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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도덕경

노자도덕경

  • 노재욱
  • |
  • 자유문고
  • |
  • 2005-05-31 출간
  • |
  • 280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7030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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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개 요

난세를 쉽게 헤쳐 나가는 생존철학. ‘인생은 속절없고 천지는 유구하다. 천지가 유구한 것은 무위자연의 도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귀중한 것은 자기의 생명이다.’ 자연에 귀의할 것을 강조한 노자가 속세를 떠나며 관윤(關尹: 관문지기)에게 전해 주었던 말들이다.
※ 원문 자구 색인 수록


서문: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란 어떤 책인가?

노자(老子)는 지금부터 2,500년 전 주(周)나라 말기의 사람으로 도덕경(道德經)의 저자이며 위대한 철인(哲人)의 한 사람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은 『장자(莊子)』 『순자(荀子)』 『여씨춘추(呂氏春秋)』 『한비자(韓非子)』 『전국책(戰國策)』 등 전국시대부터 한(漢)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서로 일치하는 점이 아주 적다.

노자는 초(楚)나라의 고현(苦縣) 여향(呂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이다. 성(姓)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시호(諡號)는 담(聃), 자(字)는 백양(伯陽)이라 하고 주(周)나라 수장실(守藏室: 왕성 도서관)의 사(史: 지금의 도서관 사서직)라는 말단 관리에 봉직하였다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기록되어 있다. 또 『논어(論語)』에는 공자(孔子)가 노자를 방문하여 예절을 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것은 노자가 공자보다 연장자라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아무튼 노자라는 인물은 신비한 존재로서 그 당시 주나라 왕실의 쇠퇴함을 예견하여 관직을 사임하고 떠나던 중 관소(關所)를 지나게 되었다. 이때 관소의 영(令: 수문장)이었던 윤희(尹喜)의 도(道)를 구하는 간청으로 도덕(道德: 상ㆍ하편)의 5천언(五千言)을 설파하여 전해진 것이 오늘날의 『노자도덕경』으로 남아 있을 뿐이요, 그 후의 노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공자와 같은 시대의 초(楚)나라 은자(隱者)인 노래자(老萊子)나, 주나라 태사(太史)로서 공자의 사후 129년이란 시점에서 진(秦)나라와 주(周)나라의 관계를 예언한 담(聃)이라는 사람이 곧 노자라는 설도 있고, 이를 부정하는 것도 있어 확실치 않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노자전(老子傳)에는 “노자는 숨은 군자였다. 노자의 아들 이름은 종(宗)이라 하였고, 종은 위(魏)나라 장수로 단간(段干)에 봉해졌다. 종의 아들은 주(注)이며, 그의 현손(玄孫)은 이름을 가(假)라고 하였다. 가는 한(漢)나라 효문제(孝文帝) 밑에서 벼슬을 지냈고, 가의 아들 해(解)는 교서왕(膠西王) 묘(卯)의 태부(太傅: 보좌역)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자의 향년(享年: 나이)에 대해서는 160세, 또는 200세, 또는 800세 등 여러 설이 있어 어떤 것이 정확한지는 알 길이 없으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진리를 터득한 도인(道人)으로 보통 사람의 수명과는 다르다고 인정할 수 있겠다.

이것으로 볼 때 후세의 노자 연구가들은 『노자』라는 저서가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상 그 저자가 실존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노자도덕경』 자체에 공자 이후, 전국시대가 아니면 쓰이지 않던 어구를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많은 의심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노자가 전설로서의 실재(實在)를 의심받게 됨과 동시에 『도덕경』의 저자를 공자 이후의 사람으로 보는 설이 대두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또 계보(系譜)에 따른 세대수(世代數)의 계산이나 노자를 태사 담(太史聃)과 동일 인물로 보는 존재설 등으로 살펴보면 그 저자는 맹자(孟子) 전후(기원전 4세기) 시대의 인물로 보는 견해가 비교적 많은 것 같다.

현존하는 『도덕경』의 문장은 81문장(八十一文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리한 경구(警句)의 단문집(短文集)이란 성격을 띠고 있다. 이 81장의 타당성 여부도 문제가 없지 않으나 여하간 이러한 짧은 문장의 구성 요소 가운데는 비교적 긴 기간을 거쳐 세간에 널리 통용되어 왔음직한 속담(俗談), 격언(格言), 명구(名句)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는 원래 특정의 저자가 없는 것으로, 여러 인물에 의해 인용 편집된 단문의 집대성(集大成)이라고 보인다. 『도덕경』의 어구는 역설적 표현으로 충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 작품은 역설의 대상이 되어 온 제사상(諸思想)보다는 뒤에 생겨났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역설의 대상이 된 여러 사상을 살펴보면 묵가(墨家)의 상현(尙賢), 맹자(孟子)의 인의(仁義), 순자(荀子)의 예(禮), 병가(兵家)의 기책(奇策), 법가(法家)의 법술(法術), 음양가(陰陽家)의 술수(術數) 등이 대비되어 있어 널리 전국시대 제학파(諸學派)의 모든 시대에 걸쳐 다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만일 전후(前後) 200년에 걸쳐 전개된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하나만의 입장에 서서 역설적 표현으로써 다른 학파를 비판하면서 널리 사람들에게 전해져 온 속담, 격언, 명구 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기 입장을 주장한 것이었다면, 그리하여 이 입장에 섰던 여러 사람 사이에서 창출된 경구(警句)에 충만한 단문이 시대의 진보와 함께 점점 집적(集積)과 정리를 반복하여 애호가들 사이에 전송(傳誦)되어 왔다면, 『도덕경』과 같은 소재(素材)와 형태와 성격을 가진 특이한 저서의 출현은 극히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여러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 언어 문자의 집합이 노자라는 이름의 한 초인적인 사람의 저서라는 형태로 모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건대 그것은 진한(秦漢)시대에 도가(道家)라는 일대 학파가 생성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 할 즈음, 그 학파는 안팎으로 그 개조(開祖)와 경전(經典)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그 시대적 요청을 반영하여 형성된 개조의 전설적 시도가 바로 『사기(史記)』의 노자전(老子傳)이며, 그 경전이 『노자도덕경』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기원전 2세기의 문헌인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ㆍ해로(解老) 2편과 『회남자(淮南子)』의 도응훈(道應訓) 등에는 이미 노자의 서책에서 따온 많은 인용문을 엿볼 수 있어 당시 노자의 서책은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존하여 통용되는 『도덕경』과 비교해 보면 같은 점과 다른 점이 퍽 많을 뿐 아니라 『한비자』 인용의 노자와 『회남자』 인용의 노자 사이에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이 적지 않으므로 원전에도 역시 이본(異本)이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뜻에서 노자는 이미 성립되어 있으면서도 대체로 그때그때의 현본(現本)에 비하여 이동(異同)이 다양한 이본(異本)이 병행하였던 것이 기원전 2세기부터 1세기에 걸친 노자의 상태로 보인다. 이는 기원전 1세기 말에 유향(劉向)ㆍ유흠(劉歆) 부자가 칙명을 받아 서적들을 교열, 수정하면서 노자도 또한 이본(異本)을 통일한 표준 원전이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유학의 경서도 전한시대에는 후에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으로 주목을 받은 이본(異本)의 출현이 있었고, 다시 같은 금문본(今文本) 원전이라도 가학(家學)의 상이함에 따라 약간의 상이점이 없지 않았다. 또한 『사기(史記)』가 기술하고 있는 고서적(古書籍)의 형태가 유향 부자(父子)의 정리를 겪은 형태와는 현저히 다른 바 있었다. 또 유향(劉向)의 『별록(別錄)』 일문(逸文)의 단편을 보면 여러 이본(異本)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이 이본을 서로 보완하여 통일적인 표준 원전을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 노자의 원전 또한 당연히 상호 교정, 보완된 많은 이본이 병존하였다는 것은 당시의 다른 서적의 모습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유향 부자의 교정을 경유한 원전이 현재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금본(今本)에 옮겨져 있는 것인데 아래에 간단히 그간의 일을 살펴보기로 한다.

위진시대(魏晋時代)부터 당(唐)나라에 걸쳐 노자의 주석(註釋)은 수많이 나왔다. 이러한 사실은 노자가 그만큼 숭상(崇尙)되었다는 것으로 당연히 귀결된다.
당나라 초기의 육덕명(陸德明)이 저술한 『경전석문서록(經典釋文敍錄)』에 기재되어 있는 주석만도 31가(三十一家)에 이르고 있다. 그와 함께 다소의 자구(字句)가 다른 이본도 적지 않았다. 또 후세까지 전해져 후대 사람들에 의해 별로 개정이나 보정이 없었던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주석본(注釋本)으로 왕필주본(王弼注本)과 하상공주본(河上公注本)이 있다. 이것은 우리들이 현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원전(原典)임에 틀림없다. 하상공본은 한문제(漢文帝:기원전 180년부터 150년까지 재위) 때의 인물인 하상공에 의해 주석된 서책이다. 현재의 하상공본은 진(晋)나라 갈현(葛玄)이란 사람의 서(序)에서 보면, 하상공은 오로지 『신선전(神仙傳)』 중의 한 인물이라고 했으므로 실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현재 이 책은 갈현의 계통을 이어받은 『포박자(抱朴子)』의 저자로 유명한 갈홍(葛洪:서기 283년부터 364년) 또는 그 주변 인물이 하상공의 이름을 가탁(假託)하여 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노자 전체를 상권으로 『도경(道經)』 37장, 하권으로 『덕경(德經)』 44장, 이렇게 하여 모두 2편(二編) 81장으로 나누고 있으며 이 분장(分章)만은 후세에 공통적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 하상공본도 후세에 전승되어 오는 동안 본문과 주석의 문자(文字)가 다소 상위(相違)한 여러 책이 나타나고 있으나 현재 우리들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송간본(宋刊本)에 근거하는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이다.
다음으로 왕필주본은 위(魏)나라 왕필(王弼:서기 226년부터 249년)의 주석에 의한 것이다. 24세에 요절한 이 천재는 역(易)과 노자(老子)의 주석을 남겼다. 왕필의 가문은 대대로 장서가(藏書家)로 알려졌다. 그 장서는 후한(後漢)의 대학자 채옹(蔡邕)으로부터 전해진 것이라 한다. 그 채옹의 선조가 전한 말(前漢末)에 노자를 즐겨하였다는 것으로 명성을 떨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왕필이 주석한 노자는 그러한 전승을 거쳐 온 것이기에 그 원전은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상ㆍ하 2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분장(分章)만은 원래 81장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행본은 하상공본에 따른 분장 방식에 의하고 있다.
이것에도 몇 가지 판본(版本)이 있어서 그 동안에 문자의 이동도 많겠으나 현재 찾아보기 쉬운 것으로는 광서(光緖) 원년(서기 1875년) 절강서국(浙江書局)에서 간행된 22자본(二十二字本)이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저본(底本)이라 이름하였다.

다음으로 이 서적의 호칭을 왕필본, 하상공본이 다같이 『노자도덕경』이라 불렀으므로, 이 이름은 그 이전에 이미 성립되어 있었음에 틀림없겠다.
『사기(史記)』에는 유림전(儒林傳)에서 ‘노자서(老子書)’만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한초(漢初)의 일반적인 호칭인 듯하다.
뒤에 『노자도덕경』이라 부르게 되기까지는, 일설에 전한(前漢)의 경제(景帝:기원전 157년부터 141년까지 재위)가 노자를 숭상하여 유학의 경전에서와 같이 ‘경(經)’이라 했다고 한다. 또한 ‘도덕(道德)’이라 한 것은 상편이 ‘도(道)’에 대해 논한 장으로 시작하였고, 하편이 ‘덕(德)’을 논하는 어구(語句)로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 ‘경(經)’이라 하는 것은 주석인 ‘전(傳)’에 대하여 본문(本文)이란 뜻이다. 또한 ‘도덕’이라 하는 것은 『사기』에 ‘도덕의 뜻을 말함’이라고 한 것처럼 이 말은 노자의 사상을 대표한 것이며, ‘노자도덕경’이라는 말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끝으로 언급할 사실의 하나는 먼저에도 잠시 언급한 바 있는 ‘백서노자(帛書老子)’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1973년 12월, 중국 장사의 마왕퇴(馬王堆)에 있는 한대(漢代)의 고분(古墳)에서 다른 수많은 서적과 함께 발굴 출토된 것이다. 비단폭[絹布]에 쓰여 있었기 때문에 ‘백서(帛書)’라 불리었으며, 편의상 갑(甲)ㆍ을(乙)이라 불린 두 책이 발견되었다. 먼저 것은 진(秦)나라 이사(李斯)가 처음 만들었다는 소전(小篆)에 유사한 문자로 쓰여 있었고, 뒤의 것은 한대(漢代) 통용의 문자인 예서(隸書)로 기술되어 있었다. 2가지 다 분장(分章)되지 않은 채 쓰여 있었고, 현행본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상ㆍ하편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현행본인 장(章)의 순서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갑본쪽이 파손의 도가 심한 편이며, 두 책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갑본은 전한(前漢) 고조(高祖)의 이름인 ‘방(邦)’자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 시대까지 쓰인 것이고, 을본은 ‘방’을 ‘국(國)’으로 바꾸어 고조의 이름을 회피하고는 있으나 혜제(惠帝: 기원전 194년부터 188년까지 재위)의 이름인 ‘영(盈)’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에 비추어 고조의 부인(夫人) 여후(呂后)의 통치기(統治期: 기원전 194년부터 180년까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노자의 최고(最古) 원전이다.
이것의 발견은 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에 대한 연구가 차례대로 발표되고 있다. 이후 이것을 길잡이로 노자의 원형(原型)에 대한 연구가 한층 더 발전할 것으로 짐작된다.
끝으로 한학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하여 해설 뒤에 직역과 원문을 게재하여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노력했으나 미비한 점이 있다면 해량(海諒)하시기 바란다.


목차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란 어떤 책인가?/3

상편(上篇) 도경(道經)

제1장 관묘(觀妙)ㆍ체도(體道)/17
제2장 관요(觀窈)ㆍ양신(養身)/27
제3장 안민(安民)ㆍ불상현(不尙賢)/33
제4장 불영(不盈)ㆍ도충(道沖)/37
제5장 수중(守中)ㆍ허용(虛用)/40
제6장 곡신(谷神)ㆍ성상(成象)/46
제7장 무사(無私)ㆍ도광(韜光)/49
제8장 약수(若水)ㆍ이성(易性)/52
제9장 지영(持盈)ㆍ운이(運夷)/56
제10장 현덕(玄德)ㆍ능위(能爲)/58
제11장 허중(虛中)ㆍ무용(無用)/64
제12장 위복(爲腹)ㆍ검욕(檢欲)/66
제13장 총욕(寵辱)ㆍ염치(廉恥)/68
제14장 도기(道紀)ㆍ찬현(贊玄)/70
제15장 불영(不盈)ㆍ현덕(顯德)/75
제16장 복명(復命)ㆍ귀근(歸根)/79
제17장 지유(知有)ㆍ순풍(淳風)/83
제18장 속박(俗搏)ㆍ사유(四有)/86
제19장 소박(素樸)ㆍ환순(還淳)/89
제20장 식모(食母)ㆍ이속(異俗)/92
제21장 허심(虛心)ㆍ종도(從道)/97
제22장 익겸(益謙)ㆍ포일(抱一)/99
제23장 허무(虛無)ㆍ동도(同道)/103
제24장 고은(苦恩)ㆍ불처(不處)/106
제25장 혼성(混成)ㆍ상원(象元)/108
제26장 중위(重爲)ㆍ경근(輕根)/111
제27장 습명(襲明)ㆍ교용(巧用)/113
제28장 상덕(常德)ㆍ반박(反樸)/116
제29장 무위(無爲)ㆍ자연(自然)/119
제30장 검무(儉武)ㆍ부도(不道)/121
제31장 귀좌(貴左)ㆍ언무(偃武)/124
제32장 지지(知止)ㆍ성덕(聖德)/126
제33장 진기(盡己)ㆍ변덕(辯德)/129
제34장 대도(大道)ㆍ임성(任成)/133
제35장 인덕(仁德)ㆍ대상(大象)/135
제36장 미명(微明)ㆍ은오(隱奧)/137
제37장 위정(爲政)ㆍ무위(無爲)/140

하편(下篇) 덕경(德經)

제38장 논덕(論德)ㆍ처후(處厚)/147
제39장 득일(得一)ㆍ법본(法本)/151
제40장 거용(去用)ㆍ반복(反覆)/156
제41장 문도(聞道)ㆍ동이(同異)/158
제42장 충화(沖和)ㆍ생성(生成)/161
제43장 편용(偏用)ㆍ지유(至柔)/166
제44장 입계(立戒)ㆍ지지(知止)/168
제45장 청정(淸靜)ㆍ홍덕(洪德)/172
제46장 지족(知足)ㆍ검욕(儉欲)/175
제47장 천도(天道)ㆍ감원(鑑遠)/176
제48장 일손(日損)ㆍ망지(忘知)/178
제49장 덕선(德善)ㆍ무심(無心)/180
제50장 생사(生死)ㆍ귀생(貴生)/184
제51장 양덕(養德)ㆍ존귀(尊貴)/187
제52장 귀원(歸元)ㆍ수모(守母)/188
제53장 대도(大道)ㆍ익증(益證)/192
제54장 수관(修觀)ㆍ선건(善建)/196
제55장 함덕(含德)ㆍ현부(玄符)/198
제56장 현덕(玄德)ㆍ도귀(道貴)/201
제57장 순풍(淳風)ㆍ치국(治國)/204
제58장 찰정(察政)ㆍ순화(順化)/206
제59장 수도(守道)ㆍ장생(長生)/208
제60장 거위(居位)ㆍ치국(治國)/212
제61장 위하(爲下)ㆍ겸덕(謙德)/214
제62장 도오(道奧)ㆍ위도(爲道)/216
제63장 은시(恩始)ㆍ무난(無難)/218
제64장 수미(守微)ㆍ보물(輔物)/221
제65장 선도(善道)ㆍ현덕(玄德)/224
제66장 강해(江海)ㆍ후기(後己)/226
제67장 삼보(三寶)ㆍ지지(持之)/228
제68장 배천(配天)ㆍ부쟁(不爭)/231
제69장 용병(用兵)ㆍ무행(無行)/233
제70장 지난(知難)ㆍ회옥(懷玉)/235
제71장 불병(不病)ㆍ지병(知病)/237
제72장 외위(畏威)ㆍ애기(愛己)/239
제73장 천망(天網)ㆍ임위(任爲)/241
제74장 제혹(制惑)ㆍ사살(司殺)/243
제75장 탐손(貪損)ㆍ귀생(貴生)/245
제76장 계강(戒强)ㆍ유약(柔弱)/247
제77장 천도(天道)ㆍ보손(補損)/249
제78장 수덕(水德)ㆍ임신(任信)/253
제79장 사계(司契)ㆍ화원(和怨)/255
제80장 독립(獨立)ㆍ불사(不徙)/257
제81장 현질(顯質)ㆍ부적(不積)/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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