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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노재욱
  • |
  • 자유문고
  • |
  • 2003-06-30 출간
  • |
  • 252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7030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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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개 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정처 없이 노닐며 온 천하의 그 무엇에도 속박되는 것 없이 절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소요유에서부터 제물론, 응제왕 편 등. 나비가 장주인가? 장주가 나비인가? 하는 장주(壯周)의 해학이 깃든 책이다.

“일체(一切)의 만물을 그 자연성에서 긍정하고 모든 인간적인 작위를 버리는 곳에 참다운 평화의 사회가 건설되며 일체 만물이 절대자(絶對者)를 본받아 그가 체득(體得)한 도에 포용되고 감화되어 모든 인간이 도와 일체가 될 때 참 자유의 세계가 실현된다.” (본문 내용 중에서)


서문: 장자(莊子)란 어떤 책인가?

장자는 중국 고대(古代)의 사상문헌(思想文獻)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을 주창하고 해탈(解脫)의 중국적 사고를 논리 정연하게 갖춘 책이다.

이 『장자(莊子)』라는 저서를 남긴 장자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장자의 이름은 주(周)요, 자(子)는 중국에서 흔히 쓰는 존칭이며 장주(莊周)의 출생이나 사망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기록이 그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
이 『사기』의 장주열전에 양혜왕(梁惠王: 서기전 370~319년 재위)이나, 제선왕(齊宣王: 서기전 319~301년 재위)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서기전 4세기 중엽의 인물이라는, 연대가 불확실한 기록만 남아있다.

현재 여러 학자들은 이 장자(莊子)에 출현하는 많은 역사적 인물의 연대(年代)에서 고증하여 ‘장주(莊周)’의 생몰연대를 밝히고자 하지만 결국은 설(說)에 그칠 뿐 정확한 결론은 얻지 못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노장신한열전(老莊申韓列傳) 등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설(說)이 유력하다고 볼 수 있겠다.
장주와 가장 밀접한 교섭을 가지고 양나라 혜왕(서기전 370~319재위)과 양왕(서기전 318~296년 재위), 2대에 걸쳐 대신(大臣)의 지위에 올라 벼슬한 혜시(惠施)가 그 지위를 내놓고 초나라(楚國)로 쫓겨난 연대가 서기전 306년, 양나라 양왕 13년이었다.
장주가 혜시의 사후에도 살아 있었다는 것은, 『장자』 잡편의 서무귀에 장주가 혜시의 묘를 찾아 그의 죽음을 추도(追悼)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회남자(淮南子)』의 수무훈(脩務訓)에는 혜시의 사후에 장주가 호적수(好敵手)를 잃고 침묵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혜시(惠施)의 죽음을 그가 초나라로 쫓겨난 이후 10년 안팎으로 보면 장주가 서기전 300년경에 이 세상에 살아 있었음이 확실하다 하겠다. 그래서 장주의 탄생을 서기전 370년경(양나라 혜왕의 초기)으로 본 현대 학자 마서륜(馬敍倫)의 고증에 따르면, 요컨대 장주(莊周)는 서기전 370년경부터 서기전 300년경까지 약 70여년의 생애를 이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장자의 죽음을 서기전 300년경으로 본다면 같은 시기에 여러 나라를 유세(遊說)하며 활약한 맹자(孟子)와의 관계가 문제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교제에 대하여 맹자(孟子)라는 책에도 장자(莊子) 가운데도 서로의 기사(記事)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하여 여러 학자가 온갖 억측을 낳고 있으나 아마 당시에 맹자에 있어 장자의 존재는 그렇게 경계할 만한 사상적인 적대성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장자 역시 맹자의 존재를 공자(孔子)만큼 크게 관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자가 살았던 서기전 4세기 당시의 중국은 어떠한 시대였던가? 그것은 고대 중국 역사에 있어 전국시대(戰國時代)라 부른 때이다. 이때는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피비린내 나는 시대였다. 이러한 불안과 절망만이 충만한 시대에 태어난 그의 철학은 불안과 절망을 초월하고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장주의 출생지에 관하여는 사기에 몽(蒙)지방 사람으로 쓰여 있다. 몽(蒙)은 마서륜(馬敍倫)의 고증에도 밝혔듯이 송(宋)나라에 속하는 땅(지금은 하남성 귀덕부 상구현 부근)이었다.
장주가 송나라 사람이란 사실은 그의 생활이나 사상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송나라는 주나라에게 패망한 은(殷)나라 민족이 살던 땅이다. 서기전 12세기경 서북방으로부터 황하(黃河)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온 주나라 민족(周民族)은, 지금의 하남성 동북부에 도읍한 은(殷)민족을 패망시켰고, 그 망국(亡國)의 민중들은 주(周)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주나라의 통치를 받으며 은나라의 가계를 이어온 것이다. 피정복자(被征服者)로서 그들의 생활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것으로 당연히 예상된다(그들의 운명에 관하여는 『춘추좌씨전이』나 『서경』 등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정복자의 비웃음이나 멸시에도 불구하고 송인(宋人)들에게는 정복자들이 갖지 못한 오래된 문화와 전통이 있었다.

로마에 정복당한 희랍인이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로마인을 지도했지만, 북구(北歐)의 바바리안에게 유린당한 로마인들은 그들을 역으로 자신들의 문화 속으로 동화(同化)시킨 것처럼 송나라 사람들도 역시 그 오랜 역사로 문화는 정복자보다 우월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정복자인 주나라 민족이 멀지 않아 독자적 문화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송나라를 중심으로 한 오래된 문화와 제(齊) 노(魯)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신문화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있어서 두 문화권으로 대립했다. 공자나 맹자가 후자의 문화권에서 나왔고 노자와 장자는 전자의 문화권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후자에는 인간의 힘에 대한 확신과 기대가 있었고 빛나는 이상(理想)과 그 이상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현실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에는 인간의 무력(無力)과 이상의 허무함에 대한 속절없는 응시(凝視)가 있을 뿐이었다. 역사의 좌절과 사람의 세상이 험난(險難)함에 대한 비참한 반추(反芻)만이 있었고, 거기에는 ‘어두운 골짜기’에 머뭇거리는 구슬픈 통곡과 닫힌 울분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그대로 이상(理想)과 연결되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멀리 돌고, 뒤로 돌고, 기울고, 다시 반복하는 곡선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행복이란 뒤집어 놓은 불행(不幸)이며 즐거움이란 뒤집힌 슬픔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벌써 인간이 잃는 것[喪] 없이는 얻을[得]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망한다[亡]는 생각 없이는 있는 것[存]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의 역사를 포함한 자연의 유구(悠久)한 것을 동경했다.
앞으로 나아가는[進] 떳떳한 것보다는 뒤로 물러나는[退] 강인한 것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부정(否定)과 역설(逆說)의 철학이 거기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장자가 살아온 배경에는 이러한 송(宋)의 전통문화가 있었다. 그의 철학은 이러한 어두운 골짜기의 예지(叡智)를 그 정신적인 풍토로 하여 육성된 것이라 생각된다.
또 장자의 생활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전하여져 온 바 없다. 역시 그는 그답게 역사에의 ‘혼돈화(渾沌化)’가 아니겠는가?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장자』의 외편 잡편의 곳곳에 단편적으로나마 그의 생활에 대한 몇 가지 일화(逸話)가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여 요컨대 장자의 세속적인 생활은 그 자신이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오독(汚瀆) 속의 인생’이었다.
그는 그 오독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노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기의 빈궁을 희롱하고 자기의 오욕과 노닐며 자기의 육친의 죽음과도 홀연히 유희하며 자기의 인생과 소요(逍遙)하는 방법을 장주는 알고 있었다. 그의 생활은 그의 유희(遊戱)였다. 그 유희는 그가 찌들대로 찌든 인생의 밑바닥에서 찾아낸 그의 해탈(解脫)에 지나지 않았다. 장주의 초월은 그의 ‘오독 속의 인생’에 지탱되어 있는 것이다.

장자에서 해탈의 논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도(道) 곧 실재(實在)에의 혼돈화(渾沌化)라 할 수 있겠다. 장자에서 도라고 하는 실재란 ‘살아 있는 혼돈’이며 모든 대립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자기의 내면으로 포섭하는 크나큰 무질서다. 또한 인간의 개념적 인식(槪念的認識)을 초월하여 체험(體驗) 이외에는 다시없는 생생발랄(生生潑剌)한 우주의 기능 그것이었다. 그 생생한 혼돈과 그대로 하나가 되어 살아 있는 혼돈을 살아 있는 혼돈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장자의 해탈이었다.
곧 장자는 인간이 그 눈으로 보고 그 귀로 듣는 존재하는 세계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한결 같은 것(카오스)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존재성을 무너뜨리고 인식주관(認識主觀)의 자아(自我)마저 그 안에 포함시켜 세계의 진실태(眞實態)를 한결 같은 비존재(非存在=無)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알음알이[心知]의 분별에 따라, 본래 하나인 도(道) 곧 실재를, 시(是)와 비(非)로 나누고 미(美)와 추(醜)로 갈라놓았으며 크고[大] 작음[小]으로 구분할 뿐 아니라 인간과 짐승(禽獸)으로 분별하여 놓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시(是)가 비(非)일 수도 있고 미(美)가 추(醜)일 수도 있으며 대(大)가 소(小)가 되고 꿈(夢) 또한 현실로 될 수 있으며 인간이 짐승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또 마음의 알음알이로 분별함에 따라 모든 사물을 원인과 결과의 계열(系列)에 질서를 붙여 현재를 과거에, 미래를 현재에, 현상(現象)을 본체에, 인간을 신(神)에게, 인과(因果)로 결부시키지만 실재의 세계에서 만상(萬象)은 자연히 생겨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그 어떠한 것으로도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 본다. 본래 하나인 실재의 진상(眞相)을 시비ㆍ미추ㆍ대소 등으로 분별하는 곳에서 인간의 비극인 탐닉(貪溺)과 망집(妄執)이 시작되는 것이다.

본래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만상을 인과적 사유(因果的思惟)로 하여금 천착(穿鑿)시키는 데서 주어진 현재를 주어진 현재로 솔직하게 받아들여 살아가는 인간의 정의한 정신도 곧 질식되어진다. 때문에 장자적 절대자는 인간의 심지(心知)의 분별을 실재인 하나에 혼돈화하였다. 자기를 실재인 하나에 혼돈화시킨 무심망아(無心忘我)의 경지에 놓았을 때 장자적 절대자의 해탈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탐닉과 망집이 여기에서 해방되며, 인간의 모든 슬픔과 두려움이 여기에서 초극(超克)된다.
장자는 오직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만상의 자연에 자기를 빈 마음으로 내놓고 자기에게 주어진 현재를 자기의 모든 것으로서 긍정하였다. 주어진 현재가 삶(生)이면 그 삶에 흠쾌(欽快)히 살아가고, 주어진 현재가 죽음[死]이라면 그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어진 현재가 꿈이면 그 꿈속에서 오직 즐겁게, 주어진 현재가 새[鳥]라면 그 날개로 하늘 높이 비상(飛翔)한다.
죽음과 삶과 꿈과 새가 주어진 필연이라도 그 필연을 좋은 것으로 긍정하는 자기는 벌써 단순한 필연은 아닌 것이다.
일체를 도(道)로 긍정하는 곳에 일체의 자유가 있다. 장자에게는 자기의 혼돈화란 일체를 도라는 진실재(眞實在)로 긍정하는 것이다. 장자적 절대자의 해탈이란 일체를 진실재인 자연으로 긍정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인류는 스스로 문명이라고 자랑하는 것들에 파묻혀 치매화되고 있다.
인류의 끊임없는 지적 노력이 쌓아올린 현대 사회의 거대한 메커니즘(Mechanism)과 싫증낼 줄 모르는 호기심이 만들어낸 광기어린 선정주의(煽情主義=Sensationalism)나 점잖은 체하는 가치에의 도취가 불러일으키는 신경질적인 자기주장 등에 준동하는 것은 단지 잃어버린 자기를 광란케 할 뿐이다. 즉 ‘문명의 노예’인 것이다. 장자는 육체만이 노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도 또한 노예가 있음을 말했다. 문명의 노예란 정신을 고역(苦役)의 쇠사슬에 묶어놓는 것을 말한다. 현대인은 벌써 단순한 위대함과 소박한 강인함을 잊은 지 오래다.
일체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연을 상실하고 말았다. 현대인의 이 치매화야말로 장자가 말하는 ‘약상(弱喪)’이 아니겠는가? 장자야말로 현대인에게 ‘고향에의 복귀(復歸)’이며 인간이 본래의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장주(莊周)의 장자(莊子)와 노담(老聃)의 노자(老子)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자. 장자는 흔히 노자와 결부시켜 ‘노장(老長)’이라 불린다.
사마천(司馬遷)도 장자의 사상을 그 본질은 요컨대 노자의 사상에 귀착된다고 평하였다<莊周列傳>. 여기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장자의 사상이 그 성립적 기반과 사상적 입장에 있어 일반적으로는 노자와 같은 계열에 속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노자와 다르다는 사실이다.
장자와 노자의 사상적 상위점에 대하여는 『노자도덕경』(자유문고 발행)을 정독하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장자와 노자는 춘추전국의 거의 같은 시대(그 차이는 약 100년 정도)와 송문화권의 거의 같은 지역(노자의 출생지는 지금의 하남성 귀덕부 녹읍현의 동쪽이며, 장자의 출생지는 상구현 부근으로 그 거리는 불과 60km라 전함)을 배경으로 하였다. 노자의 사상은 현세적 삶을 문제로 삼은데 비하여 장자는 보다 많은 절대적 삶을 문제 삼았다.
『장자(莊子)』의 원전이 현재와 같은 체제(내편 7, 외편 15, 잡편11의 33편)로 정리된 것은 서기 4세기 서진(西晋)의 곽상(郭象)에서 시작되었다.
이 곽상 이전의 장자 원전은 어떠하였는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서기 1세기경 후한(後漢)초에는 52편이었다고 『한서예문지(漢書藝文誌)』에 기록되어 있다.
서기전 1세기 곧 장주의 사후 약 200년 뒤에 쓰인 사마천의 『사기』에는 10여만 언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사마천이 본 『장자』 원전의 편명(篇名)으로 어부(漁夫) 도척 외루허(畏累虛) 등이 거명된다.
이 가운데 외루허편은 현재의 원전에는 없고 어부 도척 등은 후인들의 가탁(假託)이었음이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쓴 장자사당기(莊子祠堂記)에 논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33편 본 장자의 글자 수는 속고일총서본(續古逸叢書本)에서 계산하면 6만5천2백13자이다.
한대(漢代) 초기에 있어 『장자』의 원전은 원본장자(原本莊子)와는 상이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본장자는 어떠한 것인가?
곽상이 그 이전의 장자원본을 산정(刪定)하여 현재와 같은 것으로 만든 사정에 대하여는 그의 장자주발어(莊子注跋語)나 당(唐)의 육덕명(陸德明)이 쓴 경전석문서록(經典釋文敍錄)에 보이고 있다. 그는 한대의 장자원전이 극히 잡다한 것으로 그 10분의 3 정도는 도저히 채택할 수 없는 비속한 문장으로 모두 삭제하여 33편으로 엮었다. 아마 그가 깎아 내버린 것은 외편과 잡편의 대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당시 곧 위ㆍ진시대(魏晋時代: 3~5세기)는 『장자』가 가장 많이 읽혔고 연구 또한 활발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산정본 외에도 몇 가지 산정본이 만들어졌는데[경전석문서록에는 최선의 27편본, 향수(向秀)의 26편본, 이이의 30편본 등] 이것들은 모두 망실되어 없어지고 현재 전하는 것은 오직 곽상의 33편본이 있을 뿐이다.
또 장자의 주석서로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제일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진(晋)나라 곽상의 장자주(莊子注)일 것이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위ㆍ진시대는 노장사상이 가장 숭상되던 때로서 몇 가지의 산정본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주석서도 많이 쓰였으나, 곽상의 장자주가 여러 주석서를 집대성한 것으로 사상사상(思想史上)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의 해석은 반드시 장자의 본문에도 충실하였지만, 그의 뛰어난 철학적 예지는 훌륭하게 장자의 사상을 체계적ㆍ통일적으로 파악하여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는 예민함이 있었다.
이 곽상 이후 당(唐)시대에는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는 도교(道敎)를 국교로 함과 동시에 장자 또한 ‘남화진인(南華眞人)’이란 시호를 당시의 임금 현종(玄宗: 742년)이 내려서 장자도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불리었고 많은 지식층에서 애독하게 되었다.
송나라 시대에도 장자는 숭상되었으며 주자학파(朱子學派)의 학자들도 ‘장자’의 학도임을 시사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적벽부(赤壁賦) 초연대기 등으로 유명한 소동파, 장주론(莊周論)의 작자 왕안석(王安石), 여관문진장자의(呂觀文進莊子義)의 저자 여혜경(呂惠卿) 등이 있었고, 현대까지 전하여지는 주석서로는 임희일(林希逸)의 장자구의(莊子口義)가 유명하다.

명(明)나라 시대에 들어와 육서성(陸西星)의 장자부묵(莊子副墨)과 초횡(焦횡)의 장자익(莊子翼)이 유명하다.
청나라 시대에는 임운명(林雲銘)의 장자인(莊子因)과 육수지(陸樹芝)의 장자설(莊子雪), 진수창(陳壽昌)의 장자정의(莊子正義), 왕선겸(王先謙)의 장자집해(莊子集解), 곽경번(郭慶蕃)의 장자집석(莊子集釋) 등 훌륭한 고증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근대에는 마서륜(馬敍倫)의 장자의증(莊子義證)이 돋보여 이 방면의 연구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왕숙민(王叔岷)의 장자교석(莊子校釋)과 유문전(劉文典)의 장자보정(莊子補正)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주로 속고일총서본의 송간(宋刊)인 남화진경(南華眞經)을 저본으로 하고 그 밖의 여러 책을 참조하였다.


목차


장자(莊子)란 어떤 책인가? /3

제1편 소요유(逍遙遊) /19
1. 모든 사람이 그대를 따르는 것이 이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21
2. 두더지가 강물을 마신다 해도 주린 배를 채우는데 지나지 않아 /29
3. 크기만 하고 합당하지 않으며 갈 줄만 알지 돌아올 줄 모른다 /32
4.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자니 평평하고 얕아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36
5. 큰일은 능히 할 수 있을지라도 한 마리의 쥐는 잡지 못한다 /39

제2편 제물론(齊物論) /43
1.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저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45
2. 위대한 도(道)는 표현할 수 없으며 위대한 이론은 말로써 나타낼 수 없다 /71
3. 모장(毛?)ㆍ여희(麗姬) 같은 미인이라도 물고기는 이것을 보면 깊이 숨어버린다 /76
4. 꿈속의 현실에서 헤맬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알지 못한다 /80
5. 나에게는 의지하는 것이 있다. 뱀 껍질이나 매미 날개를 의지하는가? /88
6. 장주(莊周)가 나비냐 나비가 장주(莊周)냐 /90

제3편 양생주(養生主) / 93
1.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知)에는 끝이 없다 /95
2. 백정의 말을 듣고 삶을 기르는 도를 깨닫게 되었다 /97
3. 새장에 갇혀 있는 새는 왜 항상 마음이 즐겁지 않은가? /100
4. 편안한 때일수록 순리를 따르면 슬픔이나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다 /102

제4편 인간세(人間世) /107
1. 귀와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지혜는 밖으로 향하게 한다 /109
2. 말은 풍파와 같아 움직이기 쉽고 행동은 이해득실이 있어 몸을 위태롭게 한다 /
3. 그 굶주리고 배부른 때를 알고 그 마음의 성냄에 통달하여라 /132
4. 쓸모없기를 바라던 것이 나에게 큰 쓸모가 있었다 /137
5. 재목이 되지 못하므로 이러게 잘 자랄 수 있었다 /143
6. 치질이 있는 자는 제물로 쓰기에 적당치 않아 강물에 던지지 않는다 /144
7. 온전치 못한 육체라도 천수를 다하거늘 하물며 덕이 온전하지 못함에 있어서랴.
8. 그대가 사는 지금의 이 세상은 겨우 형벌이나 면하면 고작이지! /148
9. 산의 나무는 베이기 위하여 자라고 등불은 스스로를 불태워 밝힌다 /150

제5편 덕충부(德充符) /153
1. 사물의 변화를 꿰뚫고 있으면 천명에 맡겨 그 도의 근본을 지킬 뿐 /155
2. 거울이 맑으면 먼지나 때가 없으면 먼지나 때가 끼면 거울은 맑지 않다 /161
3. 사람이 내린 형벌은 풀 수 있어도 하늘이 내린 형벌을 어찌 벗길 수 있는가? /165
4. 덕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면 만물은 그로부터 떠날 수 없다 /168
5. 내면의 덕이 뛰어나면 외형 따위는 잊게 되는 것이다 /176
6. 도가 사람에게 그 용모를 부여하고 이법인 하늘이 사람의 형체를 부여했다 /179

제6편 대종사(大宗師) /183
1. 세상에 삶을 기뻐할 줄도 모르고 죽음을 또한 싫어할 줄도 모른다 /185
2. 죽여도 죽지 아니하고 살아도 살지 아니한 것과 같다 /201
3. 얻은 것은 이 시대이며 잃은 것은 순리일 따름이다 /208
4. 하늘이 보기에는 소인배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군자이다 /213
5. 태어난 까닭도 죽는 까닭도 모르며 앞을 모르고 어떻게 뒤를 알겠는가? /219
6. 인의(仁義)로 얼굴에 묵형을 새겼고 시비로써 네 코를 베어 놓았다 /223
7. 하나면 좋아하는 것이 없고 화(和)하면 떳떳한 것이 없다 /226
8. 이 꼴로 만든 것이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하늘인가? 사람인가? /229

제7편 응제왕(應帝王) /231
1. 말이라 생각하면 말이 되고 소라고 생각하면 소가 된다 /233
2. 다스림은 밖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요, 안을 바르게 한 뒤에 행하는 것이다 /235
3. 만물의 자연스러움에 따르면 사사로운 것은 끼어들지 않는다 /237
4. 교화는 만물에 미치더라도 민중은 그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239
5. 암컷이 많아도 수컷이 없으면 어찌 알이 있을 수 있겠는가? /241
6. 보내지 않고 맞아들이지 않으며 응(應)하지만 감추지는 않는다 /247
7.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째 되는 날 죽었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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