서원의 경우에는 17세기 후반기부터 이미 요역제에서 고립제(雇立制)로 넘어가는 전환기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지니고 있었던 충렬서원(忠烈書院)에서조차 백성들에 대한 동원에서 수당을 주고 역부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변화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3부에서는 학교의 제향공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모색해 보았다. 서원과 향교는 대체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공간이 양분되어 있다. 강학공간이 다수에게 개방된 열린 공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제향공간은 일정한 의례(儀禮)와 절차 속에서만 참례의 자격이 획득되는 닫힌 공간으로 기능한다. 제향과 강학은 대대(待對)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학교의 두 요소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제3부에서는 사족들이 그들의 사회적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서원의 제의기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었는가를 안의(安義) 지역에 세거하였던 초계정씨(草溪鄭氏) 가문의 역천서원(?川書院) 향사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또한 조선후기 학교의 영건(營建) 의례가 교육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영건일기』에는 개기고사(開基告祀)에서부터 마지막 봉안례(奉安禮)에 이르기까지 진행되는 각종의 공역(工役)과 의례절차가 담겨 있어 다양한 측면에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 예를 도산서원의 중건일기를 통해 살펴보았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고문서로 본 서원의 역사

제1장 서원의 탄생
1. 소수서원의 창설 과정과 그 성격
2. 『심도』를 통해서 본 주세붕의 서원관
3. 남계서원의 사액과 그 성격

제2장 서원의 일상, 서원의 풍경
1. 서당, 서원의 일상과 풍경
2. 병산서원의 일상과 재정 운영
3. 서원의 건립과 문중 연대
4. 고성 지역 한 서재훈장의 농촌생활

제2부 고문서를 통해서 본 교육과 사회변동

제3장 신분과 교육
1. 국가와 교화
2. 영남 지역 교생의 신분적 특성

제4장 신분제의 갈등과 서원
1. 신분제의 갈등과 경주 장산서원
2. 서원의 역할 변화와 경주 용산서원

제5장 조선 후기 양사재의 성격과 교육활동
1. 양사재의 성격문제
2. 양사재와 양인층의 동향
3. 양사재의 거접의식과 교육활동

제6장 서원·향교 운영과 대민지배방식
1. 16세기 서원·향교와 촌민의 역역
2. 17~18세기 서원과 촌민의 역역

제3부 학교의 제향공간과 교육문화

제7장 서원의 향사와 의례 문화
1. 서원 향사와 위계적 질서
2. 역천서원의 향사의례와 향권
3. 모리재의 의례와 정치권력

제8장 조선 후기 학교의 영건 의례와 그 의미
1. 서원의 영건 과정과 의례
2. 향교의 영건 과정과 의례

결어

참고문헌
찾아보기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